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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큐베리 Aug 16. 2024

생일날 웁니다. '출생의 비밀' 때문에

내 탓을 딛고, 네 아이 엄마로

1984년 8월 00일.

한 아이가 태어났다. 숨겨야 했고, 지워질 수도 있었던 작은 생명체. 그래서일까.

8월이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겹겹이 쌓여있던 가슴이 매섭게 아파온다.

묻고 싶은 말이 많지만 목까지 차오르는 서글픈 질문들을 삼켜버린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냐는 말로 상처를 지워보려 하지만 더 또렷하게 내면아이를 마주한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웅크려 앉아있거나 누군가의 옷깃을 잡고 울고 있는 모습만 떠오른다.

어떤 날은 아빠의 옷소매 끝을 잡고 울었고, 어느 날엔 엄마의 바지 깃을 잡고 울었다.

옷깃을 잡고 있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분노에 가득 찬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너 같은 거랑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아냐?”

“시끄러워. 누구는 너랑 살고 싶어 사냐?”

엄마와 아빠는 매일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싸우셨다.

입에 담기도 싫은 욕설과 함께 주고받은 말 중엔 살고 싶지 않은데 살고 있단 말.

싸울 때 종종 주고받았던 이 말 한마디를 어린 나는 곱씹게 되었다.

“너랑 살고 싶어 사냐?”




살고 싶지 않으면서도 한 집에 살고 있는 엄마랑 아빠에게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정답을 알고 싶었던 나는 늘 궁금했다.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싸움을 진정시키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누구인지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싸움을 진정시키러 온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사랑했으나 어린 내가 듣고 있는지 모르고 아무렇게나 말했다. 내가 듣지 말았어야 할 진실을 듣게 했다.

“학교 마칠 무렵 애 생겨서 난리 났었잖아. 그때 애 지운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말렸어.

그렇게 말려놨더니 전쟁 통으로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잘 살면 좋으련만... 쯧쯧”

“저 어린것이 불쌍하지. 쯧쯧. 제 엄마 저러고 돌아다니니”

어떤 상황에 듣게 된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알고 말았다.

지우려고 했던 아이가 나였다는 것을.


‘아, 나는 실수로 태어난 아이였고,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아이였구나.

숨겨야 했고, 지워질 수도 있었던 한 생명이 나였네.’

누군가는 아이를 지키려고 했고, 누군가는 아이 존재 자체가 버거웠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인 나는 당장 사라지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사라질 수 없다면, 내 존재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가출이 반복되던 어느 날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 엄마가 나를 일찍 낳지 않았더라면,

엄마 꿈도 이룰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해.

내가 엄마 말 잘 들을 테니까. 이제 아빠랑 싸우지 말고 우리 행복하게 살자. 엄마,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


이 편지를 쓰던 어릴 적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에 편지를 쓴 걸까.

실수로 태어난 아이라는 생각에 갇힌 나는 세상의 중심 대신 한쪽 구석을 택했다.


‘나 때문이야. 모든 것이 나 때문이야’

엄마랑 아빠가 싸우는 것도 나 때문이라 생각했고, 싸움의 원인과 결과는 나라고 생각했다.

모든 부정한 것들은 모두 내 탓.

나의 실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 하나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내 인생에 있어 다른 실수는 용납할 수 없었다. 나로 인해 시작된 한 남자와 여자의 불행한 삶에 대한 보상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했다.      


결혼을 하고,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면서 내 마음속엔 아직 자라지 못한 ‘내면아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처받은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하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너로 인해 부모님 인생이 망가진 게 아니야. 부모님도 성장하는 중이었어.

네 잘못이 아니야. 네 탓이라고 말해서 미안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해서 정말 미안해.”


사랑하지 못했던 내면아이를 감싸 안으며

네 명아이들을 바라본다.

모든 아이는 존재만으로 소중하다.

사춘기와 싸우고 있는 첫째도, 자유로운 둘째도, 불퉁거리는 셋째도, 천방지축 넷째도.

모두가 다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나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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