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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의 한가운데 Apr 12. 2021

식물킬러가 되는 순간

언제나 식물친구들의 마음을 읽을수 있을까?

나:   물은 얼마 만에 한 번씩 주면 될까요?

화원 주인: 집집마다 환경이 틀리니까... 뭐라고 말하기가 그러네요. 햇볕은 좋아해요.


'사계 국화'랑 '포체리카'를 들고 나서기 전, 그러니까 두 달 전쯤 단골집 화원 주인의 말은 여전히 헷갈렸다.


"1주일에 한 번요", "2주일에 한 번요..." 이런 시원한 사이다 같은 답을 원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화원 주인장의 말이 늘 맞다.  내 집이 남향이라 태양볕이 잘 드는 집인지, 햇볕이 잘 안 드는 1층인지, 베란다가 없어 실내에서 키우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같은 규칙이 정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름의 쌓인 경험치와 매뉴얼대로 신경을 쓰고 키웠는데도, 결국 보랏빛 사계 국화는 우리 집에서 고작 한 달을 있다가, 시름시름 낯빛이 이상해졌다. 아마 지난번 지루한 장마 기간에 베란다 습도를 고려하지 못하고 물주는 시기가 너무 빨랐나?  우리 집 와서 환경이 바뀌어서 스트레스가 저 혼자 너무 심했나?  뭐지? 이런저런 생각을 혼자서 해보지만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자기 딴에는 버텨보려고 애를 쓰고 있겠지만, 뭔가 내가 잘못했을 것이다.


생김도 다르고, 키도 다르고, 피워내는 꽃과 잎도 제각각인데 같은 기준에 놓고  똑같이 자라달라고 주문하면 모두가 행복할 리 없다. 어떤 식물은 햇볕 쨍쨍 내리쬐는 양지를 좋아하지만 어떤 식물은 그늘진 응달을 좋아하고 어떤 식물은 물기 없는 흙을 좋아하지만 어떤 식물은 뿌리를 거의 물속에 담그고 있어야 편안해 한다. 그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 모두가 행복하다.  
<소박한 정원> 중에서, 오경아

아파트 베란다에 식물들을 취미 삼아 소소하게 키우기 시작한 지는 20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식물들이 보내오는 무언의 소리를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20년이라고 했지만, 베란다에서 그저 물 잘주고, 환기에 신경쓰고, 가끔 영양제 수액 꽃아주고 했던 지극히 아마츄어 식물러버다.

누군가 식물을 왜 키우느냐고 물어보면......

살다 보면 에너지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집에 도착하는 날들이 있기 마련이다.  혹은, 장마철 축축한 빨래처럼 바닥에 젖어서 붙어있는 기분.... 그럴 때마다, 반짝이는 푸릇한 초록 이파리들과 꽃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가물은 땅에 단비가 내리듯 마음에 생기가 도는 느낌들을 자주 경험했다.  물론, 기분이 좋은 날은 더 좋게 만든다.  꽃이 있는 식물도 좋아하지만,  잎이 풍성한 관엽식물들에도 마음이 많이 간다.


태양이 뜨거운 여름은 식물들이 폭풍 성장을 하는 계절이다.  하루하루 쑥쑥 자라나는 잎들이 사랑스러워 수시로 쳐다보며 정면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아래에서, 위에서 자세히 바라보고 사진도 찍어준다.

'워터 자스민'처럼 매주 물만 주면 별 탈 없이, 나의 수고로움도 없이,10년 넘게 자기 자리를 확실하게 자기 집처럼 자리 잡은 녀석이 있다 (포지셔닝). 반면에, 특별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아도 어느 날 시름 시름하더니 잎사귀가 힘을 잃어 다 떨구고 짧게 있다가 떠나는 아이들이 있었다. 수국, 브론펜시아, 후쿠시아등도 잘 자라다가 우리 집에서 떠나보냈던 아이들이다.  


반짝이고 반들거리는 잎들이 마치 인조 이파리처럼 믿을 수 없게 싱그러웠던 스웨디시 아이비도 수년간을 삽목을 해도 잘 자라주었는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게 매년 잘 되던 삽목도 안되더니 결국 작년에 이별했다. 인터넷을 수소문해서 구입을 해서 데려온 스웨디시 아이비들조차 잘 크지 못하고 떠나갔다. 아직도 오리무중 궁금.


올해 데려온 '어메리칸 블루'는 잎이 솜털처럼 연약하고 얇다.  물을 좋아하고 새잎이 돋아나면서 하늘을 향해 자라간다.  이파리가 너무 부드럽고 얇아 어린 아가의 손처럼 만지기에도 조심스럽다.  이 푸르고 오밀조밀한 꽃들을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즐거움은 비할 수가 없이 기쁘다.

마삭줄처럼 넝쿨이 아래를 따라 늘어지는 식물들도 있는데, 워터 쟈스민처럼이나 무탈 없이 잘 자란다.  


노지의 햇살이 사방에서 비추는 좋은 환경이 아닌, 아파트라는 공간은 분명 부족한 환경일 것이므로, 우리 집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순서일 것이다.


바람>햇빛>물

느리게 지켜보고 인내심이 필요한...

나의 경험에도, 책에서 읽은 것도, 사람들이 식물을 죽이는 원인은 물을 적게 주는 것보다, 많이 주는 과습때문이다.  


식물들의 태생과 성격이 제각각이어서 물주는 시기도 틀린데, 물을 싫어하는 선인장한테 물을 자주 듬뿍 주면 그것은 독이 되고, 물을 좋아하는 수국한테 물을 매일 안 주면 그것은 학대인 것과 마찬가지다.


예전엔 이파리가 시들하면 일단 조급증이 일어서 분무기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알게 된 건, 이파리가 시들한 것도, 물을 적게 주었거나 혹은 많이 주었거나 둘 중에 하나라니, 이 대목에서 또 어려워진다.  시들한 건 무조건 물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수분이 많아 뿌리가 죽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물을 더 주면, 완전히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식물 키우는 것도 자녀를 키우는 것, 사람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다. 위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던 말들, 행동들이 사람의 특성에 맞게 접근하지 않으면 부작용을 일으킨다.


물주는 것이 헷갈려 확실한 방법으로 분무기로 물을 주기 전에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화분 옆에 두고 매번 콕 찔러본다.  하도 찔러대서 우리 집 화분 들은 나를 싫어할지도 모른다. 찔러볼 필요도 없이 스스로 확실하게 '수분이 필요해요'라고 온 이파리로 말을 해주는 아이들은 고맙기만 하다.  흙이 묻어 나오지 않으면 그때 물이 화분 받침으로 스며 나올 정도로 흠뻑 준다.


아무리 분갈이, 영양제, 물 주기, 햇볕, 바람을 신경 써서 키워도 떠나가는 식물들은 나랑 인연이 없거나, 나만 모르는 식물의 비밀들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뱅갈 고무나무가 어째 이상해요 (시무룩)  입이 누렇게 되는 애들이 몇 개 보이더니 하나 둘 떨어져 있고... 물도 자주 주지 않았고 2주 만에 준 것 같은데... "


"식물은 쉽게 죽지 않아요"


뱅갈 고무가 계속 심상치 않게 보여서 자못 애를 태우다가 화원 주인장의 쉽게 죽지 않는다는 말에 힘을 얻어서 집으로 와서 집중 케어를 했다. 말만 거창하지 알갱이로 된 겨자색 영양제 알갱이를 한 움큼 골고루 뿌려주고, 다른 식물들보다 매일 눈길 한두 번 더 주면서 관찰을 계속한 것 뿐이었다.   아~ 그런데,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뱅갈 고무나무 노랗게 변한 잎들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연한 초록색의 새 순들이 여기저기 올라온 것들이 보였다.

오경아 정원사가 "소박한 정원"에서 쓴 글을 보면 식물을 대하고 바라보는 마음에 어떤 경건함, 식물에게 식물 다운 예의를 지키고 돌봐야 할 것 같은 책임을 느낀다.


"인간만이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식물도 살아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산다는 건 다 이런 모양이다. 그러니 나 혼자 이 세상 모든 짐 짊어지고 가는 불행한 사람처럼 살 일도 아니다. 어느 인생, 어느 삶이든 속을 들여다보면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고 어렵지 않은 삶이 없다."


사계 국화는 잎도 얇아 물을 매주 한 두 번 주었는데, 이상하게 잎이 말라가다 회생불능이 되었다. 결국 사계 국화를 집에서 떠나보내고 말라버린 잎과 줄기들을 죄스럽게 쓰레기봉투에 담으며, 나는 또 한 번의 식물 킬러가 되는 순간을 맞았다.  마음 아프게 식물들의 마음을 낮은 자세로 천천히 읽어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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