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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Feb 01. 2023

완벽한 보루

 서울엔 함박눈이 쏟아진다던데 제주엔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내린다. 공항 가기 전 푸른 목장을 마당으로 둔 너른 카페에 앉아 잠시 햇살을  피해 본다. 커다란 창을 통해 바라본 목장에는 무슨 연유인지 꼼짝 않고 서 있는 멋진 무늬의 말이 자연스레 그 앞을 포토존으로 만든다. 이 멋진 카페의 주인장은 백발이 잘 어울리는 인심 좋은 노부부다. '어떤 삶을 사시다가 이곳에 카페를 열게 된 걸까.' 궁금증 반 부러움 반의 마음으로 두 분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나의 노후를 잠깐 상상해 본다.

 제주에 집을 지은 목적 중 하나는 물론 노후에 누리고픈 전원의 삶이었다. 흙을 밟고 사는 삶. 조그만 텃밭을 가꾸며 소소한 노동을 하고 제주의 좋은 공기 마시며 건강하게 사는 삶. 그런데 문제는 이 것이 동상이몽이라것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지금껏 도시를 벗어나 본 적 없는 꼼군은 제주에 살고픈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단다. 인프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동네 분위기와 좋은 공기 외에는 없는 이 동네에 자신은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못 박아 얘기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걸로 치면 나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그렇기 때문에 외려 항상 흙과 가까운 삶을 동경해 왔다. 외가와 친가마저 모두 서울에 있어 일명 '시골 할머니댁'이 있는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었다. 푸근한 미소를 띤 할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식재료로 손맛 가득한 음식을 만드시면 그걸로 배를 잔뜩 불린 뒤 동네 아이들과 배가 꺼질 때까지 맘껏 뛰어노는 상상을 하기도 여러 번. 할머니, 할아버지가 농사짓는 들에 나가 일손도 돕고 맛난 새참도 얻어먹는 소소하지만 특별한 일상이 내게는 로망이었다. 그런 아쉬움들이 쌓여서 자연스레 마당 있는 이층 집에 대한 소망으로 발전한 것은 아닐까. 그 꿈을 이룬 장소가 제주가 될지는 물론 까마득히 몰랐지만...


 집을 지은 지도 어언 5년이 흘렀다. 요즘 들어 부쩍 해발 500미터의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텨주고 있는  이 나무집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요즘은 더 잦아진 초강력 태풍에도 큰 피해 없이 무사한 걸 보면 나무집도 콘크리트로 지은 집 못지않게 튼튼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강한 빛과 바람에 그 기능을 상실한 창틀 실리콘으로 빗물이 스며들기도 하고 뽀얗고 하얀색이었던 예쁜 벽엔 때가 묻어 이젠 더 이상 언덕 위의 그림같이 새하얀 집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손으로 직접 고쳐가며 손때 묻은 장소들이 하나 둘 늘어남과 동시에 그만큼 이 집에 대한 정도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여름휴가 이후로 처음 방문한 집에선 짐을 내려놓자마자 겉옷도 못 벗고 부산을 떨 만큼 할 일이 태산이다. 여러 사람이 이용했던 쿠션 커버와 발매트, 카펫까지 빨아 대느라 세탁기는 새벽녘까지 쉴틈이 없다. 아파트처럼 층간 소음 걱정할 일 없으니 세탁기는 신이 나서 밤새도록 돌아간다. 며칠을 이렇게 청소에 쏟아붓고 나면 그제야 뜨듯한 난로 앞에 앉아 차 한잔 마실 짬이 난다. 그럴 때마다 '이곳에서의 먼 훗날의 삶도 매일매일이 이러할 테지...'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딱히 찾아오는 이 없고 하루에 집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 숫자가 한 손가락에 꼽히는 이곳에서 하루 종일 부지런히 집안을 쓸고 닦고 삼시 세끼를 해 먹는 시간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그 삶이 품고 있는 적막함에 겁이 난다.


 이렇게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은 내가 원할 때는 여유와 느긋함이겠지만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밀려난 상황이라면 이 고요함은 참기 힘든 형벌과 다름없을 것 같다. 언젠가 가수 이효리가 했던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제주에서의 여유로운 삶이 즐겁지만 대중에게 완전히 잊혀지고 싶지는 않다는 모순적인 그녀의 말. 그러나 한편으로는 완벽히 공감되는 말. 그렇기에 노후의 내가 이곳에서 행복하려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깥세상에 쏟아부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저 세상을 향해 한 점 아쉬움이 남지 않을 때, 우리 집의 적막함이, 두려움이 아닌 편안함으로 다가올 때, 그때가 이곳에 정착해 둥지를 틀어도 된다는 신호일 것이다.


 얼마나 더 오래 세상 속에서 씨름을 하며 그 신호를 기다려야 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새소리를 알람 삼아 잔디 마당에서 맑은 공기 한번 마시며 아침을 맞이하리라. 밤새 자라난 잡초들을 쑥쑥 뽑아 혹시라도 남았을 저 바쁜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함께 던져버리고 자연이 그날 내게 허락한 날씨에 순응하며 하루를 보내리라. 그렇게 지난 삶을 곱씹으며 오늘이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그렇게 살리라.


 그런 나의 노후를 위해 이 언덕 위의 작은 집은 완벽한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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