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바니 Mar 04. 2022

우리집이 난 참 좋다.

 내 사진첩은 항상 제주로 가득하다. 1년에 몇 번 가지 못지만 제주도에 있을 때만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한 장소에서 한 두장 이상은 찍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사진첩에 있는 아이는 사진 몇 장만 건너뛰면 훌쩍 자라 있다. 사진과 그다음 사진이 찍힐 사이에도 쭈욱 자라고 있었을 아이 모습을 담지 못한 것이 뒤늦게 후회스럽다. 번엔 꼭 사진을 많이 찍어야지 다짐하며 5개월 만에 다시 찾은 제주. 눈의 여왕이라는 내 별명에 걸맞게 2월 말에 때아닌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다. 그 덕에 비행기는 계속 지연되는 중이고 공항에서의 기다림이 이젠 제법 익숙하다. 이번엔 설치한 지 5년 된 펠릿난로 점검을 받아야 한다. 펠릿은 나무 찌꺼기를 뭉쳐 만든 친환경 연료로 헉 소리 나오는 제주의 가스보일러 사용을 현저하게 줄여주는 겨울의 필수품이다. 특히 우리 집처럼 중산간에 있는 집은 3월까지도 난방이 필요하다. 겨울에 우리 집에 한 달 살기를 오시는 분들도 펠릿난로 덕에 난방비를 많이 아끼고 가신다. 그런데 이 난로도 5년쯤 되니 삐걱대기 시작한다. 연통 청소며 내부 점검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우리 집에 설치한 난로는 제주에 대리점이 없다. 물론 5년 전엔 있었다. 그러나 그 후 그 대리점 사장님이 일을 그만두시곤 그 후로 서비스를 해 줄 업체를 찾지 못했단다. 벌써 2년 전부터 서비스를 요청했었는데 우리 집 하나 때문에 제주까지 오기는 어렵다며 매번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었다. 그러다 드디어 2년 만에 엔지니어 분과 약속을 한 날이다.


 매달 아파트 관리비를 내며 어디에 쓰이는지 확인할 수 없는 그 돈이 참 아까웠다. 다른 이름의 월세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서 이럴 거면 차라리 빌라가 낫지 않냐고 아파트 선호자인 꼼군에 맞서기도 했다. 그런데 집을 지어 놓고 보니 매달 아파트 관리비만큼의 돈을 저축해놓지 않으면 목돈 들어갈 일이 있을 때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관리하지 않으면 더 쉽게 낡고 망가질 것이 자명한 집을 누군가에게 위탁해서 관리한다는 것이 참 편리한 거구나' 하고 뒤늦게 아파트의 편리함을 깨닫는 중이다.


 겨울엔 난로와 보일러, 여름엔 에어컨점검해야 한다. 1년에 한 번은 스테인을 칠해줘야 하는 방부목 데크도 있고 장마가 오기 전엔 창문 실리콘을 점검하고 보수할 곳은 새로 발라야 한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집 전면의 실리콘 공사와 페인트칠 공사도 할 계획이다. 여러 사람이 쓰는 집이니 세탁기도 1년에 한 번은 분해해 청소한다. 이 중 가장 크게 품이 드는 건 단연 마당 관리다. 잔디깎이는 몇 번 직접 하다 곧 포기하고 잘하시는 분께 부탁드리고 있다. 제초제는 직접 하자 싶어 작년부터 뿌려보고 있는데 효과는 사실 잘 모르겠다. 울임에도 지난해에 뿌리를 깊이 내린 클로버들이 아직도 푸릇한 기운을 풍기며 자리하고 있다. '저것들이 싹을 틔우기 전에 얼른 약을 뿌려야 할 텐데...' 아직은 바깥 날씨가 너무 추워 마당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예전엔 클로버만 보면 네 잎 클로버 찾겠다고 신이 났었는데 우리 집 마당에서 잔디를 잡아먹고 있는 클로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진절머리가 난다. 땅이 녹는 부터 가을까지는 방역에도 신경써야 한. 물론 전문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맘때가 되면 정화조도 비우고 청소를 해야 한다. 법적으로 꼭 해야 하는 일인데 우리 동네에서 운영하는 업체는 단 두 곳. 그나마도 한 곳은 일주일째 연락 두절이다. 건너 건너 알아보니 여자 사장님 아버님이 아프시단다. 1년에 의무적으로 한 번씩은 청소를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으니 속절없이 애만 탄다. 러다 웬일로 매번 오시겠다 대답만 하곤 깜깜무소식이던 두 번째 업체 어르신이 전화를 다 주셨다. "지금 그 동네에 왔는데 집이 어디?" 마침 점심 먹으러 밖에 나와있던 나는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칠세라 "어르신~ 거기서 쪼끔만 올라가면 하얀 집 나오는데요. 제가 부재중인데 대문은 열려 있거든요. 작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랬더니 어르신 왈 "난 빈집은 안 해! 싫어" 하고 대뜸 어깃장을 놓으신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가능할지 모르는 일. 난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어르신 이번 한 번만 좀 부탁드려요~ 지난번에도 오신다고 하셨다가 안 오셨잖아요~ 처음 오신 건데 좀 해주세요~" 한참을 실랑이를 하는데 하기는 싫지만 일단 집도 못 찾겠다며 대뜸 지나가던 동네 어른을 바꿔주신다.

 "집이 어디우꽈?"

 "00리 00번지"인데요. "

"아니 주소 말고 그러니까 어디냐고?"

"지금 계신 회관에서 300미터만 올라가시면 되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어디냐고?"

"네??"

"중문에서 치킨집 하는 아이여?"

"아... 아니요. 전 그 집 아니고요. 육지 아이예요"

"아... 기?" ('기'는 '그래'라는 뜻이다.)


 결국 어느 집 사람인지 궁금하셨나 보다. 제주 사람 아니라는 말에 갑자기 흥미가 뚝 떨어지셨는지 냉큼 다시 전화를 정화조 어르신에게 돌리신다.


 말로는 계속 빈집은 안 한다며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던 그 어르신은 내가 없는 사이 정화조를 깨끗하게 비우고 사용하신 외부 수전까지 잘 정리해놓고 가셨다.

생각보다 이 작은 집을 관리하는데 많은 시간과 품이 든다. 혼자 할 수 없는 일도 많아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필수다.

 집을 지은 지 어느덧 5년. 처음엔 영 남의 집 같고 새것으로 버석거리던 이 집이 어느덧 사람들의 온기를 완전히 머금고 푸근한 집다움을 뽐낸다. 가구와 집기는 낡아지고 때가 묻어 닦아도 새것처럼 되지 않지만 뻣하게 풀을 잔뜩 먹인 옷깃처럼 서걱거리던 이곳이 이젠 그들덕에 잘 길들여진 악기 같다.


 의 정성과 시간 그리고 다른 돕는 손길들이 모여 하루하루 점점 더 집다워지는 우리 집이 난 참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의 큰 부분, 그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