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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Apr 21. 2023

이 조리개 값에서는 색이 다 날아가 버리는구만.

모두들 무병장수하세요 | [2] 옮겨심기

하긴 날이 너무 밝긴 밝았어.


한 꼭지씩 업로드하는 에세이에 엉뚱한 이름을 붙이는 건 글 자체의 재미와는 별개 되는 또 하나의 작은 쾌락입니다. 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는 벌써 3년째 단편소설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단편소설집으로 시작했다가, 장편소설이 되었다가, 이제는 웃기는 짬뽕이 되었습니다. 불행히도 계획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아집니다. 모든 계획이 그렇습니다. 나아지는 계획이 불행인 이유는, 결과물 다운 결과물을 만들려면 계획과 행동이 병행되어야 하는 법일진대 제가 실행력 없이 계획만 주구장창 바꿨음의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불행은 마치 여름날 사진을 찍기 전에 방구석에 앉아 커튼을 치고 조리개 값을 미리 계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사진을 잘 찍을 수 없습니다. 현상액에 절여지고 드러나는 사진을 봐야만 무엇을 보완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 조리개 값에서는 색이 다 날아가 버리는구만. 하긴 날이 너무 밝긴 밝았어.


글을 쓰는 것은 항상 재밌습니다. 모든 종류의 글은 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주로 꽂혀 있는 종목은 소설과 에세이입니다. 물론 읽으시는 관점에 따라서 영양가 없는 소리만 하는 이 글이 에세이의 자격이 없는 에세이 분비물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제가 주로 꽂혀 있는 종목은 소설과 일기라고 해야겠네요.


에세이 분비물보다는 더 중요한 게 작가의 인생에 많을 텐데, 왜 이런 뻘글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느냐고 물으시면 저도 할 말이 딱히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다 제가 P가 과하게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INFP들 중에서도 P의 함유량이 높은 편이라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어쩔도리.


이제 MBTI는 낡았다고요? 몇십억 명의 사람이 고작 16개의 가짓수로 분류될 수는 없다고요? 온 마음을 다해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 처음 MBTI 검사했을 때는 이거 완전 너 얘기다, 하면서 웃었잖아요. 새로 보는 사람에게 MBTI부터 물었잖아요. 재미있는 건 그저 재미있는 대로 소비하면 되는 걸지도 몰라요. 무겁게 생각해야 할 것들은 이미 세상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 낡은 것들과 식물 ]

이태원의 빈티지 상점
빈티지 상점 옆의 꽃집

저는 낡은 것들과 식물들이 좋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빈티지 숍이 있냐고 물으시면 떠오르는 곳은 없습니다. 어떤 식물이 좋냐고 물어도 저는 철쭉 말고는 아는 꽃이 없습니다. 내가 정말 이걸 좋아하는 걸까, 좋아한다면 - 중학생들의 짝사랑이 다 그렇듯이 - 상대방을 알아가려는 호기심이 생겨야만 하는 게 아닐까. 저는 만물에 호기심 없는 무미건조한 호감만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취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하는 영화 이름을 대라고 해 봐야, 사실 떠오르는 이름들은 감명 깊게 본 영화들이 아닌 어쩌다 마주친 영화들 뿐입니다. 열심히 머리를 싸매도 이름들은 최근 순으로 떠오를 뿐입니다. 좋아하는 노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노래를 좋아하냐고 갑자기 물어보면,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멜론차트 탑 100위 중 맨 위 열 개뿐이 없습니다. 그 노래들이 별로라는 건 아니지만, 갑자기 누가 길거리에서 불러 세우고 '지금 무슨 노래를 듣고 계세요?'라고 묻는다면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고 그 직후에 후회할 것이 뻔합니다. 더 좋은 노래를 듣고 있을걸. 내 취향을 보여줄 기회였는데, 그저 그런 보통 사람처럼 비춰질 게 분명해. 무작위로 떠오르는 노래들 대신에 제가 정말로 애정하는 노래들을 꽉꽉 모은 탑 100 플레이리스트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여전히 그 플레이리스트 안에 들어갈 노래들의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잘 모르고, 더 알아보려 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이 맞나요? 저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영화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정작 좋아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더러 있습니다. 누군가 내 영화 취향을 물어보았으나 대답할 수 없을 때. 좋아하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했지만 고작 한 곡밖에 알지 못할 때. 책을 한 달이나 두 달에야 한 번 펼쳐보고선 내가 난독증이나 ADHD가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할 때.


[ 수평 강낭콩 ]

오타가 싫다면 누워서 작업하지 마세요

밤을 자주 새우는 편입니다. 이게 전부 제가 돌 때 집은 망한 인생 때문입니다. 제 혈중 P농도가 조금만 더 낮았어도. 하지만 사실 저는 게으름을 떼어버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게으름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근거 없는 행복입니다. 걱정이 시작되는 순간은 늦은 때가 아닙니다. 정말 늦은 때는, 늦었다는 것을 알아챌 때에요. 그러니까 캘린더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우린 늦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게으르다는 것은 그래서 좋아요. 결국에 저는 끝의 끝까지 버티다가 아주 늦어버리지마는, 최소한 그전까지는 행복한 인생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불행 또한 늦게 확인하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요? 지금껏 한 번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 사실이 이제야 전해졌을 뿐입니다. 이제 와서 아주 늦은 것이 되어버렸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왠지 유익해 보이는 글을 읽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가, 이 파트에 당도하고 나서야 '눈으로 확인하고' 뒤늦게 깨달은 것뿐입니다. 그 또한 분명히 한 형태의 P입니다. 내면의 P를 일깨우세요.


[ 옆집 선생님의 화단 ]

어떤 종류가 되었든 간에 글을 쓰는 일은 무지하게 재미있습니다. 책 작업을 위한 글을 쓰지 않을 때에도 글은 씁니다. 혹은 감정에 휘둘려서 제가 받고 싶은 종류의 위로를 썼다간, 머리가 부스스한 아침에 말짱한 정신으로 다 지우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재미있을 뿐 아니라 꽤 자주 유익한 반향을 얻을 수 있기도 합니다. 책에 쓰이건 쓰이지 않건 글쓰기의 대상은 보통 그 순간에 제가 들고 있는 감정입니다. 온갖 긍정적인 감정들과 부정적인 감정들 모두가 기록의 대상입니다. 무엇이 되었던지 일단 적어 두고 나면 저에 대한 사건들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실제로 기록함을 통해서 기록한 대상에 대한 객관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걸 옮겨 심는 모습으로 연상합니다. 무언가를 적는 과정은 그 무언가를, 제 안의 보이지 않는 형태에서 제 밖의 글이라는 명확히 읽히는 형태로 옮겨 심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무언가 모호한 대상을 단정적인 문장으로 적어두는 것은 몇 개 단어의 나열 그 이상의 효과를 가집니다.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논리적인 구조로 파악해야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간단화가 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동시에, 간단화된 문장이 포착하지 못하는 사실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만 같은 어떤 분위기를 말로써 표현해내고 나면 또 하나의 잠자리가 나의 잠자리통 안에 들어왔다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때로는 말로써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을 마주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은 조금이라도 설명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설명할 길을 전혀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고 나면 지금껏 제가 기록해 왔던 것들, 정리해 왔던 것들도 사실은 허상이 아닐까, 내가 잘못 이해하고 설명해 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커다란 잔디밭은 사실 여러 개의 잔디들이 합쳐진 게 아니라 단 하나의 잔디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저도 그 게 사실인지는 잘 모릅니다. 대충 그렇다고 치면, 비슷하게 제가 말로 설명하고 글로써 기록해 둘 수 있는 범위는 잔디밭 전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겁니다. 다만 1-2평 남짓의 잔디만을 샘플로 삼아 설명한 것이 아닐까. 오직 내가 볼 수 있는 범위만을 간략히 정리하고선, 스스로가 커다란 잔디밭의 구석구석 까지를 모두 다 이해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 새우와 소와 대파가 한 뼘 숯불에 ]


사실 이제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저는 제가 무언가를 잘못 이해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저는 제 자그마한 세상에 살고 그 만한 크기에서 만족하는 편이에요. 실제 모집단이 어떤 모양일지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제 조그만 세상이 이치에 맞기만 한다면 저는 제가 속고 있다거나, 편협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접한 편협한 자극들이 저를 만들었을 뿐이지, 제가 한정된 경험으로 그 이상을 깨달을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릇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런 개인적인 감상들을 책과 에세이에 녹여내고 싶어서 고군분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말은 곧 제가 설득용 책을 만들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례 제시용 잡문집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전위적인 시각의 테리 ]

이번에는 여자친구가 합성해 준 테리 모음집입니다. 테리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자친구는 세상을 모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IT 기술들은 테리의 사진들을 한 데로 모으고 피카소의 그림처럼 다양한 방향의 테리 감상을 가능케 합니다. 감사합니다 팀 쿡, 당신이 내 고양이를 빛나게 했어. 모두들 무병장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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