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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작 김미희 Mar 15. 2021

(시 마중 이야기 5)
​사연 없는 시가 어디 있으랴

-시가 오는 순간



사연 없는 시가 어디 있으랴 



비 오는 날 버스에서/김미희


부슬부슬 비 내리면 

버스 유리창을 무대 삼아 

와이퍼 둘이 꼭두각시 춤을 춘다  

따다단 딴따 따다다단 따다다 

왔다 갔다 장단 맞춰 춤을 춘다  

꼭두각시,춤을 추면 

버스 앞길이 환해진다  


    * 꼭두각시 춤: 우리나라 민속음악에 맞춰 주로 운동회나 학예발표회 때 

                    아이들이 둘씩 짝을 이뤄 추는 춤 


  지방에 있는 문학관에 특강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나는 버스로 이동할 일이 있으면 되도록 맨 앞자리를 예매한다. 그 자리가 안전한 지 안 한 지는 잘 모른다. 가끔씩 부산 시댁으로 내려갈 때도 맨 앞자리에 아이들을 앉힌다. 운전에 방해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언질은 미리 준다. 탁 트여 있어서 여행하는 맛이 제대로 난다. 텔레비전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며 아이들도 좋아한다. 


  여전히 초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이런 날 버스 여행, 그것도 3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곳이라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30분쯤 달렸을까? 열심히 버스 앞 유리창을 닦는 와이퍼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유리창 와이퍼가 춤을 추며 공연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닌가? 詩라는 연인이 빛의 속도로 내게 와 안기려 하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마다할 내가 아니지 않는가? 그를 덥석 안았다. 이쯤 되면 사랑에 빠져 이성을 잃은 즐거움이 소다처럼 가슴에서 봉봉봉 올라오며 터진다. 시도 때도 없이 나는 배실 거리고 있다. 그를 만나 연애만 하면 무엇 하리. 사랑의 결실로 자식 하나 낳아야 하지 않겠나.  


  나나난난나 나나나난나나나 

  음을 맞춰보며 어린 시절 운동회 때 내가 추었던 꼭두각시 춤이랑 우리 딸이 학예발표회에서 췄던 꼭두각시 춤을 떠올리며 음을 맞춰보았다. 나나난나나? 이렇게 표현하면 요즘 애들은 소녀시대의 지지지지지 노래를 연상하지 않을까? 이 괴리감을 어떻게 극복하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좋은 시이거늘 어쩌나?  이 고민은 강연장에 도착하는 내내 계속됐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여기까지 오면서 품은 시 씨앗 얘기를 했다. 


  “이렇게 추는 꼭두각시 춤의 음이 어떻게 되죠?” 물으며 와이퍼가 까꿍 거리듯 내 양손을 흔들며 물었다. 그런데 그곳에 계신 대부분의 독자들께서 동시에 “따다단 딴따 따다다단 따다다” 이러는 게 아닌가? 맞다! 이제 됐다. 나나난나나를 따다단 딴따로 바꾸면 되겠구나.  아이들과 눈높이는 맞춰진 것 같다. 이제 내가 이 시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뭘까? 뱃속의 아이가 건강하고 총명하길 바라는 마음과 같다. 내 시가 세상에 나왔을 때 공감을 불러와야 할 텐데, 기도하는 심정으로 품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세월을 지나 세상에 나온 시가 위 시다. 


  시인들은 문우가 한 권의 시집을 내면 그의 산고를 격려하며 맘껏 출산을 축하한다. 세상에 사연 없는 시가 어디 있으랴. 하물며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애를 갖게 된 순간부터 낳고 기르는 것 이 모두가 사연의 연속이다. 그 말은 세상에 시 아닌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읽은 시 한 편이 가진 사연을 알면 아는 만큼 가깝게 느껴져서 뿌듯하고 모르면 모르는 만큼 내 맘대로 사연을 그릴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오늘 몇 편의 시를 읽었을까? 시를 읽으며 저마다 가진 사연들이 오고 간다. 주거니 받거니 그게 인생이다.  시를 읽는 일은 이렇듯 삶을 사는 일이겠지. 

  오늘은 아래 시에 여러분의 어린 시절 겨울을 얹어 즐거운 추억에 젖어보면 어떨까.  


호주머니

          윤동주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오늘의 TIP: 세상에 시는 널렸다.                   

              끈질기게 관찰하라. 그러면 시가 내게 올 것이다.

동시는 똑똑해,김미희 동시집, 뜨인돌어린이,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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