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의 의미를 알아가겠습니다

나는 '핑'만 할 수 있습니다

by 하리

온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핑!”

하지만 내가 보낸 ‘핑’에 반응하는 ‘퐁’은 나의 예상과 항상 같지는 않습니다. 나의 바람과 다른 모습을 하는 경우가 많지요. 나는 ‘핑’만 할 수 있고, ‘퐁’은 상대가 합니다. ‘퐁’은 그의 몫이니까요. 그의 몫을 내가 어쩌지 못한다면, 상대가 보내는 어떤 퐁이라도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글쎄요. 이 그림책을 보고 나서 내가 원하는 ‘퐁’을 받으려면 어떤 ‘핑’을 보내야 할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물론 작가는 ‘퐁’은 때에 따라 현명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넌지시 제안합니다.

그림책 <핑!/ 아니 카스티요 저, 달리출판>은 인간관계를 핑퐁 게임에 비유하여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무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압니다. 관계는 우리 삶과 밀접할뿐아니라 또 삶을 지탱해주기도 하는 아주 복잡하고도 미묘한 요소라는 걸요.


일을 위해서든, 친분을 쌓기 위해서든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만들어야하고, 어쩌면 필요 이상의 피 땀 눈물을 쏟아내야 합니다. 해야 하는 일보다 크루 간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더 많은 애를 써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만남에는 일종의 정신역동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 이면의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는 심리적 요소들이 충돌하며 관계에 크고 작은 영향이 미치는 거죠. 즉 행동의 저변에 깔려있는 개인의 무의식적 동기나 의도는 결국 의견 일치의 결과 또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말로 설명이 가능할까요? 다시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개인적 정서 즉 감정의 작용에 따라 상대의 ‘핑’이나 ‘퐁’의 모양이 결정되는 게 아닐지요.



KakaoTalk_20251028_204942629.png



용인교육자원봉사센터의 그림책 리터러시 봉사단 맴버는 매년 조금씩 달라지지만, 그 목표와 역할은 같습니다. 그래서 팀 안에서 오고가는 핑퐁의 내용도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수년간 함께 해온 동료들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기에 죽이 잘 맞곤 하지요. 함께 한 시간이 쌓인 만큼 서로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지냅니다. 새로 합류한 선생님들과는 교육봉사를 하겠다는 같은 뜻으로 봉사할 내용을 준비하고, 그림책 활동가로서의 목표도 세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 내내 무엇이 서로를 끌어 당겨줄지 또는 내치게 할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벌어지는 오해도 생기겠지요. 그래도 함께 한 시간들이 겨우내 내린 함박눈처럼 소복이 쌓이게 되면 원하는 ‘퐁’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희망합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작년에 만났던 아이가 그새 훌쩍 자라 “그림책 선생님~”하고 부르며 달려오는 그 찰나에 얼른 추억을 떠올립니다. 당연히 잘 떠오르지 않지요. 하지만 그림책을 함께 읽은 것은 분명할 테니 그 공통의 경험을 떠올립니다. 그리고나면 “요즘도 그림책 보고 있어?”라는 나의 질문에 “네. 엄마가 이제는 안 읽어줘요.”라는 아이의 답변으로 우리는 서로 기분 좋은 ‘핑’과 ‘퐁’을 확인하곤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즉각적이며 직관적인 핑과 퐁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내면에 무한한 감정과 정서가 내재되어 있지요. 만남이라는 순간, 1초 아니 마이크로초 만큼 아주아주 짧은 시간동안 서로에게 전달할 핑과 퐁이 결정될 겁니다. 그림책 봉사자 샘들과의 핑퐁은 분명 순하고도 화사하겠지요. 그래서 나는 자신있게 그림책 봉사단 선생님들을 향해 분명한 ‘핑’을 보냅니다. “우리 같이 그림책으로 성장하는 따뜻한 이웃이 되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보내는 ‘퐁’의 의미를 알아가겠습니다.


KakaoTalk_20251028_205030254.png


#핑!

매거진의 이전글생명을 살리는 측은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