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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Oct 05. 2021

내 인생의 큰 부분, 그곳

 집에 가는 길. 딱히 야근을 한 것도 아닌데 먼 집 탓에 벌써 시간은 8시를 향해간다. 배가 너무 고파 결국 집까지 못 가고 근처 김밥집에 들러 허겁지겁 허기를 채운다. 아침 6시부터 꼬박 깨어 있던 위장에 너무 넣어주는 것이 없으니 아직 완벽히 회복 못한 소화불량에 뻑뻑한 김밥이 버거울 법도 한데 이마저도 놓칠세라 예민한 위 넙죽넙죽 김밥을 잘도 받아먹는다. '그래, 배고픈데 장사 없지'


 어느덧 4일 차. 재택근무 탓에 30명이 좀 안 되는 팀원 얼굴을 아직 다 보지도 못했다. 대신 화상 미팅으로 간략한 PPT를 만들어 나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 얼굴도 못 본 사람들에게 내 소개를 한다는 게 마나 쑥스럽고 부끄럽던지...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살펴보니 그중에 제주가 큰 덩어리를 차지한다. 사실 막상 제주에 살았던 건 1년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8년을 제주를 오가며 일을 한 세월이 내 커리어와 인생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팀들에게 보여줄 사진을 고르다가 십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얼굴에 젖살이 가득한 앳된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매일매일 보는 얼굴인데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러 그 시절의 나를 보니 지금의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 있다. 그 시절의 나는 회사에서 오름동호회 활동을 하며 주말마다 멋진 오름들을 오르고 동료들과 교래리의 닭 샤부샤부를 먹으며 제주를 맘껏 즐던 활기찬 아가씨였다.


 혈혈단신 제주에서의 삶은 물론 외로웠지만 달리 보면 무한한 자유의 보장이기도 했다. 주말이면 자주 가던 동네 목욕탕. 목욕탕협회에서 요금을 올리라고 했다며 출입문 앞에는 할 수 없이 올린 금액을 써놓고 막상 돈을 내면 이전 요금과 똑같이 받던 주인아주머니. 그곳에서 등을 밀어주던  때 미는 자동 기계 앞에 앉아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면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시원해지며 혼자임이 결코 서럽지 않았다. 집에 먹을 것이 없다 싶으면 동네 메인 도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올라가 허름한 동네 식당에 들어가 나의 최애 메뉴 한치물회를 시켜먹었다. '생물은 냉동보다 조금 비싼데 뭘 줄까'라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그냥 냉동으로 줍서" 하며 넉살 좋게 혼자 앉아 한치물회를 남김없이 들이 소화도 시킬 겸 내가 좋아하는 송악산 근처에 가서 차를 세워놓고 한참 바다 멍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늘을 예쁘게 물들인 노을까지 보는 호사 누 수 있었다.

 내 생에 처음 새 차도 제주에서 장만했다. 주말마다 집 마당에서 손세차를 하며 애지중지 아끼던 그 차를 타고 끝도 없이 펼쳐진 제주의 해안도로를 달리면 밑도 끝도 없이 음이 벅차올랐다.


 힘든 출퇴근과 하루 일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자꾸만 송악산 한 켠을 물들이던 노을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직 제대로 된 일은 시작도 못했는데 마음은 이처럼 눈치 없이 자꾸만 제주를 향해 달려간다. 도시에서의 삶이 장국 없이 먹는 김밥처럼 뻑뻑하게 목에 걸릴 때쯤 그때 다시 날 반겨줄 그곳으로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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