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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따뜻 Nov 17. 2020

다시 혼자 잠들기.

혼자 자기를 꿈꾸던 육아맘, 막상 혼자 자려고 하니...

결혼 9년차, 육아 8년차, 아이 셋.


육아는 코로나와 비슷한 점들이 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삶이 급격하게 변화했듯이, 육아 전과 육아 후의 삶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코로나 이전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게 되었듯이, 육아 전의 평범하게 누리던 일상을 격하게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것. 한 마디로 삶이 완전히 재개편되고, 평범하게 누리던 것들을 박탈 당하게 되는 것이 육아다. 아마 그런 것들이 육아를 하는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산후 우울증를 만들어내는 듯하다. 


육아를 시작하고 가장 그리웠던 것은, 

첫째, 평온하게 식사하는 것. 밥 한 숟가락 뜰라 치면 울고, 밥 한 숟가락 뜰라 치면 밥상에 달라 들고, 이제 좀 키워놨으니 밥 좀 먹어보자 하면 꼭 엄마 나 응가~! 를 외쳐서 강제 다이어트 행. 

둘째, 오롯이 혼자인 순간을 가지는 것.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는 순간까지 엄마~엄마~엄마~엄마~ 소리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그런 하루를 보내고 싶은 열망. 

셋째, 편하게 자는 잠. 좀 잘라 치면 한 녀석이 나를 발로 차고, 한 녀석은 내 배 위로 기어 올라오고, 한 녀석은 이불 다 걷어차내서 다시 덮어줘야 하고. 이제 좀 자나 하면 나쁜 꿈이라도 꿨는지 자다 말고 짜증발사 울음 터뜨리고, 이제 진짜 딥슬립 한번 해보자 하면 내 눈알을 발 뒷꿈치로 가격........ 자다가 별도 보게 되는 한 순간도 편하지 않은 수면 시간. 


그런 8년이 지나갔다. 8살, 6살, 4살이 된 아이들. 끝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던 어두컴컴했던 육아 터널 안에 아주 미세한, 실낱같은 빛줄기가 비취는 기분이 든다. 여전히 밥을 편히 먹긴 힘들지만, 끝까지 먹을 수는 있게 되었고, 혼자이긴 어렵지만 티비로 잠시나마 따돌릴 순 있게 되었다. 엄마가 옆에 없으면 절대 못 자겠다는 아이들도 이제는 아빠만 있어도 푹 잠이 든다. 


그래서 오늘 하루, 모두 모여 자는 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들고 나왔다. 작은 방에서 혼자 자보리라. 사방 팔방 아무도 나를 옥죄지 않는 그런 잠자리에서, 오롯이 나 혼자인 그런 공간에서 편하게 잠을 자리라. 

너무 편하고 좋겠다는 생각에 부풀어 있다가, 막상 이불과 베개를 들고 컴컴한 작은 방에 들어서는 그 생각은 풍선처럼 펑 터져버렸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공간, 그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낯선 것이다. 혼자 자라고 하면 귀신이랑도 같이 잘 수 있을 것 같았던 나였는데. 낯설다. 혼자 임이. 어둠 속에서 의지할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는 어느 새, 가족들이 내 안에 자연스레 품고 받아들인 것이다. 늘 혼자이고만 싶었고, 아이들을 키우며 희생했던 내 기회비용들에 대해서만 상기하며, 행복보단 불행을 크게 생각했던 나였는데, 가족들이 나의 내면 깊이 자리 잡았음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사실 나를 쉴새없이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기에 밥 먹는 시간, 맛있게 먹는 밥 한입이 소중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를 쉴새없이 불러대는 아이들이 있기에 오롯이 혼자인 순간들이 절실하고 감사한 것이다. 내가 완전히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이런 일상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을까?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마스크없이 숨쉴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귀함을 몰랐을 듯이, 육아도 그와 같다. 


육아는 내 인생에 겪어본 어느 일보다 어렵다. 8년차인 나는 여전히 어렵다. 이런 밤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잠시나마 깨닫지만, 분명 내일 아침이 되면, 안 일어나려고 하는 아이들과 싸울 것이며, 밥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쓸 것이며, 그 와중에 뭘해야 할지 몰라 멀뚱거리는 남편에게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있기에 내 작은작은 시간들, 내 평범한 일상들이 너무나 소중해진다. 


나와 같이 어두운 밤을 공유하는 나의 가족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바꾸어 놓는 나의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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