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
아래 글은 번역서 '출근했더니 스크럼 마스터가 된 건에 관하여'의 번역 후기 초안입니다. 애자일 프로젝트를 실패한 이후 심한 트라우마를 겪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한 경험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자세만큼은 뼛속까지 잘 새겨진 모양입니다.
'나 같은 실패자가 더는 없었으면'하는 바람으로 번역한 책, '출근했더니 스크럼 마스터가 된 건에 관하여'는 현재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 중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폭망 했었죠. 동작하는 데모도 있었고, 해외에도 전시되었던 제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팀은 해체되었고, 대부분이 퇴사를 했으며, 그나마 남은 사람끼리 연락도 하지 않습니다. 그때의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남아서 '애자일'이란 말을 입에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요.
주변을 돌아보니 저와 같은 나쁜 경험을 한 사람이 꽤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국내외에 성공 사례가 없진 않은데 대체 무슨 차이가 있던 걸까요? 수년간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그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닥터 스트레인지가 타임 스톤 돌려보듯 다양한 시나리오로 시뮬레이션하기도 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참여자의 커밋먼트 없이 수단이 목적으로 변질되어 강행된 결과'였습니다. 당시의 프로젝트는 시장 상황이 변화무쌍하지도, 고객의 요구가 모호하지도 않았으며, 일정도, 작업량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태였죠. 그러다 보니 애자일의 사상과 기법이 효과를 낼만한 구석이 없었습니다. 아픈 데가 없는데 약을 쓰는 경우였죠. 분명 좋은 취지에 훌륭한 기법인 건 맞지만 그게 오히려 시행착오를 낳고, 명확했던 초점이 흐려지고, 무리하게 형식을 갖추면서 효율이 떨어지는 나쁜 경험이 쌓였습니다. 결국 팀원은 지치고, 의심하고, 냉담해졌죠.
사실 그전부터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이 있어 필드에서 실천하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사람'을 다루는 퍼실리테이션 쪽과 '공법'을 다루는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쪽에서 자발적인 참여가 많았죠. 당시에 임직원 스스로가 서로에게 전파하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게 악몽으로 변한 건 조직에서 '강제'하면서였죠. 이제까지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주변에 소개하려 했던 얼리어답터들도 이때부터 스텝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현장은 준비가 되지 않아 저항감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든 떠 먹여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마치 강제 징집되듯 우리 팀은 소환되었고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내가 어떤 상황이었으면 극복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이런 결론에 이르렀죠.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간접 체험할 수 있다면...'
마치 이세계에 환생하는 판타지 소설 주인공처럼 내게 벌어질 일을 미리 알고 있다면 나는 먼치킨 캐릭터로 거듭 나 던전에서 서바이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마침 발견한 게 이 책의 원서 'SCRUM BOOT CAMP THE BOOK'이었죠. 애자일의 철학, 디테일한 기법을 익히느라 숲을 놓치기보다는 맵 핵(map hack)을 써서 전체 숲을 확인한 뒤에 스테이지별로 공략법을 찾는 게 유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화로 전체적인 스토리를 섭렵한 후에 해설로 취지와 고려사항을 이해하고 저항감이라는 가드 대신 갈고닦은 궁극기를 쓸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조직의 강제력에 쫓기지 않고, 길드 스스로가 호흡을 맞춰 프로젝트를 했더라면, 전체 맵을 탐색하고 공성전을 펼쳤다면 그 프로젝트는 성공했을까? 그런 생각을 거듭하며 이 책을 완성했습니다.
'출근했더니 스크럼 마스터가 된 건에 관하여', 이 책은 여러분이 겪게 될 이세계의 튜토리얼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지, 내가 갈 곳은 어디인지, 맵 핵으로 방향을 잡고, 전략을 세우고, 최소한의 시행착오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세요. 처음은 나약한 쪼랩 캐릭터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레벨업이 되는 성장의 기쁨을 길드원 모두가 만끽하면 좋겠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 https://tum.bg/x0Zhw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