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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Feb 16. 2024

자신을 너무 몰라~

나를 알아차림

아직도 나는 나를 모른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던 말이 그토록 의미심장하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세월이 깊어 갈수록 그 말 한마디가 그냥 지나치게 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몸을 긴장 속으로 끌고 간다. 마치 꽁꽁 얼어붙은 강바닥이 봄기운과 함께 녹아내려 흔들거리는 얼음 바닥 위에 홀로 서있는 것처럼. 다리는 힘이 풀리고, 언제 어느 순간에 강물 속 얼음 조각 사이로 몸이 빨려 들어갈지 모른다는 불안을 불러온다.


"나는 I 같은데 E로 나와."

내가 내뱉은 말 한마디에 마주 보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아 대화를 이어가던 여동생을 비롯한 남동생, 올케까지 이구동성으로 동시에 외치다시피 했다.


"그렇게 자신을 몰라. 당연히 E 지."

"그런가? 난 I도 많은 거 같은데..."


요즘 가족들이 모이면 MBTI 성향에 대한 이야기가 대세다. 지난 시댁식구들이 15명 모였을 때도 시종일관 mbti를 주제로 누가 누구와 비슷한지, 누가 누구와 반대인지 그칠 줄 모르고 꽤 흥미진진하게 가족 모임의 화두가 되었다. 그때는 나야 대화의 중심에 설 입장도 아니었으니 그저 듣고 맞장구를 치며 공감하는 정도였다. 시댁 모임인 데가 젊고 똑 부러지는 조카들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이번 친정 모임에서는 주축이 중년인  우리 삼 남매다 보니, 거기에다 동생들과는 살짝 성향이 다른 내가 중심에 올라버렸다.


그러고 보니 동생들은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고, 조용하며, 과묵하기도 하고, 표현도 절제한다. 꼼꼼하고 섬세하며, 잔잔하고 침착한 성정을 가졌다. 어지간하면 실수도 하지 않고, 모두에게 칭찬을 듣는 참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한다.  무엇보다 절제가 있고, 정돈되어 있는 삶을 무난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우선 큰 소리로 말을 하지도 않고, 소리 지르는 것을 본 적도 없다.

어찌 보면 본받고 싶은 동생들이다.

그러다 보니 동생이 언니 같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언니가 더 동생 같다고.

하지만 다른 것일 뿐.


아무튼 이번 명절 휴가를 미리 내어 친정 식구들 10명이 모두 함께(조카는 미국에 있어서 혼자만 참석하지 못했다.)했던 2박 3일의 가족여행은, 나 자신을 돌아보며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가족 여행길

해외생활을 오래 하면서 권리를 찾고, 손해보지 않으려는 무언가가 내 마음에 자리 잡았을까? 아니면 나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고 지켜내려는 악바리 같은 게 발달했을까?

동생들은 그것을 '오지랖'이라 명명했다.

뭔가 억울하거나(?)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것과 가족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과다한 의욕과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곤함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니, 우리는 아무렇지 않아. 그렇게 안 해도 돼."

"그래? 난 내가 총대를 매야한다고 자꾸 생각을 하나 봐."

"안 해도 괜찮아. 우리는 즐겁고 행복해."


비싸게 돈을 내고 빌린 펜션의 컨디션에 불편한 점이 보이기라도 하면, 나는 바로 반응을 했다.  예를 들면, 엄마가 좀 춥다고 하시거나,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몇 명의 양말이 젖어버린다거나, 바비큐 숯불이 약하다거나, 위풍이 있다거나, 코를 고는 가족들로 잠을 설쳐야 하는 그런 것들을 해결하려고 애썼다.

조금 유난스럽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 봐도.

나는 어쩌다가 긍정적 아이콘이 아닌 반대가 되어 버렸다.


MBTI로 돌아가보면, 누가 봐도 나는 I가 아닌 E란다. 즉 내향적인 게 아니라 외향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 여전히 I,  즉 내향적 성향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두 동생들은 당연히 모두 I 내성적인 성향이다. 나도 그러고 싶은 건지. 나 스스로가 나를 내향적이라고 말하는데, 검사 결과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E, 외향적 사람 친화적인 인물로 보인다.


"그게 그럼 나일까?"


뭔가 세찬 파도를 건너 멀고 먼 길을 달려온 사람처럼 내겐 거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기 전에 더 고착된 상태로 멈추어 서지 않도록 나 자신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가고 싶다.


"이제 너무 오지라퍼로 살지 말아요."


내게 진심 어린 조언을 동생들과 올케가 내 가슴에 던졌다. 나는 얼른 손을 내밀어 그것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품에 안았다.


누군가의 눈에 억센 오십 대 아줌마로 보이고 싶지 않은 내 속마음도 들키고 싶지 않아, 마음속 단추를 여민다.


알아차림.

나 자신을 이해하기.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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