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을까? 미심쩍어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몇 걸음 앞으로 나가기를 반복하다가 결심하고 떠나온 여행길이다.
나를 위한 선물이자 친구 유나를 위한 휴식의 여정으로 선택한 제주도다. 캄보디아와 일본을 돌고 돌아, 즉 항공권 검색과 여행 경로를 랜선으로 둘러보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제주도는 우리가 최종적으로 내린 최적의 여행지로 당첨되었고, 지금 나는 제주도 성산 바닷가 해안이 보이는 침대에 누워있다. 커튼을 걷어 벽 양옆으로 단단히 고정시키고 최대한 검푸른 바다를 가까이 침대 옆으로 데려다 놓았다. 마치 몸을 맡기고 바다의 품에 안기기라도 할 것처럼.
꿈만 같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길 바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기도하듯이 진심을 담아서. 아, 이런 현실은 야속하게도 제주공항에 도착했던 어제보다도 시간은 더 빨리 달리기를 하는 것만 같다. 제주도의 밤은 깊어 가고 있다. 속도를 높이면서.
비가 오다가 해가 반짝이며 쨍하게 비추다가 다시 먹구름이 몰려왔다. 빗방울이 먹구름을 따라다니며 정신을 어지럽혔다.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내륙의 경치 좋은 길로 들어서 성읍 민속마을로 가는 길에는 후드득 우박도 쏟아져 내렸다. 파란만장한 하루의 날씨가 우여곡절 많은 우리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걸까?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내일과 미래를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라는, 맡기라는, 상황에 맞게 열리는 길을 긍정과 감사의 마음으로 부딪혀 나가라는 메시지를 주는 걸까?
중부지방인 우리 집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한다. 첫눈을 맞이하지 못한 아쉬움 따위는 모른 척해두고, 비와 바람과 태양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제주도에 있음에 더 감사하고 감격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처음으로 가족을 두고 친구와 떠난 여행길이다. 특히 딸아이를 두고 온 나만의 여행 시간이다. 꼬물이 야꿍이 샤이니가 어느새 이리도 자라서 엄마 손을 벗어나 혼자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청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그 순간에도, 작고 동그란 창문 밖으로 흰 뭉개 구름을 바라보던 눈 속에도 불안을 떨치지 못하지 않았던가? 덩치는 엄마보다 크지만, 아기처럼 여린 아이가 그 딸을 두고 떠나온 무거운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하필이면 첫눈이 많이 내려 등굣길이 불편한 아침에 걸려온 전화 속 사랑스러운 목소리에 마음이 녹았다.
"엄마, 나 학교 잘 도착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재밌게 보내."
이 얼마나 달콤한 사랑의 언어가 아닌가?
배속 깊은 곳에서 벅찬 기쁨과 감동이 솟구쳐 올랐다. 나 없이 아이를 챙겨서 등교시킨 남편에게도 고마운 마음에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제주도가 좋은 이유는 가는 곳곳이 명소라는 거다. 경치 좋은 도로를 운전하는 자체로 여행이고 힐링이 된다.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바다가 있고, 검은빛 돌들과 흙, 돌담, 가로수 나무와 꽃들, 그 어느 것 하나 내가 아는 것들과 닮아 있지 않다. 구별된 여행지를 담고 있어서 좋다.
난생처음으로 갈칫국과 돌문어볶음을 먹어봤고, 파가 들어간 미역국을 맛보고, 고등어조림을 상추에 싸서 먹었다. 내가 알던 지시가 달라있는 새로운 것들과의 관계를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작은 도전이며, 나를 극복하고 확장하는 체험이다.
렌트한 차에 워셔액이 떨어지는 바람에 오늘 또 다른 도전에 용기를 실어 모았다. 편의점에서 워셔액을 사고, 병뚜껑을 열어, 자동차 본넷을 열어 워셔액 구멍을 찾아 한 병을 탈탈 털어 부어 넣고는 다시 본넷 뚜껑을 닫아 마무리하는 것까지 다 스스로 해내고야 말았다. 하나 둘 셋, 외치는 작은 구령과 함께 운전 경력 30년이 되어가는 마당에 첫 도전이라니 말도 안 되기도 하겠지만, 제주도는 내게 새로운 경험과 도전, 용기를 선물했다.
곁에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친구의 숨소리조차도 아름다운 제주의 밤이다.
짜증 낼 일도, 얼굴 붉힐 일도, 욕심부릴 틈도, 머리 굴리고 눈치 볼 필요도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여행길이다.
성산 아름다운 리조트를 발견한 것도 감사하고, 적당히 볼거리도 보고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여정도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블로그 이웃이인 소호별곡에도 가보려 했지만, 통화만 했다.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달 살기에 도전해보고 싶다. 진심으로..
여행을 준비하면서 얻은 교훈까지도 소중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성숙하고 확장시키는 제주도 여행길이다. 이 시간은 딸이 이와 남편도 덩달아 성장시키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친구에겐 그야말로 평화로운 힐링과 휴식이 주어졌길 바란다.
내게는 가장 화려하고 진귀한 보물 같은 선물이 되었다.
내일도 폭설이라는데 우리는 무사히 육지로 돌아갈 수 있겠지? 부디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