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트콤 덕후였다. 초등학교 때 논스톱을 보고 자랐고, 중고등학교 때는 하이킥에 미쳐 있었다. 대학교에 왔더니 웬걸. 기억도 안나는 순풍 산부인과가 그렇게 재밌을 줄이야. 시트콤은 밤을 새우며 봐도 재밌었고, 아무리 힘든 일도 잊게 했다.
안타깝게도 2013년 <감자별>을 기점으로 사실상 한국 시트콤의 명맥이 끊겼다. 혹자는 "예전처럼 가족들이 모여 밥 먹으며 시트콤을 보는 문화가 사라져서" 더 이상 시트콤을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비겁한 변명!! 에 불과하다. 그냥 만드는 사람이 없는 것, 또는 잘 만들지 못한 것이다...
지금처럼 시트콤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이 높았던 적도 없다. 유튜브에서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의 조회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시트콤의 마력이 도대체 뭐길래, 10년이 지나도록 회자되며 인기를 끄는 걸까.
시트콤에는 또라이만 존재한다
지금 당장 본인이 아는 시트콤 하나를 떠올려보라. 과연 거기에 나오는 정상인이 몇이나 될까? 시트콤에는 기본적으로 또라이들, 현생에서 버림받을만한 캐릭터들만 등장한다. (드라마와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시트콤을 보며 안정감을 느낀다. '나보다 못난 저 새끼도 저렇게 잘 사는데, 나라고 못살겠어?'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깔려있는 것. 드라마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설렘과 동시에 괴리감을 주지만, 시트콤의 하자 있는 캐릭터들은 안도감과 공감을 준다.
시트콤에는 그룹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시트콤에는 5명 이상 어울려 다니는 그룹이 존재한다. 그건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이들은 매번 우당탕탕 싸우고 난동을 피우지만, 결국에는 서로 화해한다. 상대가 어떤 짓을 하든 사랑하고 보듬어 주는 것. 그것이 시트콤이 보여주는 판타지다. 어쩌면 악당을 물리치는 쾌감, 절절한 사랑보다 더 큰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급변하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시트콤에 나오는 안정적인 관계를 원한다.
시트콤은 짧다
시트콤의 기본 길이는 대부분 20~30분에 불과하다. 자기 전, 또는 밥 먹을 때 보기 딱 좋은 길이다. 긴장하며 각을 잡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다. 또 한 에피소드 안에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끝난다. 20분 안에 긴장-흥분-분노-쾌감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것. 이제 영상이 새로운 언어가 된 현대인들에게, 짧은 길이는 필수요소다.
나름 논리적으로 시트콤이 재밌는 이유를 설명하려 했지만... 사실 시트콤은 그냥 미치게 웃기고 재밌다. 그 또라이 캐릭터들과 말도 안 되는 에피소드를 사랑한다. 아직도 여러 시트콤을 재탕, 삼탕하는 나는 이제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 다시 한번 시트콤 시대가 도래하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