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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r 01. 2023

아직은 요원한 쿨한 비즈니스

 오늘도 새벽녘에 눈이 떠졌다. 7시가 가까운 시간을 새벽이라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원격 근무 1년 차에게 아침 7시는 새벽이다. 함께 재택근무하는 꼼군과 아직 방학인 아이가 일어나려면 앞으로도 족히 한 시간은 걸릴 테니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모니터를 매개로 일을 하다 보면 가끔씩... 아니 실은 종종 브레이크를 거는 고객들이 있다. 직접 방문하는 수고를 해서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 않은 채로는 어느 단계 이상 일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한 고객들. 물론 나도 이해는 한다. 적은 돈이 오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화상미팅을 통해 얼굴을 보았다고 해도 직접 대면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첫째는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부분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고 둘째는 '그 정도 수고도 없이 내 돈을 받으려는 것이냐' 하는 괘씸죄와도 그 맥을 같이 하리라 추측한다.

 신뢰와 관련된 것이라면 나도 고객으로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10여 년 전 결혼을 준비할 때였다. 그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인도양의 한 섬나라, 모리셔스(Moritius)로 신혼여행을 결정했던 나는 모리셔스 신혼여행 패키지를 제공하는 몇 안 되는 작은 여행사들을 꼼꼼히 비교 중이었다. 홈페이지를 보고 통화도 몇 번 했지만 아무래도 거의 천 단위에 달하는 돈을 바로 입금하기는 영 불안했었다. 유명하고 큰 여행사였다면 별생각 없이 바로 입금을 진행했겠지만 듣도 보도 못한 여행사들이었기에 굳이 작은 오피스텔에서 운영되고 있던 곳을 직접 찾아가 유령회사가 아닌지 내 눈으로 확인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현재 내가 상대하는 기업들이 이런 맥락에서 직접 날 만나려는  아닐 것이다. 이쪽 업계에선 우리 회사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큰 단체다. 유령회사도 아니고 이 좁은 바닥에서 가장 주목받으며 업 트렌드를 주도하는 단체인데 신뢰를 위해 날 보자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괘씸죄에 무게를 두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보통 괘씸죄를 거론하는 회사들은 거의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나이 지긋한 대표들이 소유한 곳들인 경우가 많다. 접대와 친분으로 일하는 것에 익숙한 그들은 감히 얼굴 한번 보러 오지 않으면서 내 돈을 받겠다는 거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잠깐의 대화에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우리와 일은 하고 싶지만 대접받을 건 받으면서 하겠다는 그 마음을 어르고 달래줘야 하는 당사자로서 이런 문제로 빠르게 일이 처리되지 않을 때면 진이 빠진다. 나도 10년 넘게 마케팅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겪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젠 세상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아직도 그 시절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리고 중요한 건 본사에서는 이런 한국의 특별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본사 직원들도 해외출장에서 만난 고객들과 비즈니스 디너를 먹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이미 비즈니스가 성사되어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에 약간의 기름칠을 해주는 것일 뿐. 같이 식사를 안 했다고 해서 일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 일은 없다. 물론 물리적으로 유럽 담당이 모든 유럽의 기업들을 방문할 수 없고 미국 담당자가 모든 미국 기업을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이 상호 간에 이해가 된 상황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외국의 기업들, 모두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우리와 함께 일하는 유럽과 마국의 기업들은 화상 미팅에 완벽히 적응되어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벌써 몇 번이나 대면 미팅을 요청하는 한국 기업에게 화상미팅을 제안했다가 연락 두절을 당한 경험이 있다. 이러니 스웨덴에 있는 팀장에게 내가 매주 방문해야 하는 기업들을 열거하고 그들을 방문할 때 빈손으로 갈 수 없음을 토로하면 굉장히 놀라워하며 선물 비용처리를 어떻게 하냐고 나에게 되묻는다.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비즈니스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쪽은 비용을 지불하고 또 다른 한쪽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만 확인이 되면 그냥 쿨하게 비즈니스를 할 수는 없는 걸까? 꼭 찐득한 인간관계를 한 스푼 얹어 비즈니스와 버무려야만 하는 것인지 정말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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