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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n 03. 2022

손님과 친구 사이

 이교수 님은 우리 집에 온 손님이었다. 제주집에 한 달 살기를 하러 왔다가 그 후에도 여름, 겨울 일 년에 두 번씩 꼬박 우리 집에 머물고 갔다. 벌써 서너 번을 왔다 가니 이제는 예전부터 알던 지인처럼 편하다. 게다가 얼마나 깔끔한지 매번 나보다 더 깨끗하게 집을 청소해놓고 가신다. 돌아보니 우린 시작부터 서로에게 좋은 인상이었던 것 같다. 문과 교수인 그분은 내가 책을 리뷰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걸 아시곤 그 사실 하나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주었다. '좋은 집을 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이 주인인지도 중요하다'라며 그렇게 처음부터 내게 호감을 표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벌써 2년째. 이젠 가끔씩 도넛 쿠폰과 함께 '제주에 우리 집(?) 잘 있냐'며 안부를 전한다. 한동안 가지 못해 제주 앓이를 하고 있는 내 맘을 알곤, 이번 겨울엔 제주에 가자마자 집 사진을 찍어 보내며 집은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를 건넨다. 겨울에 꼭 필요한 난로가 고장 나자 불평을 하기는커녕 직접 연통 청소도 하고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알려주며 걱정하지 마라 안심도 시켜주신다. 정작 얼굴을 마주한 건 음 우리 집에 머문 날 고작 십여 분간 얘기를 나누었던 것이 다인데 이렇게 집으로 맺어진 인연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이 집이 내게 가져다준  뜻하지 않은 인연이 얼떨떨하면서도 반갑다. 음 집을 빌려주기로 결정했을 때에는 가욋돈을 번다는 즐거움보다는 걱정이 훨씬 많았었다. 그 당시 집에 대한 애정이 너무 과하기도 했지만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나. 집을 빌려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경험담은 그 걱정에 불안과 염려를 추가하기에 충분했다. 놀러 와서 부부싸움을 하다 물건을 던져 창문을 깨고, 예약된 인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묵으면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 경우는 애교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내게 이런 무용담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사전 협의 없이 데려온 큰 개를 집 안에 혼자 두고 외출한 손님들이 그 개가 방충망을 뚫고 탈출하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던 것 정도가 날 긴장시켰던 에피소드다. 하필 그 방충망은 바로 전 주에 새로 설치한 거였다지 아마.


 여하튼 난 지금 우리 집이 이어준 인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캐러반을 사서 양평의 한 고즈넉한 캠핑장에 장박을 하고 매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교수님의 가족.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부터 한번 놀러 오라고 했었는데 이제야 용기가 생겼다. 설레는 맘 반, 어색하면 어쩌지 걱정되는 맘 반이다. 나이를 한 두 살 먹을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갑지 않아 진다. 어느덧 익숙한 사람과 만나 내가 만든 바운더리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픈 게 자연스러운 감정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 낯가리기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꼼군까지 대동하고 이 낯선 길을 가고 있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겼을까? 이는 그녀가 이제껏 보여준 대가 없는 호의 덕분이다. 우리 집을 나만큼 좋아해 주고 그 집만큼 내게도 지속적인 호의를 베푸는 그녀에게 어느샌가 조금은 빚진 마음이 생겼다. 오늘만큼은 그 빚진 마음을 덜어내고 항상 긍정적인 기운이 넘치는 전화 너머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저 멀리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짓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2년전 잠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은 그녀와 앞으로 전개될 인연이 설렘이라는 단어로 다가온다. 마흔 넘어 중단했었던 새 인연 만들기에 이렇게 다시 발을 내디뎠다. 앞으로의 내 인생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더 풍요로워지길 바라며 이 햇살 좋은 날 그녀와 함께 마주 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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