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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cycle Grand Tour May 30. 2023

방랑의 노래 - 프롤로그 1

< 자전거 여행 에세이 >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는 당시의 감각들.



< 2018년 12월, 중국 해자산 정상 부근 캠핑, 4700m >



    1     


    당연한 말이지만 짐을 가득 실은 자전거로 높은 산맥을 오르는 일은 쉽지가 않다. 한동안 드넓게 펼쳐진 황톳빛 평원이 이어지더니, 서서히 그 평원 너머로 거대한 산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차갑고 메말라가는 공기는 살갗을 갈라놓고, 매서운 칼바람은 끊임없이 그 안을 파고들어 온다. 이렇게 뒷덜미마저 얼어붙는 느낌이 드는 추위를 견뎌본 적이 있었던가. 주위 여기저기를 둘러보지만 잠시라도 쉴 곳은 마땅치 않고, 설상가상으로 태양은 빠르게 산 너머로 지고 있다. 지금 여기는 2018년 12월의 동티베트 리탕 남쪽, 4700미터의 해자산 정상 부근이다.          



    2     


    나는 지금 왜, 무엇을 위해 이곳을 떠돌고 있는가. 나의 오늘이 처음 의도와는 전혀 다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가끔씩 자문해 본다. 자전거 위에서, 텐트 안에서, 사람들 사이 어디에서나 나는 그저 평범한 여행자들 중의 하나로 보이지만, 여느 여행자들과는 달리 정해진 일정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는, 마음 한편에 절대로 지울 수 없는 불안감을 안고 다니는 나는, 방랑자다. 


    방랑자, 낭만적인 수사 이면에 놓인 현실에서의 방랑적 일상은, 한편으로는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다는 무한한 자유에 도취되게끔 하지만, 사실 그것은 무한한 자유도 아닐뿐더러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러한 삶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자명한 사실에, 먼 나중을 생각하면 걱정, 근심, 불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처럼 정신이 피폐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지금 나의 행위를 스스로에게 충분히 납득시킬 정당한 명분이 필요했다. 평범한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막상 자신의 삶이 그 평범함의 궤도를 벗어나려 하면 불안함이 밀려오기 마련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린 나이가 아니기에 호구지책은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에 짓눌린다. 딱히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신체 건강한 것 하나만으로도 어떻게 하다 보면 돌파구가 생기겠거니 하는 그런 약간의 안일함이 있었고, 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의 순간을 저당 잡혀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잘 뒷받침할 수 있는 나름의 논리를 보호막처럼 뒤집어쓰고 즐겁게 돌아다닌다. 



< 2014년 9월, 독일, 헤센 주 도젠하임 근처 >



    3     


    < 2014년 12월의 기록 : 익숙함에서 벗어난다는 것 >    

 

    언제부터였을까. 내게 익숙했던 전주의 거리들, 그리고 서울의 거리들을 뒤로한 채, 훌쩍 떠나버리겠다고 마음먹었던 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예전 어느 순간, 농담처럼 툭 내던진 자전거 세계일주라는 커다란 주제가 참 마음에 들었던 것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하나, 둘씩 그에 맞는 준비를 조금씩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그 계획이 실현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대학원 기간 2년여 동안 학업과 학원강사 일을 병행하여, 그 돈으로 장비들을 구입하고 넉넉하진 않지만 장기간에 대비한 여행자금을 마련했다. 지난 그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렇게 바쁘게 살 수 있었는지 그때의 내가 신기하기만 하다. 


    주변에 있는 지인들에게 내 계획에 대해 말하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첫 번째는 나중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걱정 섞인 놀라움이다. 직장이나 가정을 꾸릴, 이제 막 안정을 꾀할 나이에 나서는 장기간의 모험이 철없는 계획처럼 보였나 보다. 두 번째는 부러움. 특히 직장 생활에 시달리고 있는 친구들은 정말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두 가지 반응은 물론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굳이 세계일주라는 특정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바를 위한 모험에 항상 따라다니는 양가적 반응이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모험과 안정은 결합시키기 쉽지 않은 개념이었다. 


    나는 이번 모험을 통해서 그동안 배우고 생각해 왔던 여러 문제들을 안락한 책상에서가 아니라, 직접 온몸으로 부딪쳐오는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로서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그 과정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익숙했던 그동안의 삶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무언가를 분명히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당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여겨졌던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지금 당장의 문제들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 밤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자야 할 것인지, 어디에서 어떻게 씻을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등, 앞으로 나는 이처럼 가장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될 것이다.


    내 모험이 단순한 극기 훈련이 아닌 만큼, 보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여러 삶의 방식들을 짧게나마 체험하고 이해하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특히,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나아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체계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성과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물론, 너무 거창한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알려지지 않은 곳곳을 돌아보며 몇 가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혹은 책으로만 공부했던 여러 부조리한 모순된 사회의 참상을 생생하게 몸으로 겪을 기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다. 지금 내가 가는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해 모험을 해 나간다면, 거기에 새로운 길이 분명히 열릴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여행을 계획할 무렵, 자주 생각했던 물음이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볼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것은 일종의 실존적 고민이었다. 죽음이라는 한계를 앞둔 우리들은 마치 그것을 망각한 것처럼 살아가지만, 그것은 단지 자기기만일 뿐이다. 평범함 속에 묻혀 살아가다 보면 죽음이라는 사건은 자신에게 너무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익숙함에서 벗어나 지금 당장 내 앞에 죽음이라는 사건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낄 때, 즉 평소에는 가려져 있던 우리의, 정확히는 ‘나’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부각될 때 비로소 진실된 실존적 고민이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의 삶이란 무엇인가, 나의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음이라는 유한성 때문에 우리들은 끊임없이 그 노정에서 의미를 갈구하고 있다. 


    지금 나는 안락하고, 편안한 익숙한 삶을 포기함으로써, 그동안 무뎌져 있던 다른 감각들이 생기를 되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까지는 수동적으로 세상에 내던져져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추구하는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삶을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는 능동적으로 내가 나를 세상에 내던지고, 끊임없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볼 것이다.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 2014년 독일, 다름슈타트, 집 앞 >



    4 

    

    애초에 세계를 돌아보려 계획했던 시간이 4년 정도였고, 정확히 그 시간만큼 지난 지금에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 선택이 썩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절대 후회할 만한 정도의 것은 아니었음에 안도한다. 그렇게 집을 나와 독일에서 지냈는데 다름슈타트에서는 얼마간 일을 했고, 라이프치히로 거처를 옮기고서는 여기저기 여행을 다닌 후, 다시 돌아오면 그냥 동네 주민처럼 지냈다. 


<2015년 독일, 라이프치히, 동네 >


    아침에는 새들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이른 아침부터 온 동네에 퍼지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종이봉투에 바삭한 브레쉔이나 샌드위치를 담아 오는 것이 그날의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아침식사 후 졸음이 밀려오면 포근한 이불속에 다시 몸을 누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집 앞에 나있는 숲길을 따라 산책을 한다. 울창한 숲 속, 새소리와 시냇물소리,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오는 상쾌한 바람과 이름 모를 꽃들을 벗 삼아 한가로이 거닐다가, 돌다리가 나오면 그 난간에 기대어 숲길을 따라 달리는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간혹 기차의 기관사와 눈이 마주쳐 서로 인사를 건네게 되면 그날 하루가 더없이 즐거워지는, 이런 여유롭고 평화로운 나날들이 나의 독일 생활이었다.


    이러한 마음의 평화가 깨진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형의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야만 했는데, 한국에 남겨진 것에 대한 미련이 내 마음을 갑자기 파고들어 왔고 한 번 균열이 가기 시작하자 그 요동치는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귀국하기 얼마 전인 2016년 1월, 라이프치히에서 다름슈타트까지 자전거로 한겨울의 독일을 횡단하며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멋진 경치를 즐겼지만, 매일 밤 침대에 누워서는 불안한 마음에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한국에 남아있고 싶다는 마음은 커졌는데, 막상 지금 이 상태로 돌아가려니 궤도에서 벗어나버린 그동안의 내 시간들이 무의미해져 버린 것 같았고 그에 대한 후회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세상과 제대로 마주할 기대에 가득 차 있던 패기 있는 젊은이의 모습은 흔적조자 찾을 수 없었다. 한 줄기 빛을 보게 되자 거기에 눈이 멀어 다른 것들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고, 그 희미한 빛을 놓치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어리석은 한 사람만이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 2016년, 독일, 예나 부근 >


< 2016년, 독일, 예나 부근 >


< 2016년, 독일, 일메나우 >


< 2016년, 독일, 일메나우 부근 >


< 2016년, 독일, 마이닝겐 가는 길 >




    5


    한국에 돌아온 후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구들이 반가웠지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때문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독일에서 직장을 얻을 기회가 주어져서 고민하지 말고 그 기회를 잡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에 따라 생각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졌고 결국 한국에 남아 있기로 했다.


    결국, 떠나기 전과 같은 상황으로 되돌아왔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박사 과정에서 내 공부를 이어나가는 길을 택했다. 학원에서 물리, 수학 강의를 하며 예전 석사 때만큼이나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박사 과정 전공은 미학을 선택했는데, 미리 명확한 연구 주제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고 다만 조금씩 내 앎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자 했던 지적 호기심, 혹은 어떻게 보면 지적 허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한 선택이었다. 물리학과 철학, 그리고 미학. 겉보기에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이 세 분야는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조합이다. 비록 예전의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길에 들어서게 되었지만, 크게 고민할 것 없이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나름 만족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 시간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전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바람은 잠시 미뤄둔 채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정신없이 살아갔지만, 채 한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내 심경에 큰 변화를 일으킬만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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