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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Jan 02. 2025

어느 일요일 아침

길 위에서의 깨달음

 아침은 늘 부산하다. 아무리 몸을 빠르게 움직여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내가 생각했던 예상 시간보다 항상 시곗바늘이 앞서 가곤 했으니까.

인도에서의 아침은 일찍 찾아오지만 나름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하루를 일찍 서둘러야 사나운 태양빛이 지배하기 전에 뭐든 하나라도 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이 새벽을 깨웠다. 사원에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 야채와 과일을 리어카에 싣고는 "섭지~(야채)", "알루~(감자)"를 외치며 식료품을 제공하던 이들, 각기 길가에 세워진 맡은 자동차의 먼지를 닦아내는 이들의 느린 발걸음이 델리의 아침을 채웠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어린 딸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손질하여 가지런히 양쪽으로 묶어 색색 고무줄로 고정했다. 옷장에서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원피스를 꺼내 입히고, 작고 앙증맞은 고양이가 새겨진 양말을 신기고는 푹신푹신하면서도 산뜻한 샌들을 신겼다. 이러한 과정을 마치기까지는 숱한 인내와 어르고 달래며 채근하는 노력이 따르곤 했다.


역시 시곗바늘은 저만치 앞서서 달음박질하여 곤두박질치며 내 마음을 바쁘게 했다. 한 번쯤은 짜증을 내고, 목소리가 올라가거나, 그렇지 않을 때는 영락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속으로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 것만 같은 남편에게 불만의 화살이 과녁을 맞히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에도 우리 집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곤 했다. 엄마는 주일학교 교사에 성가대까지 서야 하는데, 챙겨야 할 아이들은 셋이고,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쓰느라 엄마를 돕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할머니까지 챙겨드리면서 교회에 가기 위한 일요일 아침은 다른 어느 날보다도 왠지 더 소란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부산스러운 아침을 지나 교회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교회에 다다르면 모두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남편을 향해 눈을 힐끗 떴다가 눈길을 돌렸다. 다행히 인도에서는 거의 넥타이를 매지 않는 덕분에 정장을 챙길 필요는 없었다. 남편의 옷맵시를 챙기고 나서 나는 현지인들이 즐겨 입는 순면으로 된 꾸르따에 나팔바지 같은 플라조나 청바지를 받쳐 입었다. 한국에 비하면 옷 입는 데 그리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게 감사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바쁘고 분주한 일요일 아침.


종종 나는 마음에 평강을 잃은 채로 교회에 갈 채비를 마치고 서둘렀다. 단 1분이라도 앞서가는 시곗바늘을 붙잡기 위한 몸부림으로.   


 어느 일요일 아침. 그날도 입 밖으로 표출은 안 했지만 이미 기쁨이 사라진 굳은 얼굴을 끌어안고 자동차에 몸을 맡겼다. 몸을 좌석 등받이에 기대며 작은 안도의 한숨을 들이켰다.


그제야 창밖으로 펼쳐진 인도의 길거리 회색빛 풍경을 바라봤다. 내가 서있는 곳. 살아가고 있는 곳. 특별한 뜻과 목적을 갖고 찾아온 그곳. 일요일 아침의 느린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내 눈길이 도로 곁 작은 길을 걷고 있는 한 가족에게 머물렀다. 아빠는 온통 재색과 고동색만으로만 된 제대로 세탁되지 않은 것과 같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천연색의 사리를 차려입고 있었지만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먼 값싼 싸구려 사리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부모를 앞서 걷고 있는 작은 아이는 몸에 딱 맞는 옷이 이제는 한 사이즈를 높여서 사줘야 한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인도의 작은 가족이 그렇게 짙은 회색빛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환하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행복을 말하고 있었다. 양손은 앞 뒤로 구령을 맞추듯 힘차게 흔들었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들에게서 일요일 아침의 밝은 광채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달리는 자동차를 세울 수만 있다면. 주일 예배에 늦지만 않는다면 그들과 마주하며 이야기 나누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하지만 빵빵거리는 도로 위로 뒤엉켜 달리는 자동차를 급히 멈춰 세우기에는 위험천만한 것임을.  점점 뒤로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슨 얘기를 나눌까? 무엇이 저들을 웃게 하까? 그 얼굴의 광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세상에서 가난하고 초라한 행색의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가끔 나는 인도의 거리에서 성자들을 보았다. 젊은 날에 읽었던 '성자가 된 청소부'속 주인공을 만나는 것만 같은 경험을 하곤 했다. 깨끗함과 거리가 멀고, 부요함과는 상관없으며 교양과 격식이 보이지 않는 비천한 그곳에서.


그날 아침, 그곳에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큰 계기가 되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행복과 기쁨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면에서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평화와 감사가 선물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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