작년 대타로 캐나다 국립 아트 센터 오케스트라 상임이사 통역을 하였다.
이사를 준비하던 작년 6월 그날도 반일 근무 후 옥수동 쪽 아파트를 보고 나오는데 동선이나 집 상태나 맘에 들지 않는다. 실망한 마음으로 단지를 나서는데 오랜 친구 문호가 오랜만에 전화를 해 왔다. "갑자기 미안한데 내일 하루 캐나다에서 오신 오케스트라 관계자들 통역해 줄 수 있는지" 묻는다. 워낙 믿음직한 친구이기도 하고 통역일은 재미있으니 머리도 식힐 겸 잠시 이사 걱정도 내려놓아야지 나는 기쁘게 그러겠노라 했다.
이메일로 도착한 통역할 캐나다 분들의 간단한 이력, 방한 목적 그리고 내가 통역해드릴 한국 기관명을 보고 너무 놀랐다. 어 이곳은 아이들 아빠가 20년 전 경복궁 뒷마당 컨테이너에서 정말 동료분들 몇 분이랑 밤새며 시작한 곳이 아닌가. 경복궁에서 청와대로 나가는 쪽 옆문 건너편에 오아름 선생님 한복집이 있고 거기 2000년도 남산 한옥 마을에서 있었던 친잠례 사진이 크게 걸려 있는데 거기 내 사진도 있어서 가끔 지나가면서 흐뭇해했다고도 하셨지, 묘한 인연이 느껴진다.
1일 통역인데 2시간 정도만에 다 끝나서 가볍게 집으로 운전하는데 방금 헤어진 캐나다 분의 연락이 왔다. 택시에 여권이 든 가방을 두고 내렸다는 것.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챙겨 미팅 장소에 나오느라 여권 등이 든 중요한 작은 파우치를 못 챙겼다는 것이다. 그날 이용한 두대의 택시 내역을 받고 각각 회사에 전화를 걸어 기사님들과 통화를 하였지만 답변은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서와 택시 분실물 센터등에 연락을 하느라 나는 차를 세우고 통역 업무는 끝났지만 여권을 찾아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한참을 동분서주하는데 아침에 상암동 미팅 장소로 오신 기사님이 내게 전화를 해왔다. 아까 뒷좌석과 트렁크를 보았을 때는 없었는데 집에 와서 자세히 보니 검정 파우치가 트렁크에 있다는 것. 택시기사님은 다행히 택시요금을 받고 캐나다 손님이 있는 호텔까지 여권이 든 파우치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지나가다 차를 세운 동네가 맘에 들어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고 집상태, 교통, 공기, 나무, 인프라가 모두 맘에 드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작년에 통역해 드린 Kelly에게서 연락이 왔다. 5월 26일, 27일 그리고 6월 1일에 캐나다 국립 아트센터 오케스트라의 아웃리치 프로그램의 통역을 해 줄 수 있는지 하는 내용이다.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나는 기쁘게 그러겠노라 했다.
첫날은 한국발달장애인 문화예술협회 아트위캔과의 마스터 클래스. Flute에 Stephanie Morin, Violin에 Adrian Anantawan, 그리고 Double bass에 Max Cardilli가 마스터가 되어 아트위캔 음악가들과 G. Handel의 Passacaglia와 Arrival of Queen of Sheba를 공부했다.
통역하면서 인상에 남았던 것은 플루트 학생의 "호흡을 잘하려면 어떻게 연습을 하면 좋을 까요" 하는 질문에 결혼 1주년이 곧 된다는 (이 사실도 한 학생이 남자 친구 있냐는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서 알게 됨) Stephanie가 알려준 Box Breathing. 천천히 4박자 숨을 들이쉬고 4박자 참고, 4박자 내쉬고, 4박자 참고, 다시 4박자 들이시고 4박자 참고 4박자 내쉬고 4박자 참고... 이렇게 박스를 그리듯 호흡을 하면 긴장해소도 되고 호흡도 더 잘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본인도 오케스트라에서 플루트 솔로 부분이 나오기 직전에 긴장을 풀기 위해 꼭 하는 호흡법이라고 했는데 나도 해보니 도움이 되었다.
한 손의 Violinist로 알려진 Adrian은 지금은 Boston에 살면서 많은 음악, 교육, 사회 활동을 하는데 어떻게 음악을, violin을 하게 되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어 감동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한 팔이 너무 작아 (오른팔이 팔꿈치 좀 위까지만 있음)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그런 모습을 본 할머니께서 Adrian의 작은 손에 방울이 달린 은팔찌를 끼워주셨다. 아가 때 팔을 흔들릴 때마다 방울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하여 아프고 작은 팔이지만 더 많이 욺직였다고 한다. 그러다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모든 반 학생들에게 리코더를 공부하게 했다고 한다. 리코더를 한 손으로 할 수 없으니 트럼펫을 할까 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씨끄럽게 느껴졌단다. 우연히 접하게 된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본인의 악기로 선택하였고 전문 엔지니어의 도움으로 보조기구를 제작 하여 활을 오른팔끝에 바로 연결하여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하였을까. 장애를 넘어 세계 정상의 음악가로 우뚝 서서 자신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 봉사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보고만 있어도 감동이었다.
둘째 날은 발달장애 청소년 오케스트라 하트-하트에서의 마스터 클래스. 오늘 나의 일은 전체적인 플로우와 함께 NAC-O 상주 지휘자인 Henry Kennedy를 통역하는 일. 공부할 곡은 Mozart의 Rondo from Serenade in D Major (arr. Kriegler), Faure의 Violin Sonata, Ponce Heifetz의 Estrellita, Fritz Kreisler의 Danse Espagnole (from La Vida Breve). 혹 지휘자님이 너무 어려운 음악 용어를 쓰거나 개념을 설명할 수도 있으니 주어진 곡들을 모두 꼼꼼히 들어보고 악보도 찾아보았다.
음악은 워낙 세계 공통어라서 통역이 과연 필요할까 싶다가도 한국말로 옮겨 주면 훨씬 반응도 좋고 바로 연주에 반영되어 개선되니 감사할 따름. Letter H 부분으로 가자고 할 때 마에스트로가 "H for Henry" 해서 지휘자님 이름이 Henry라서 이제 H 부분으로 가자고 하니 모두 알아듣고 좋아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지휘를 하고 싶은 사람 나와 보라고 하니 두어 명이 손을 들었고 한 학생이 나와서 Henry 지휘자님의 코칭을 받으며 피날레 부분을 지휘했는데 참 감동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캐나다 클래식 음악계 최고 미남 스타인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Alexander Shelleys님 통역. 1년 전 Nelson과 Kelly와 미팅했던 OOO 빌딩 로비에서 만나 12층으로 올라갔다.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몇몇 부모님, 선생님들이 계셨고 이번 한국/일본 투어를 동행한 캐나다 국립 아트 센터 스폰서 및 관계자들도 함께 했다. 유려한 외모의 마에스트로는 부드럽고 품격 있는 말솜씨로 음악이 왜 중요한지 문화 예술 교육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찬찬히 풀어 나갔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본인은 클라리넷, 피아노, 그리고 작곡을 공부하였고 음악가가 되기로 한 것은 최고 수준으로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최종 목표는 그것을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고 나의 음악 동료들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에 돌려주는 아름다움 삶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즈음 과학이나 경제만 중요시하고 음악이나 예술을 교육과정에서 자꾸 빼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한 팔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으며 처음에는 투자만 하는 것 같아도 결국 한 사람의 인생에서 또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예술 교육은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큰 보상을 가져온다고도 했다.
"너무 지쳐서 연습이 하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하는 질문에는 "아들이 3살 6살 두 명인데 피아노는 잘 치는데 바이올린 소리가 제대로 안 난다. 그때는 곡 연습이 아니고 그냥 활을 길게 써서 한 음정만 계속 연습하라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녀들 악기 연습은 보통 하루 중 가장 피곤한 잠자기 전에 하는 편이라고 했는데 귀챦고 지쳐도 매일 악기를 만지는 것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 하였고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Shelley와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가 직접 이야기해 주어서 더 와닿은 것은 연습을 할 때 9번 해서 안되다가 한번 되면 "아 이제 되었다"가 절대 아니라 10번 해서 8번 이상 완벽하게 나와야 진짜 연습이 된 것이라고 했다. 영어 공부를 할 때 하루에 15분 레슨만 받아서 어떻게 영어로 대화를 하고 글을 쓰겠는가 마찬가지로 음악도 레슨과 레슨 사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더 중요하다.즉 연습에 연습, 배우고 또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첼로를 하는 남학생의 질문인 "연주를 하다 자꾸 빨라지는데 어떡하죠?"는 연습을 충분히 하면 심장이 알아서 탬포를 지켜준다고도 했다. 다른 한 학생이 미리 적어서 제출한 질문 "음악이 제 삶 같지가 않고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 같다고 느낀 적도 있고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실망하기도 해요. 어떡하면 좋을 까요?"는 시간관계상 못 물어보았지만 어쩌면 한국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청소년이라면 한번쯤 가졌을 질문이기에 캐나다 담당자에게 메일로 질문을 전달하고 혹 답이 오면 꿈의 오케스트라에 전달해 드릴 예정이다;
자리를 옮겨 간단한 인터뷰를 마친 캐나다 국립아트센터 오케스트라 음악감독겸 상임지휘자 알렉산더 쉘리 마에스트로는 공항으로 향했고, 오전내 진행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플루트 마스터 클래스는 각 4 그룹으로 나누어 Mozart의 플루트 4중주 D장조 K.285를 한 악장씩 연주하고 전체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지난 몇 주간 통역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Mozart, Faure, Handel, Heifetz의 음악을 찾아보고 악보를 찾아보고 그리고 우리나라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알게 되고 또 무엇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성장과 발전을 직접 보게 되어 참 기쁘고 의미 있었다. 통역이라는 일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분들을 만나고 그 깊은 이야기를 듣고 또 나눌 수 있을까.
Maestro Shelley가 말한 것처럼 음악가는 매일 악기를 만져야 하듯 나도 나의 기술을 매일 점검하고 발전시켜가야지 생각하니 어쩐지 힘이 난다. 이번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나도 소중한 배움을 얻었네! 그러고 보니 이번 주 통역일이 꼭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갓구은 핫케익 위의 메이플 시럽이 오늘은 더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