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게 중요한 건 유머와 메시지
“아저씨, 여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하마터면 흔들어 깨울뻔했다. 고상한 미술관 정문에 드러누운 노숙자라니. 로비로 들어서자 기둥마다 랩핑 된 광고에 혼잡한 인파까지 더해져 지하철 대합실이 따로 없다. 그 틈에 또 다른 노숙자가 위화감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두 노숙자는 불청객이 아니다. 엄연히 <동훈과 준호>라는 한국 이름까지 가진 카텔란의 작품이다.
일부러 후드 옷을 입고 온 나는 작품 옆에 쭈그려 앉아 모자를 눌러썼다.
“전시 작품이야?”, “진짜 사람이야?!!”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느 것이 카텔란의 작품이고 어느 것이 우리 어머니 작품인지 쉽게 분간할 수 없는 관람객들은 혼란에 빠졌다. 파격과 유머로 통념을 전복하며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켜온 ‘미술계의 침입자’ 마우리치오 카텔란, 그의 도발적 관람객 맞이에 응수하는 내 나름의 감상 방식이었다.
이탈리아 출신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 ≪WE≫가 리움미술관에서 7월 16일까지 열린다. 꼭 봐야 할 그의 대표작을 한 자리에 모은 대규모 회고전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작품, 바나나를 덕트 테이프로 벽에 붙인 <코미디언>도 전시된다. 미술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아트바젤에서 처음 이 작품을 선보였을 때, 며칠이면 갈변해 버리는 1,500원짜리 흔해빠진 바나나 한 송이가 과연 미술시장에서 무슨 의미인가 논쟁이 일었다. 그 와중에 한 관람객이 바나나를 먹어치우는 소동까지 벌어지며 소셜미디어에서 폭발적 밈이 양산되었고, 이 작품은 자그마치 1억 5천만 원에 판매되었다. 카텔란의 이 개념미술 작품은 우리가 어떤 것을 가치 있다고 느끼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카텔란은 이미지로 말할 뿐 캡션을 달지 않는 작가다. 해석은 전적으로 관람자의 영역이라며 직접 설명하지 않지만, 블랙유머로 가득한 작품은 그 자체로 직관적이고 충격적이다. 기념비에 쓰이는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든 아홉 개의 조각 <모두>는 어떤 신체 부위도 묘사되지 않았지만 흰 천으로 덮인 시신이 틀림없어 보인다. 질병, 전쟁, 참사로 희생된 누군가 같다. 2007년 작품이지만, 우리에게는 시공간을 넘어 이태원 참사라는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천벌을 받은 것처럼 운석을 맞고 쓰러진 교황 <아홉 번째 시간>은 권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9.11 테러 직후 선보인 거꾸로 서있는 뉴욕 경찰 <프랭크와 제이미>는 무능한 공권력에 대한 풍자다. 검은 성조기에 직접 실탄을 쏘아 만든 <밤>은 전쟁과 희생으로 쌓아 올린 미국, 잦은 총기 사고로 인한 국가적 트라우마를 연상시킨다. 참전용사 추모비를 닮은 화강암 기념비 <무제>에는 1874년 이래 영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패배한 모든 경기가 새겨져 있는데, 1999년 런던 전시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라고 한다. 축구에 죽고 못사는 영국인들에게 쓰라린 패전의 추모비를 들이밀다니, 짓궂기도 하다.
카텔란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분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양손을 책상에 연필로 못 박힌 찰리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는 아동학대 피해자이기도 한 카텔란의 어린 시절 자화상이다. 미술관 바닥을 뚫는 대공사 끝에 설치되어 화제가 된 바닥을 부수고 나온 자화상 <무제> 역시 미술 비전공자로 ‘미술관에 온 이방인’이라 불렸던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제목 :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기간 : 2023.01.31.(화) ~ 07.16.(일)
장소 : 리움미술관 M2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입장료 : 무료, 100% 온라인 예약 관람 (관람일 14일 전 오후 6시부터 미술관 사이트에서 개인별 최대 4명까지 예약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