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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큐베리 Apr 01. 2024

죽을 때까지 일할 각오로 낳은 셋째

세 번째 출산

둘째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21평 아파트로 분가를 했다.

오롯이 남편의 방 한 칸이 집이라 여겼던 우리에게 대궐 같은 공간이 주어진 것이다.

우리 집이 있다는 건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지만, 주말부부인 우리에게는 평일에 나와 아이 둘.

이렇게 셋 이서만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첫째 아이는 5살이 되면서부터 문단속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면,

“엄마, 여기 여기~ 이거 눌러. 꾹 눌러.”

현관문에 대한 단속을 하고 나면,

양쪽 베란다 문을 잠근다고 유리문 옆에 기대어 잠금 열쇠를 돌리는 시늉을 했다.  

어린아이였지만, 아이의 행동에서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든든한 큰 아들과 장난기 가득한 둘째 아들은

내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며 성장했다.


아이들이 커 가면 커갈수록 키워보지 못한

딸에 대한 로망도 함께 커졌다.

‘딸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던데...’

“엄마한테는 딸이 있어야 해. 아들 둘로는 안 돼. 애들 더 크기 전에 셋째 딸 하나 낳아야지!!”

주변에서 흔히 듣던 말이었다.

쓸데없는 참견이었지만 싫진 않았다.

그 당시 내가 쓰던 닉네임도 [딸원츄]였다. 마음속에서도 딸을 이야기했고, 온라인에서도 딸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아들 둘 있으니 딸 하나 있다면 정말 좋겠지? 하나 더 낳을까?"

나는 종종 딸을 키우는 상상을 하며 말했지만, 

남편은 달랐다.


이미 아들 둘을 키우면서도 주말부부를 하고 있는 터라 이런 상황에서의 출산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사실 낳는다 하더라도 딸이란 보장도 없으니 반대하는 남편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딸에 대한 생각은 해 봤지만, 아이 셋을 키우는 우리의 모습은 나 역시 낯설긴 했다.


그러던 중 컨디션 좋지 않은 날수가 늘어나고, 소화가 되지 않는 느낌이 계속된 날이 있었다.

‘설마, 임신일까?’ 주말 아침 약국으로 달려가 테스트기를 사 왔다.

결과는 역시나 두 줄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자기야~ 나 임신한 거 같아. 봐봐~

테스트기 두 줄 나왔어”

“......”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임신했다고!!”

“...... 그래서? 낳으려고?”

“뭐야! 무슨 말이 그래.”

“잘 생각해 봐. 지금도 우리 둘 다 일하면서 아이 키우고 있는데, 거기다 또 아이를 낳으면...

우린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해. 그걸 알고 말해야지

아이 셋을 키우자고?

“지금도 일하는데...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게 어려워? 건강하기만 하면 되지 뭐~”


남편의 뜻밖의 반응이 머릿속에 잔상처럼 그려지고, 현실적인 말 들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해!

‘까짓것, 뭐! 죽을 때까지 일하면 되는 거지. 

뭐가 어려워’

남편의 반응이 강렬했다면, 시부모님의 반응 또한 시큰둥하셨다.

“또 임신했다고? 둘만 잘 키우면 됐지. 뭘 또 낳아”

난 그렇게 죽을 때까지 일해야 키울 수 있는

셋째를 선물 받았다.


내 인생에 있어 셋째 임신은 당연한 것이 아닌 받아들임에 대한 의미를 깨우쳐주는

인생경험의 시작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이를 출산하기 보름 전까지 나는 어린이집에서 일을 했다.

출산휴가를 들어가면서 나만의 셋째 출산계획은 이랬다.


1. 출산 전 큰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2.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

3. 예정일 즈음에 자연분만으로 출산을 한다.


인생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갈 수 없다.

내가 계획한 세 가지 일 중 완벽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출산휴가를 받은 주말에  급성폐렴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

나는 출산 예정일 2주 전에 대학병원에서 폐렴치료를 받아야 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출산 대비는 그 어떤 것도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았다.


임산부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했다.

기형아 출산에 관한 이야기, 폐렴진단을 위한 방사능 관련 위험성과 항생제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에서 일어나는 호흡곤란 증상까지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부자연스러웠다.

“임산부여서 치료가 조심스럽습니다. 

회복 속도도 더딜 수 있고요.

만약의 경우, 자연분만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회복이 먼저라고 생각하시고,

제왕절개에 대해서도 염두하셨으면 합니다.”

폐렴 치료를 하면서 협진을 했던 산부인과 원장님의 말이었다.


‘둘째까지 자연분만을 했는데... 셋째를 제왕절개 하라고?’

자연분만에 대한 두려움보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나는 어떻게든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다. 대학병원에서 일주일, 일반병원에서 일주일 회복 기간을 가졌다.

회복기를 갖는 동안 호흡도 안정적으로 돌아왔고, 다행히 이전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출산 전 정기검진에서도 엄마랑 아이 모두 건강하단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힘줄 수 있겠어요? 엄마만 괜찮으면 자연분만 가능 하겠어요”

“네! 할 수 있어요. 해볼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편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고 협박했던 밉상 모습도 생각나 볼멘소리로 남편에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감사해. 그래도 낳을 거냐고 물어보던 사람이...”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우리 아이들 잘 키워보자”



엄마의 완전한 회복과 아빠의 마음 성장을 기다리느라 째 아이는 예정일보다 5일이나

늦게 우리를 만나러 왔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3.29kg 건강한 공주님의 탄생이다.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고 깨닫게 해 준 아이.

이로써 나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키우는 다자녀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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