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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미녀 May 20. 2021

안녕, 나의 11년.

퇴사 통보 하루 전

'돈은 많이 벌었고 퇴사할까 합니다' 매거진을 처음 쓴지도 벌써 1년 하고도 반년이 더 흘렀다. 퇴사할까 한다더니 부끄럽게도 그 기간이 1.5년이나 걸렸다. 그리고 이제 '진짜' 퇴사하려고 한다.


원래 늘 그렇듯 '나 퇴사할 거야'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회사에서 제일 오래 끈질기게 남겨져(?) 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물론 회사 안에서는 이렇게 소란스러운 사람은 아니지만... 브런치에서 1년 반 전부터 퇴사할 거라고 설레발을 떨어댔으니, 민망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진작부터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대한, 나의 일에 대한 마음 놓기를... 사실 난 알게 모르게 이 일에 애정이 많았던 것이었다. 난 나의 일을 진심으로 대했고 쥐꼬리만 한 봉급에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회사가 잘되기를, 나의 일이 잘되기를 늘 바랐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머릿속엔 항상 그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11년, 꼬옥 쥐고 있던 이것들을 내려놓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퇴사를 결심한 수많은 직장인들,  흔해 보이지만 그들 모두가 꽤나 큰 용기와 결심을 낸 결과임을 난 안다. 놓기가 힘들다. 그것이 '돈' 때문이기도, '나의 존재 증명'과 관련된 그 무엇이기도. 어쨌거나 힘들다. 그만두기 싫은데 그만둬야 한다는 마음이라면 맞을까.


최근 일주일 휴가를 냈다. 긴 휴가. 별 다른 계획 없이 제주에 머물면서 넓은 녹색과 하늘색을 잔뜩 봤다. 아무 생각 없이 1차선 도로를 열심히 달려봤다. 어디선가 멈췄던 곳에서, 멍하니 바라봤던 어떤 지점에서,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왜일까? 난 요즘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난 나를 속이고 있었던 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그리고 돌아갈 생각을 하니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똑같은 일, 똑같은 자리, 똑같은 회의... 그렇다. 아마도 한계가 온 것 같다. 여기까지인 거구나,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물러섬.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두어야 할 때가 지금이라고.


매일 해왔던 그 업무들, 수많은 관계사 사람들, 매일같이 쌓이던 새 책들... 이것은 나의 일상이었고 나의 11년이었다. '나=000(회사명)의 000'이라는 명칭이 늘 따라다녔던, 나의 존재 그 자체였다. 명함 속 회사 이름과 나의 이름은 늘 같이 다니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거나 다른 직책이 쓰여진다면 이상한 일이라고. 하지만 대단한 착각일 뿐이었다. 난 그저 일개의 회사원일 뿐인데.


어쨌거나, 내일 오전에 팀장님께 퇴사 통보를 하고, 퇴사일을 잡고, 나의 11년을 놓아줄 것이다. 그렇게 평온하고 따뜻한 회사로부터 자유인으로, 무방비로, 갓 튀어나온 화초로 내팽개쳐져 봐야지. 그리고 내 앞길은 어떻게 될까. 나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월세 나오는 건물이, 신고가 찍히는 아파트들이 있지만 그것이 나의 11년을 단박에 놓아도 된다는 어떠한 보장책이 되지는 않는다. 투자란 늘 리스크가 따르는 법이고, 그 리스크는 예상지도 못한 시점에 터지니까.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그렇다. 내가 갖고 있는 자산도, 빚도 크다. 내가 발가벗겨진(?) 백수 신세일 때 뻥하고 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나를 보호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1년 반 동안 했는데, 아직도 대안이 없는 채 퇴사를 결정하다니... 난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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