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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cycle Grand Tour May 30. 2023

방랑의 노래 - 프롤로그 2

< 자전거 여행 에세이 >



    6


    한참을 내려가다 부산에 진입했다는 것을 안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지금 왜 부산에 오게 된 걸까. 그 계기가 되었던 지난날의 일들이 떠오른다. 어떤 냄새나 선율, 그러한 감각이 특정한 순간의 기억을 환기시키듯, '부산'이라는 지명에는 지난봄 나의 기억이 고이 접혀있어, 오늘처럼 이따금씩 갑자기 머릿속에 펼쳐지곤 한다.  


< 2018, 8월, 부산 >


< 2018, 8월, 부산 >


    4월. 그때까지의 나는 외로움 속에서도 스스로 괜찮다고 속여 가며 살아왔던 것 같다. 단단하던 댐에 아주 작은 균열 하나가 발생하면, 곧 댐 전체가 파괴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러했던 것. 감정의 기복 없이 기계적으로 살아온 내 일상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만들어내는 물결은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파도처럼 나를 통째로 집어삼켜 버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로는 잔잔한 물결만이 존재했을지도 모를 일. 아마도 나 스스로 거대한 파도의 환상을 만들어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결국 그 심연에 잠겨 헤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6월. 내 조급함에 스스로 바스러뜨린 짧은 늦봄의 행복했던 순간은, 그러나 불행히도 나의 마음에서는 여태 놓지 못하여, 여기저기에 깃든 모든 기억이, 산책길에서의 발자국 소리 풀벌레 소리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도 소중하게 남아있다.


    누군가는 그런 것 역시 시간이 자연스레 해결해 준다 할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시간에만 맡겨두는 것은 너무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만일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미 있는 것들, 고통스러운 일들 모두가 시간 앞에서는 별 의미 없는 사소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은 시간 앞에서는 우리네 삶의 어떠한 것도 의미가 없음을 인정한다는 것, 그리하여 그러한 태도 때문에 어느 것에도 열정을 쏟을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닐까. 정작 우리는 우주적 시간 속에서 아주 잠시 살다 감을 알고, 그 찰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고자 하는데도 말이다. 나는 뭐라도 해야만 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도, 자기 파괴적이고 싶지도 않았다. 강렬한 감정의 발산은 그만큼 커다란 반작용을 만들어냈다. 슬픔과 고통은 외려 나의 정신을 해방시켜 주고, 일상의 권태로부터 깨어나게 만들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과 열정이 샘 솟아났고, 무언가에 몰두하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렇게 찾은 목표는 예전에 미뤄 둔 세계일주였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출발했다.




    7


     < 2018. 6월 기록 中 >


    머물 곳 없이 떠돌아 다녀야만 하는 방랑자에게 삶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불확실한 미래, 굳이 먼 미래가 아니더라도 지금 당장 머물 곳이 사라진다는 불안함에 매일 사로잡히게 될지, 그게 아니라면 과연 그 삶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며 매번 새로움이 시작된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되돌아보면 나의 삶은 끊임없이 정주로부터 벗어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것을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투어링 바이크를 샀다. 나는 방랑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 있었고, 지금의 일은 그 방아쇠를 당겨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나중에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 



    < 2018. 7월 기록 中 >


    삶에 위기감이 느껴질 때, 여행을 가자. 일반적인 여행이 아닌, 지금 당장 먹을 것, 잠잘 것 등을 고민해야 하는, 그래서 매일매일 나의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모험을 해보자. 삶이 권태로울 때,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 내가 얼마나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지, 삶에 대한 의욕이 얼마나 큰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언젠가는 다시 세계일주라는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가리라 생각했었다. 한 번 마음에 박혀 있는 것은 웬만하면 결국은 하게 되는 그간의 나의 모습을 내가 잘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만큼 지금의 내 상황은 이례적이다. 앞으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면 내가 겪게 될 상황이 어떠할지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이미 4년 전에 어느 정도 겪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번째 여정보다는 훨씬 힘들 것이다. 이번에는 정주의 시간을 웬만하면 갖지 않고 계속적으로 떠도는 삶을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철들지 않음. 우리에게 강요된 기존 체계의 작동 방식을 내면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 주위에서 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뒤처지고 낙오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채, 모두가 기계 속의 부품이 되어 영원히 그 자리에서 맴돌다 닳아 없어져버리는 철든 자들의 세상. 삶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바라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가.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냥 어쩔 수 없이 살아내는 일상이 켜켜이 쌓여 굳어져버리면, 기존 체제의 충실한 노예가 되어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을 허비하다 종말을 맞을게다.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다.



    “다시 한번 더 살고 싶어 하며, 영원히 그렇게 살고 싶은 것처럼 살 것!”이라고 요구하는 이 문장은 “모든 것이 똑같이 영원 회귀한다.”라는 우주론적 진술이 아니라, “그렇게 영원히 똑같이 되풀이되더라도 절대로,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의욕과 의지의 명령문이다. (「방랑자 니체Ⅲ」, 고명섭)



    우리는 모두 시간적 존재자들이다. 하지만 그걸 계량화해서 나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정말로 편의적인 것일 뿐, 저마다 서로 다른 속도로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가속이 붙는 건 아마도 어릴 때의 호기심을 점차 상실해 가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매 순간이 새롭고 매 경험이 고유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압축될 수 없는 채로 남게 될 것이다. 반면 매일 반복되는 삶,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게 되면, 그 긴 시간들에 대한 기억은 하나의 덩어리로 응축되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간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결국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수록 생물학적 나이에 비해 심리적 나이가 많아지는 셈이다. 따라서 심리적으로 장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든지, 그게 불가능하다면 호기심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면 될 것이다.





    8   


    자전거에 짐을 싣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왜 혼자 다니는가? 외롭지 않은가? 심심하고 무섭고 위험하지 않은가? 혼자 다니면 외롭고 심심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은 많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한결같다. ‘혼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과 더 쉽게 만날 수 있다고. 그래서 외롭지 않고 심심하지 않다고.’ 물론 내 입장에서는 이게 사실이라 생각하지만, 당연히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간혹 있을 수밖에 없다. 좋은 경치를 보거나, 어떤 좋은 일이 있는데, 그것을 공유하고 싶은 누군가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면, 그러한 좋은 감정은 외려 내게 어떤 결핍을 확인하는 사건으로 다가오게 된다. 


    장기간 혼자 방랑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곧, 정말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 반복을 의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끊임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보면 그것이 당연한 것임을, 그래서 그러한 외로움과 고독함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모든 사람은 근원적인 고독을 가진 외딴섬과도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더 이상 혼자라는 것은 결핍된 상태가 아니게 된다.



< 2015, 독일 >

    

    예전에 독일을 자전거로 여행할 때의 기억이다. 해가 저물고 사방에 저녁 어스름이 서서히 스며들 때면, 묘한 감정이 일곤 했다. 적막이 감도는 어두운 길을 나는 홀로 나아가는데, 주위에 있는 집들에서 하나둘씩 따스한 불빛이 켜지면, 그걸 통해 나는 상대적으로 혼자라는 사실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 자체는 결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고 그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이것은 비단 방랑자의 마음가짐에 필요한 것만이 아닌 일반적인 인간관계에 필요한 토대가 아닐까.




    9


    주위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내 행위에 나름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며 출발 준비를 마쳤다. 2018년 7월 24일,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사전점검의 의미로 한 달 정도 국내, 일본을 돌아보기로 했다. 가지고 있는 장비는 대부분 4년 전에 마련해 둔 것들이라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것들은 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용 캠핑 장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자전거에 장착하고 동쪽으로 페달을 밟으며 서서히 그 무게에 적응해 나갔다.


< 2018, 7월, 한국 여주 >


< 2018, 8월, 일본 Aso >


< 2018, 8월, 일본 Aso >


    올해 여름의 더위는 정말 살인적이다. 작렬하는 태양에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달릴 때면 자전거 타이어가 녹아 바닥에 쩍쩍 달라붙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정도다. 습도도 높기 때문에 흡사 습식 사우나 속에서 달리는 것과 같았고, 그 열기는 밤까지 이어져 그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콘크리트 위에 텐트를 펼치고 잠을 자려하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텐트 안은 정말 찜통이 된다. 흐르는 땀을 식혀보고자 근처 화장실에서 간이 샤워를 해보지만, 돌아서서 나올 때면 흐르는 게 땀인지 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별 소용이 없다. 비록 더위가 너무 심하지만, 그만큼 주위로부터 많은 배려와 응원을 받으며, 기존의 삶과는 너무도 다른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냈다. 매 순간의 고민들이 먹는 것, 씻는 것, 자는 것 등의 일차원적인 것들이지만, 평소에는 별로 문제 될 일이 없는 그 기본적인 것들의 중요함을 새삼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동시에 매일의 낯섦, 그 방랑의 삶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문해보고 있다. 


    지금 여기, 일상으로부터의 벗어남은 다가올 기나긴 방랑의 삶에 대한 예비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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