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박서준 팬임을 자처하진 않지만 어쩐지 그가 나오는 드라마는 모두 보게 되는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태원 클라쓰>를 시청했다. 그런데 이 신선함 오글거림은 뭐지. 만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온듯한 헤어스타일과 대사가 나를 당혹게 했다. 정녕 실화 인가 싶어 몇 화를 더 봤는데, 똑같았다. 그럼에도 <이태원 클라쓰>는 금토 11시 편성 공백을 메꾸며 시청률 5%에서 16.5%까지 고공 행진했다. 이번에도 '박서준 매직'은 통했나 보다.
출처 : JTBC <이태원 클라쓰> 속 박새로이와 조이서
평범한 스토리
입체적 캐릭터
재밌는 드라마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토리는 지극히 평범한데 캐릭터가 입체적인 경우, 캐릭터는 시종일관 똑같은데 스토리가 천방지축인 경우다. <이태원 클라쓰>는 단연 전자다. '주인공이 역경을 이겨내고 복수를 성공한다'는 스토리는 평범하지만,캐릭터는 변화무쌍했다.
우둔하고 단순한 주인공 박새로이는 복수에 있어서만은 계산적이고 욕심이 많다.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른다"는 대사가 이를 집약해 보여준다. 착하지만 바보 같지 않고, 정의롭지만 폭력도 쓴다. 무릎 꿇은 장대익에게 날린 "내가 바보로 보여?"라는 대사는, 어쩌면 마지막까지 박새로이를 '착하기만 한 사람'으로 생각한 시청자들에게 날리는 한방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이서는 두뇌부터 외모까지 모든 게 완벽한 천재 사이코패스다. 그런 그녀가 사랑 앞에서 변한다.약한 내면을 들키는게 두려워 센 척만 하다가, 불안함과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출처 : JTBC <이태원 클라쓰> 속 오수아
<이태원 클라쓰>에서 가장 매력 있던 캐릭터는 오수아다. 박새로이 덕분에 '장가'에 들어갔지만 결국 다시 그를 다시 사보타주해야 하는 역할. 딜레마의 연속이다. 특이한 점은 여타 드라마와 달리 오수아에게 고아출신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절한 부모님의 사연과 심리적 아픔이 생략된 것이 오히려 극을 더 세련되게 했다. 그녀 앞에 놓인 고민은 오로지 '성공'과 '사랑'뿐이다.
나머지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장가를 배척했던 장근수는 장가 시스템을 배우며 성장하고, 떼만 쓰던 장근원은 나름 머리를 써(?) 납치범이 된다. 그나마 평면적인 인물이 있었다면 장대익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악에 받친 캐릭터. 이 일관성은 연출로도 드러났다. 뜀박질과 소동이 난무한 드라마에서, 그가 등장하는 장소는 오로지 그의 집무실 뿐이었다.(거의 NPC수준...)
출처 : JTBC <이태원 클라쓰>
외부 적을 향해 달려간 박새로이
갑자기 깨달은 내면의 사랑...?
흥미진진하던 <이태원 클라쓰>도 결말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3화까지는 '단밤'에서 식구들이 아등바등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14화에서 갑자기 '몇 년 후'가 나오더니 IC는 굴지의 대기업이 된다. 그건 드라마상 전개로 허용해준다고 치자.
여태 극의 80%가 박새로이의 복수에 대한 열망, 성공 과정을 그리는데 쓰였다. 그렇다면 그에 응당한 복수극을 연출해 시청자에게 사이다를 줘야 마땅했다. 13화까지 해오던 대로, 박새로이만의 경영 전략으로 직접 장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장가에 복수를 한 건 박새로이가 아니었다. 오수아의 내부고발로 장가가 무너졌다. 분명 복수는 복수인데... 왠지 김이 빠지는 대목이다. 복수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상대를 굴복시켜야 통쾌한 법. 박새로이는 이미 무너진 장가를 인수 합병하며 복수를 완료했다.
더불어 그는 갑자기 15화에서 '복수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외부의 적을 향해 달려가던 캐릭터가, 갑자기 내면의 사랑을 알게 됐다. 장대익과 박새로이의 '맞짱 대결' 장면에서, 박새로이가 생각한 건 아버지가 아니라 조이서였다. "대표님 죽으면, 나도 죽는 거야"라는 조이서의 한마디가 박새로이를 일으켜세웠다. 14화까지 복수! 복수! 복수!만 외치던 캐릭터가 갑자기 사랑!! 사랑!! 을 외친다. 이런 식으로 결말을 낼 거면, 12화 정도부터는 박새로이의 심경변화를 조금씩 깔아줬어야 했다.
출처 : JTBC <이태원 클라쓰>
장근원...
꼭 그렇게 등장해야만 했냐!
이번 드라마로 가장 혜택을 본 건 장근원 역을 맡은 안보현이다. 큰 기럭지에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 대한민국 여심을 뒤흔들었다. 이런 그를 조금 더 잘 활용할 수 없었을까. 장근원은 한번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탕아(?) 역할이다. 그의 재등장은 더욱 임팩트 있어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와 오수아에 집적대는 등장은 충분하지 않다.
조이서가 납치될 때까지 납치범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다가, 결정적 순간에 장근원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그 장면은 클리프행어로 예고편에 사용될 수 있다. 너무 뻔하다 할 수 있겠지만, 시청자에게 더 확실히 각인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웹툰을 기반으로 성공한 드라마가 드물었다. '조선로코-녹두전'과 '타인은 지옥이다'가 소소한 인기몰이를 했으나, 큰 임팩트는 없었다. '이태원 클라쓰'가 다시 한 번 웹툰 기반 드라마의 포문을 열어준 느낌이다. 2020년에는 더 흥미로운 드라마를 많이 보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