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어머니들
어렸을 때 시장을 따라가면(꽈배기나 도넛라도 사줄까 싶어) 엄마가 콩나물 값이나 생선값 등을 흥정을 하면서 깎는 게 창피하고 싫었다.
지금이야 생각하면 우리 형제들 키우며 엄마가 사는 살림도 빠듯했으니 어쩔 수 없으셨을 것도 같지만, 쪼그려 앉아 종일 여름이면 더위에, 겨울이면 추위에 떨면서 시장 장사를 하는 분들이,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안돼 보였고 그걸 깎는 엄마는 우악스럽고 궁상스러워 보였다.
"손해보고 파는 장사는 없어"라고 말하지만, 공산품 가격에 비하면, 저걸 팔아서도 남는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른이 되어, 내가 엄마 나이가 되어 장을 보면서도 결혼초엔 물건값도 잘 흥정하지도 못하는 내가 숙맥 같아 보였는지 남편이 가격을 저울질하곤 했다. 시장이나 노점에서 그러는 건 왠지 여전히 싫어서 그러지 좀 말라며 싫은 소리를 하기도 했다.
"나 자그마한 화원 할까, 서점 할까?"
장난반으로 던진 말에, 나 같은 사람은 은퇴 후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며, 행여 장사라도 하면 딱 말아먹을 스타일이라고.... 남편은 손사래를 친다.
굳이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집에 남은 것이 있어도 추운 날 떨고 있는 노점상 할머니들을 볼 때면 특히 잘 못 지나치고 뒤 돌아보게 되거나 사서 봉지 봉지를 들고 집에 올 때도 있었다.
얼마 전 둘째가 학원 알바를 마치고 밤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검은 봉지 하나를 들고 와서 뭐냐고 물으니, "한라봉인데?" 한다. 웬거냐고 물었더니, 추운 날 리어카 아저씨가 길가에서 팔고 있고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는 거 같아 보여서 만원 주고 한 봉지 사 왔다고. 나한테는 툭툭 까칠한 딸 이건만, 여린 마음이 그 순간 발동했나, 기특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재작년 명절 무렵 백화점 식품매장을 들를 일이 생겨 갔다가 동선이 계속 겹치는 나이 든 할머니한테 초점이 갔다. 눈에 띄게 작은 키와 야윈 모습에 한없이 초라하고 추레한 차림이었다. 행색으로만 판단할 일은 아니건만, 파우치에서 샤넬 파우더를 꺼내 바르는 멋쟁이 할머니들도 많이 보았던 백화점이라, 으아한 생각이 들었다.
옷은 몇 달을 안 빨아 입은듯한 구겨지고 때 묻은 차림에 등에는 할머니 몸으로 지탱하기도 버거워 보이는 커다란 배낭이 힘겹게 들려있었다. 기웃기웃 식품매장의 진열대를 서성거리며 시식코너 주위를 다니는 걸 보니 그때 짐작이 갔다. 지하철역이랑 연결된 곳이기도 하니 배가 고파서 어쩌다 무작정 들어온 것은 아닐까...
"명절 전 날 무슨 사연이 있어 이곳을 헤매고 계신 걸까?
자식들은 없는 걸까?
남편은 없는 걸까?
치매는 아닌 것 같은데....
친정엄마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장볼생각은 잠시 뒷전으로 내 눈동자는 그 할머니 뒤만 계속 따라다녔다. 이대로 돌아가면 집에 가도 눈에 밟힐 것 같아 안 되겠다 싶었다. 인파가 많은 날이라 할머니 근처로 내가 다가가는지도 모르셨다.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 할머니 손에 살며시 쥐어드렸다. 명절을 앞둔 날이라,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할머니의 모습을 지나쳐서 내 갈길을 가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도 많았던 때라 할머니가 민망해하실까 봐, 또 일순간 으아해하신 표정이었기에, 얼른 자리를 떴다.
모두의 친정엄마들.....
내 친정어머니 같은 나이의 연배 노인들을 보면 이제는 엄마 같아서 타인처럼만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는,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 사회의 노인빈곤문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고 2017년 기준 한국 은퇴연령층 (66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은 43.4%로 OECD 가입국중 가장 높다고 한다. 국민연금, 공적연금, 기초연금과 기초보장제도 같은 지원을 모두 더해도 최저 생계비 이상의 수입이 있는 비율이 20%도 안된다는 것도 슬픈 노령화 사회의 현실이다.
얼마 전 신문에 서울역 앞에서 눈 오는 날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인에게 외투를 벗어준 신사의 사진이 실려 감동을 주었다. 그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그 사연을 믿지 못하고, 연출된 사진일지 모른다며 댓글은 시끄러웠고, 며칠 뒤에 그걸 찍은 사진기자의 설명과 해명기사가 실렸다. 아직도 이 사회는 이런 훈훈함이 살아있구나 싶었다.
집 앞 노점상에 일요일만 빼고, 야채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가끔 딸도, 어머니인듯한 분까지 나와서 함께 콩을 까고, 마늘을 다듬는 모습을 본다. 까놓은 밤, 은행, 시금치.... 봉지 봉지 사서 왔다. 아주머니는 덤으로 청양고추를 또 주신다.
살가운 딸이 되고 싶은 건 머릿속의 생각인지, 엄마의 물건값 깎던 궁상이 명절 전의 노점상 아줌마를 보면서 또 생각이 났다. 코로나 5인 이상 금지로 우리 형제들도 이번에는 모이지 않기로 해서, 선물을 보내드리고 전화통화를 했지만 엄마는 쓸쓸하고 조용한 설날을 보내셨을 거 같다. 연휴의 끝날,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그래도 떡국 한 그릇 따스하게 먹고 지나갔을 설날이었으면 하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