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못한 것보다 하지 않은 것
한 살, 한 살, 그렇게 또 한 살이 쌓여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고 만 나이로 우기는 것도 민망한 숫자의 나이가 되어가면서 드는 가장 대표적인 미련과 후회는 '하지 못한 것'이다. 시간이 많았을 때, 아니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착각하고 지냈던 때에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을 잔소리처럼 많이 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꼰대처럼 내가 그 잔소리를 하고 있다. 너희는 그러지 말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대면서..
'살아보면 실패한 것보다 해보지 못한 것,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
사람이 좋아 지금도 좋은 친구로, 소주 한잔이 생각날 때면 비록 생업에 치여 만나 마시지는 못해도 전화통화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녀석이 있다. 제법 잘 생겼고 노래도 잘 불렀다. 보자마자 간 보는 것 없이 친해진 걸 보면 둘 다 속이 없었거나 속이 좋은 녀석들이었나보다. 갓 스물을 넘긴 열정으로 열심히 연애도 했고, 캠퍼스를 휘젓고 다닐 만큼 넉살도 좋았다. 어그러진 인연이 생기면 술 한잔 먹고 같이 욕도 하고 위로해 줬던 그때도 지금도 좋은 그 녀석과 관계된 이야기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이 전국일주를 해보자는 당시로서는 제법 당찬 계획을 세웠다. 지금이야 비행기 타고 해외로 가는 게 별반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고 유럽 배낭여행도 찰떡같이 계획 세우고 쑥떡같이 다녀오는 시절이니 전국일주 계획에 '당차다'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분명히 '당찬 계획'이었음에 틀림없다. 부지런히 모은 돈으로 빨간색 프라이드를 친구 녀석이 떡하니 구입을 했다. 주말이면 인력시장에 나가 막노동을 하고 밥값 아껴가며 제법 잘 굴러가는 눈이 부실 것 같은 그런 차였다. 하지만 당시 연애에 푹 빠져 있던 나는 계획 단계부터 시큰둥했다. 좋은 생각이라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여자 친구와 떨어져 있을 마음이 없었던 거다. 친구 녀석들의 등쌀에 마지못해 동의를 하긴 했지만 여행경비를 모으는 것에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빨간색 차를 보고서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 걸 보면 정말로 마음이 없었고, 친구들을 속인 나쁜 놈이었던 거다.
그래도 착한 친구 녀석들이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역시나 속없이, 영혼 없이 '그래, 알았어.'라는 답을 하고선 출발 전날 술을 양껏, 아니 양이 넘게 마셨다. 별 볼일 없는 나쁜 놈이 분명했던 그 당시의 나는 친구들과의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린 체 부어라, 마셔라 하고 밤을 지새웠다. 새벽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 이후에는 그야말로 대자로 뻗어 '기절'을 했다. 나를 데리러 온 친구들이 깨우고 때리고 했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란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과 약속과 신의를 저버린 놈이 되었고 두 녀석은 여행을 떠났다. 한동안 친구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별 개의치 않았다. 부러움보다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믿음만이 가득하던 시절이어서 그랬나 보다. 하지만 그 마음만 먹으면은 우선 시간이 많을 때는 도통 마음이 먹어지지 않았고, 점차 규칙적인 업무가 생기면서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이제는 마음을 먹는다고 석 달이라는 시간을 낼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처음 얘기한 것처럼 어느새 나이가 들었다. 나이가 들고 책임져야 하는 일과 사람들은 더 늘었다. 지금도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한 달 정도의 전국일주 여행이다.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때 놓쳐버린 그 기회가 너무도 아쉽다.
실패한 것보다 해보지 못한 것,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이 살아가면서 가장 후회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