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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Sep 16. 2022

나만의 제주이길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한 지도 6개월째. 이직 후 처음으로 일주일간 휴가를 내고 제주에 왔다. 주인 없이 객 식구들만 북적였던 집은 여기저기 낡아지고 더러워져 엉덩이 한번 붙일 새를 허락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랬다. 집은 계속 예쁘게 관리하면 잘못 지은 집도 좋은 집이 되는 거라고... 아무리 비싼 자재로 고급스럽게 지어도 아무도 살지 않고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죽은 집이 된다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 집은 내 사랑을 듬뿍 받고 구석구석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니 그리 잘 지은 집은 아닐지라도 점점 예뻐지고 있는 건 확실한 듯하다.


 제주 날씨는 토라진 연인의 마음처럼 변화무쌍하다. 잠시 해가 반짝 나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시커먼 먹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고 여차하면 세찬 비까지 흩뿌린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아이 얼굴 같은 하늘을 빼꼼 보여주더니 '옛다 기분이다!' 하듯이 한라산의 웅장한 자태까지 슬쩍 드러낸다. 이 변덕에 장단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먀는 하찮은 인간들은 그저 자연의 변덕에 이리저리 놀림을 당할 뿐이다. 이런 제주가 무려 내리 삼 일간 무더위와 함께 파란 하늘을 선물했다. 그 덕에 우리 아이는 그렇게도 좋아하는 그림 같은 협재해변에서 사흘씩이나 물놀이를 하는 호사를 누렸고 생전 바닷물이라면 질색하던 나도 숨이 막힐 듯 내리쬐는 태양광선에 두 손 두 발 들고 에메랄드 빛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휴가 중이라는 것이 비로소 체감되는 순간이다. 한참을 물놀이를 했더니 배가 출출하다. 몇 년 전 바로 이곳에서 먹었던 시원한 물회 한 그릇이 생각났다. 머리가 깨질 듯 쨍하니 시원한 물회를 사발째 들이켜며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을 수 있던 기억. 그 기억을 재현하고자 근처 식당을 배회하다 간신히 물회 파는 곳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그 새 가격이 두 배로 올라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수 없이 먹으면서도 뭔가 배신당한 이 기분이 영 회복되지가 않는다. '한 철 장사하는 성수기 관광 식당들이 그렇지 뭐...'라고 생각해보려고 해도 떨쳐지지 않는 이 찝찝한 기분.


 로나와 함께 덩달아 인기가 많아진 제주는 잘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내게도 이젠 자주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거의 예닐곱 배 비싸진 렌터카 비용과 10만 원을 훌쩍 넘기는 편도 항공권, 거기에 나날이 높아져만 가는 외식 비용까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은 제주에서 외식을 잘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흑돼지를 식당에서 먹었던 것이 언제더라? 기억조차 나질 않는 걸 보니 꽤 오래되었나 보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마트로 직행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예전에 매일 같이 하던 카페 투어도 그만둔 지 오래다. 통계를 보니 제주에는 2200개가 넘는 카페가 있단.  카페들을 하루에 하나씩만 들러도 몇 년이 걸릴 지경이다. 그러나 1년 이상을 버티는 카페는 몇 퍼센트나 될까? 매번 제주에 올 때마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를 보면 다음번에도 이곳을 방문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허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카페가 지척에 문을 열었다. 중산간 언저리에 있는 우리 집 근처엔 어느 정도 입소문이 나지 않는 이상 영업을 지속하기 힘들다. 제주 시내처럼 우연히 지나가다 들를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꾸준히 상점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집 앞에 자리한 유명 맛집 덕분인 듯하다. 점심을 먹으려면 10시부터 줄을 서야 하는 그 집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어느 날인가부터 그 식당 주변으로 자그마한 상점과 카페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중산간에서 가장 높은 이 마을까지 상권이 생겨나는 것이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고 내심 좋기까지 했다. 우리 동네에도 인프라라고 말할 것들이 생긴다는 생각에 매번 내려올 때마다 새로 생긴 곳들은 없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둘러보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불안이 밀려온다. '20여 가구 남짓 살고 있는 이 작은 제주 마을까지 관광객들로 북적일 필요는 없는데...' 나도 외지인이면서 더 이상은 이 마을이 북적이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이중성에 내심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아침마다 앞마당 잔디밭에 줄지어 앉은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차 한 대 지나가지 않아 적막감마저 흐르는 우리 집의 밤 고요가 파괴되는 일 만은 없길...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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