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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cycle Grand Tour May 30. 2023

방랑의 노래 - 자전거 세계일주 #1

<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길 >



    < 2018.11월 Yaan, China >



< 중국 야안 >


< 중국, 야안 >

     

    줄곧 내리는 비, 낮인지 밤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 만큼의 우중충한 날씨와 습한 한기가 만들어내는 묘한 기분. 늦가을의 냉기가 도는 그 빗소리는 나에게 오히려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흡사 감옥과도 같은 음침한 외양을 한 숙소는 나를 자꾸만 그 안에 붙잡아두는 것 같고, 이러한 모든 상황은 정말 오랜만에 나를 철저히 고립된 상태로 몰아넣었다. 유명 관광지 그 어딘가를 방문해야 한다는, 혹은 누군가의 초대에 가야 한다는, 아니면 오늘 얼마만큼의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는 등의 어떠한 조금의 압박감도 없는, 오늘은 정말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여행 중의 휴일인 셈이다. 


    이러한 몸이 갖는 여유로움은 정신을 자극하여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끔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들을 계획하게 만들고, 때로는 후회에 또 때로는 기대감에 휩싸이도록 한다. 이런 때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펼쳐지고,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몇 편의 소설을 써 내려가기 마련인데, 문득문득 떠오르는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은 쉽게 가라앉질 않고 한참 동안이나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현실에서 무의미한 가정들이 그 속에서는 의미를 얻고 그 위에 공상의 세계를 만들어 가다 보면, 현실에서 너무나도 떨어져 있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지가 않다. 그러다 정신이 들면 지금의 세계는 또 다른 ‘진짜’ 세계의 공상세계가 아닌지, 부유하는 먼지 같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들다가 내 존재를 의심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게 의식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 내가 외부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 중국 야안에서의 숙소, 아침 전경 >



< 중국 야안 숙소 >



    중국 야안에 도착하자마자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온라인에서 예약한 숙소에 찾아가 보니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허름한 뒷골목이 나온다. 간판도 전혀 없어 해당 숙소에 전화를 해보니 - 물론 영어가 통하지도 않았지만 – 대충의 눈치로 건물 앞에서 기다리라는 것 같았다. 깜깜한 비 내리는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른 곳을 헤매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잠시 기다리니 주인 분이 나왔고, 가파른 계단 위로 나를 안내한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 가방을 분리 후 몇 번을 오르내리며 모든 짐을 옮겼다. 숙박시설로서 영업을 하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다. 어둠, 비, 피로, 삼 박자가 맞아떨어지니 아무리 음침하고 허름해도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다. 몸을 씻고 패니어들을 정리하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뒤쪽 패니어에 걸어놓은 등산화를 안 가져왔던 것이다. 비도 오고 어두운 상태에서 몇 번 오르내리며 짐을 옮기다 보니, 바닥에 놓은 등산화가 눈에 띄지 않았던 것. 서둘러 내려가 살펴보니 흔적도 없다. 행인도 없는 후미진 곳이었고, 대략 10분 남짓한 시간이었는데도 누군가 가져간 것이다. 


    두 달간 자전거 뒤에 대롱대롱 짐짝처럼 매달고만 다녔던 나의 중등산화. 드디어 쓰촨 서부 고산지대 초입에 당도하였건만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날 일찍 새 등산화를 장만하러 시내에 나갔는데 등산 용품을 파는 곳 자체가 거의 없었다. 다행히 한 군데 영업 중인 곳을 찾았는데, 나에게 맞는 등산화가 딱 하나 있었다. 비록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스타일이고 뭐고 당장 오늘부터 닥쳐올 추위를 막아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바로 구매했다.



< 새로 산 등산화 >




    이제부터는 계속 서쪽을 향해 나아간다! 중국의 주요 역사 너머에 있는 티베트로 가는 길, 포장된 너른 산길이 나오더니 건물들은 자취를 감추고 인적이 끊긴다. 한참을 오르고, 2킬로미터 넘는 터널도 지나니 차마고도 기념관과 공원이 나온다. 날이 어두워진 것도 아니었지만 화장실도 있고, 근처에 음식점도 있어서 이곳에서 캠핑을 하기로 한다. 관리인분께 허락을 맡고, 텐트 자리로 딱 알맞은 곳에 자리 잡았다. 


< 중국 야안에서 캉딩 가는 길 >


< 중국 야안에서 캉딩 가는 길 - 2km 넘는 터널 안이 정말 암흑이다.>


< 중국 야안에서 캉딩 가는 길 >


< 중국 야안에서 캉딩 가는 길 >


< 차마고도 기념관 >


    다음날에도 비는 부슬부슬 내렸고, 텐트를 채 말리지도 못하고 출발해야만 했다. 계속된 오르막길, 간간이 보이던 음식점과 구멍가게도 점점 사라져 간다. 비가 꽤 강하게 내려, 강행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고, 주변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나오기만을 바랬다. 한참 가다 보니 폐건물이 눈에 들어왔고, 어쩔 수 없이 하루 쉬어가기로 한다. 고도가 높아지니 온도가 많이 낮아졌고 비에 젖기도 해서 추웠는데, 웬걸 건물 안에 모닥불 자리가 있었다. 안전에 유의하면서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고 텐트 안에서 또 하루를 보낸다.


< 비 오는 날, 캉딩 가는 길 >


< 폐건물에서의 캠핑 >
< 폐건물에서의 캠핑 >


< 폐건물에서의 캠핑 >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때우고, 오늘 가야 할 루트를 살펴본다. 꽤나 긴 도로가 반듯한 직선이다. 그건 곧 터널이라는 말인데, 문제는 너무 길다! 바로 4km가 넘는 얼랑산 터널인데, 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터널이자 가장 긴 터널이었다. 거길 통과하지 않으면 3400m 이상의 높고 험한 얼랑산 능선의 구불구불한 옛길을 오르내려야 한다. 비자 문제만 없었더라면 천천히 경치도 감상할 겸 그 길을 갔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시간에 대한 압박이 좀 있다.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비자 기간 때문에 혹시라도 무슨 문제 때문에 연장이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다.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여유 부리는 게 힘들 것 같다. 

    

< 얼랑산 터널 표지판, 길이 4176미터 >


< 얼랑산 터널 입구 >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결국 얼랑산 터널 앞에 도착했다. 이전에 통과했던 2km 길이의 터널의 두 배라니, 그때도 터널 내 갓길이 넓지 않고 큰 덤프트럭들이 빠르게 질주했던 터라 상당히 위험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혹시라도 지나는 트럭에 태워달라 부탁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몇 번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그냥 강행하기로 했다. 대신 가지고 있는 안전장비를 총 동원했다. 라이트를 여기저기에 달아두고 최대 밝기로 해서 멀리서도 눈에 잘 띄도록 했다. 긴장하며 페달을 밟고 드디어 터널에 진입한다. 생각보다 터널 안이 매우 어두웠다. 지나는 차의 전조등이 없을 때는 정말 암흑을 통과하는 느낌이다. 덤프트럭들이 옆을 스치듯 지나갈 때마다 기압 차에 의해 내 자전거가 휘청인다. 그러다 한참을 달리니 저 멀리에만 있던 희미한 빛이 점점 밝아왔고, 마침내 길고 길었던 어둠의 터널 끝에 다다랐다. 


    그리고 마주한 새로운 세계, 숨 막힐듯한 풍광이 나를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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