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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인 Nov 07. 2023

초보 유튜버의 깨달음

난 무엇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 


22년, 취미로 시작한 유튜브, 단순히 새로운 미디어 공간을 발견한 기쁨에 몇 개의 소소한 브이로그를 올렸었다. 구독자는 약 50명 정도였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기나긴 추석 연휴 할 게 없어서
브런치와 유튜브를 미친 듯이 올렸다.
뭘?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얘기 전부를!


아 모르겠다! 다 올려!


처음에는 고민을 했다. 뭘 올리면 좋을까... 그래서 나를 먼저 헤쳐봤다. 나는 6년 차 디자이너이자, 전세보증금 미반환 피해자이자, 나름 재테크에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은 올릴 수 있는 게

디자이너로서의 팁

전세 피해 해결 과정 공유

재테크 팁

정도밖에 없다.


그래서 조회수와 구독자에 혈안이 되어있던 나는 소소하게 주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브이로그와 재테크 팁을 올리고, 전세 피해로 인한 큰 지출 가계부를 올렸었다. (다 올린 거지) 그런데 두 개가 터졌다. 평소 200회도 안 나오던 채널에서 3.4천 조회수가 나온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고정지출 줄이기'와 '9월에 쓴돈 700만 원'(2심 변호사비 때문)이었다. 


그 2개의 영상으로 구독자가 무려 100명이나 더 늘어서 150명이 되었다. 큰 채널만 보던 여러분에게는 엄청 작은 수확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선 소위 '떡상'했다며 좋아해 줬다.


난 판단을 했다, 내 채널의 지금 흐름은 '소비'로구나!


하지만 나는 계속 소비에 관련된 영상을 올릴 수 없었다. 나는 재테크에 관심만 있을 뿐이지 누군가에게 전달할 정보도, 그만한 자산도, 어마어마한 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정지출 줄이기 저거 하나였다.)


그래서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브이로그를 올렸다. 보니까 아직까지도 '갓생'키워드가 대세인 것 같길래

'갓생을 호소하는 6년 차 디자이너'포지션을 잡고 올렸다. 지금은 조회수가 700회로, 평소 브이로그보다 많은 호응을 얻게 되었다.  여기까지 온 나는 내 채널의 키워드는 '소비'가 아닐 수 있겠구나, 어쩌면 생산적으로 사는 디자이너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산적으로 보내는 주말의 브이로그를 올렸다. 아니 올렸었다.


결과는 폭망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조회수는 100회를 넘기지 못했다. 썸네일과 제목을 바꿔봐도 똑같았다.

'브이로그도 아닌가?' 나는 얼른 그 영상을 비공개로 돌리고, 다시 조회수와 구독자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을 모색했다.


그리고 내게 바로 떠오른 해답은 '소비로그'였다. (마치 드래곤볼의 퓨전 같지 않은가?)

단순한 생각이었다. 내 채널이 짠테크 키워드를 가지고 있고, 내 브이로그도 수요가 나쁘지 않으니 그것을 두 개 합쳐 보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건 된다! 싶을 정도로 편집을 해서 올렸다.


여전히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아니, 사실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대한 콘텐츠가 안 되는 이유는, 아니 내가 잘됐던 콘텐츠는 명확히 콘텐츠가 있었다. 하나의 궤를 잡는 내용이 있었다. '고정지출 줄이기'는 실질적인 경험과 실용적인 팁이 있었고, '9월에 쓴돈 700만 원'은 후킹 할 수 있는 외적인 요소(썸네일, 제목)가 있었고, 후킹 되어서 들어왔다고 해도 노션으로 가계부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니까 아까 내 채널이 '소비'라는 키워드를 갖고 있을 거라는 나의 판단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내 채널이 '소비'라는 물살을 탔기 때문에 '소비'콘텐츠가 노출이 잘 되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자체 콘텐츠가 좋았던 것이었다. 디자이너 브이로그도 같은 맥락이었겠지. 


여기까지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무엇을 좇고 있었나, 나는 유튜브 세계 안에서 누구였나를 고민하게 됐다. 유튜브 안에서 나는 명확하지 않았다. 소비 올렸다가, 브이로그 올렸다가, 짬뽕 올렸다가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유튜브 같은 경우는 이것저것 많이 올려보면서 실험도 해보고, 잘되는 걸로 밀어도 보고 등 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고민은 뭔가 달랐다. 실제의 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 느낌. 피상적으로만 보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내가 외적인 얘기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내적인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브런치에도 여러 번 올렸었다. (여러분들도 이 브런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하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감사일기에서 얻는 감사, 힘들 때 이겨내는 방법 등등 나는 나를 돌보고 위로하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꾸준히,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소통은 그것이다. 난 유튜브에서는 그것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유튜브에서는 나의 진심을 꺼내도록. 나는 말을 더 잘하는 사람이다. 글도 글이지만 말을 더 호소력 있게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브런치에서 하던 얘기를 유튜브에서 좀 더 꺼내려고 한다. 아직 내 채널을 여러 실험을 거치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일뿐.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 채널을 던지고 총총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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