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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Nov 24. 2021

중국판 범죄와의 전쟁

마약 운반책에서 여행사 사장이 된 청년

扫黑除恶(소흑제악).


‘흑을 쓸어내고 악을 몰아내자’. 2019년 봄, 중국 도처에서 마주친 구호. 도대체 흑과 악이 무엇이기에 기차역 전광판은 물론 시골마을 옹벽에까지 이토록 강렬한 선전물이 나붙은 것일까?


'흑'은 중국말로 흑사회(黑社会), 폭력조직을 뜻한다. '소흑제악'은 집권 1기(2012~2017년) 강도 높은 반부패 정책을 펼쳤던 시진핑 주석이 집권 2기(2018~2023년) 들어 전개한 중국판 '범죄와의 전쟁'이다. 중국정부는 대대적인 조폭 척결 작전을 단행해, 3년간 전국에서 범죄조직 3644개를 소탕하고 23만7천 명을 검거했다. 이 과정에서 조폭과 결탁한 비리 공직자, 경제인들도 대거 적발되어 감옥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런데 서남부 오지에서 캠페인 현수막을 보니 어쩐지 어색했다. '시골마을에 무슨 조폭이 있다고 이런 선전물을 여기까지 붙인담'.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순박한 촌부의 얼굴은 지금껏 상상해온 조폭의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멀게 느껴진달까? 하지만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놀러 갔던 동네 약방에서 어두운(?) 과거를 가진 인물과 마주치게 되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마약 운반책'!


바이샤 마을에는 중국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한 인사가 있다. 시골 마을에서 약초를 채집하고 약재를 파는 중의사로, ‘바이샤의 신의(神医)’라 불리는 인물이다. 여러 외신에 소개된 되 후로 그를 만나기 위해 바이샤를 찾는 외국인도 많았다 한다. 산신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마른 몸에 길게 기른 흰 수염이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며,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을 교묘하게 자극한다. 약효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지만, 관광자원으로서는 독보적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금은 똑 닮은 아들이 약방을 이어받아 운영 중이다. 바이샤에 한참을 머무는 동안에도 엄두가 나지 않아 구경 가지 못했는데, 어느 날 기회가 왔다. 별다른 일정 없이 객잔에서 빈둥거리는 린뚸뚸 언니와 나에게 “동네 명사를 봐야지 않겠냐”며 객잔 여사장이 동행을 자처했다.


홍보문구가 잔뜩 적힌 입간판을 지나서 문을 들어서자 상담 중인 주인장이 보였다. 손님은 젊은 남성이었다. 뒤편 소파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남녀가 앉아 상담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10 후반 또는 20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에 눈길이 갔다. 강렬한 가죽 바지와 솜털이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의 부조화가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일행들 모두 비슷한 류의 자유분방한 차림이었다. 청년은 아버지 약을 지으러 왔다며 이것저것 꼼꼼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효자 히피’라니,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아 웃음이 났다.


주인장이 약재를 찾으러 간 사이, 상담 중이던 청년이 뒤돌아 보며 인사를 했다. 주성치를 닮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껄렁껄렁해 보이는 청년은 붙임성이 좋았다. 우리가 약방을 다 둘러보고, 주인장이 자랑스러워하는 유명인사 방명록(나는 희귀한 한국인이라며 유명인사로 취급해주었다)에 강제로 메시지를 남기는 동안에도 기다렸다가 함께 가게를 나왔다. 우리 객잔 여사장이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일행을 객잔으로 초대했다.


윈난성 옆 스촨성의 성도 청두에서 왔다는 이 청년은 리장 다옌구전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라고 했다. 함께 온 여성은 애인 정도로 생각했는데, 결혼해 얼마 전 아기까지 낳았다는 말에 모두 놀랐다.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의 전직. 어떻게 고향도 아닌 여기 와서 사업을 하게 되었는지 묻던 끝에 어두운 과거 얘길 듣게 된 것이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마약 운반책으로 일했다고 했다. 흑사회에 연결되어 있다 보니 사고로 친구가 죽기도 했다. 처음엔 그저 배달부였다가 결국 약쟁이가 되는 경우도 숱하게 보았다. 자신도 약에 손을 댔다가 다행히 중독되기 전에 겨우 빠져나왔고, 죽지 않기 위해 손을 씻고 리장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기상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범죄와의 전쟁' 영향도 분명 있었으리라. ‘소흑제악’ 현수막이 윈난 시골마을에까지 붙게 된 이유가 그제가 이해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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