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향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시끌시끌한 목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 사이에 스며드는 향기. 내가 좋아하는 향기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의 향기에 젖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가끔은 고약한 냄새에 본래의 향기를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마음 하나만 갖고 있다면, 다시 본래의 향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8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어린이집에 취업을 했다. 함께 하는 사람들만 다를 뿐 하는 일은 같았지만, 첫 직장으로 출근할 때 보다 더 떨렸다. 어린이집에서는 평가인증 (지금은 평가제로 바뀜)이란 제도가 있었는데, 정직하게 운영을 해왔든 그러지 못했든 어쨌든 평가이기에 모두가 긴장하는 그런 제도였다.
내가 가게 된 어린이집도 평가제를 약 일주일을 앞두고 있었다. 평가인증이 끝난 후 정식 출근은 하되 선생님들의 평가인증 준비를 돕기로 했고,
큰 부담 없이 도울 수 있었다.
인쇄된 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코팅하고, 다시 오리고 몇 번의 반복을 거듭하면서 일을 했다.
어떤 선생님은 인사도 하고 웃으면서 도와줄 자료를 주는 반면에 금방이라도 싸울 것처럼 사나운 얼굴을 하고, “이것도 하세요.” 명령하듯 말하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난 동료 교사로 도우려 왔고, 심지어 열정 페이로 일하고 있는 건데, 이 느낌 뭐지?’ 아이들이 없는 빈 교실 이어서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더욱 귓가에 생생하게 들렸다.
누군가 그 교실 문을 열고 들어 올 때마다 사람에 따라 나의 향기도 달라짐을 느꼈다. 웃으며 들어오는 선생님에게는 나 역시 웃으면서 다른 것 더 도울 게 없는지 물어보았고, 내가 무슨 당신의 하녀인 것처럼 톡톡 쏘는 말투로 말하는 선생님한테는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어 소심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중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교사는 무례했고, 무식했고, 무자비했다. 매일 보는 그녀의 얼굴은 무섭기까지 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풍겨오는 고약한 냄새는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 사이 나에겐 천사 같은 아이들이 맡겨졌고,
난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어린이집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기도했다.
“무책임하게 그만두는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아요. 이곳에 사랑이 가득하게 해 주세요.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선생님들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들을 전할 수 있는 어린이집이 되게 해 주세요.”
기도라도 하고 일과를 시작해야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힘 들었던 것은 아이들도, 학부모님도 아니었다. 차갑고, 무식하고, 무례했던 그녀. 살면서 처음 만나는 성향의 사람이다 보니나의 자존감까지 흔들어 놓을 만큼 힘들었다.
“이 블라인드를 여기까지 내리면 어떻게 해요? 한 뼘 위로 올려야죠.”
“물을 반 컵만 줬나요? 반 컵 주고 더 달라고 하면 어쩌려고.”
“이 아이는 물 한 컵씩 줘야 해요. 아이 씨 짜증 나.”
어느 날은 블라인드를 한 뼘 아래로 내렸다고, 다음 날엔 한 뼘 위로 올렸다고 소리쳤다.
블라인드 한 뼘 차이와 물 반 컵과 한 컵 사이에 그녀는 날마다 짜증을 담아냈다. 텃세다.
말도 안 되는 텃새 앞에 퇴근 후 올라탄 차 안에서 핸들을 부여잡고 얼마나 울었나 모르겠다.
“김지영(가명) 내가 너 용서하나 봐라. 뭐 저런 게 선생이라고.” 한 달을 시달리며 울고 나니 내 마음 또한 지뢰밭이 되는 것 같았다.
가슴에 지뢰를 품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즐겁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우. 저런 게 내 동생 아닌 게 감사하네. 그러네. 가족 아닌 게 어디야.”
생각을 거듭하다 무심코 입 밖으로 엉뚱한 감사가 흘러나왔다.
“난 저렇게 꼬인 마음으로 안 살아서 다행이다. 감사해”
“내가 김지영이 아닌 것에 감사합니다.”
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감사를 하기 시작했다.
기가 막힌 상황에 떠오른 감사와 말도 안 되는 감사를 내뱉다 보니 내가 그녀가 아님에 감사했다. 심호흡 크게 하며 감사하다 보니 이젠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