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이
이사
늦가을부터 시작된 건축이 다음 해 봄이 되어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마당에 잔디를 입히고 꽃밭에는 흙을 채워 갖가지 나무를 심기에는 그만큼 딱 맞아떨어지는 계절이 아닐 수 없었다. 때마침 4월이었다. 이사를 들어오기 전까지 마당에 길을 내고, 울타리를 세워 영국과 독일산 덩굴장미를 빙 둘러 심고는 대문을 달았다. 장군이와 꽃순이, 퍼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려견들에게 편안한 공간을 주면서도 외부와는 차단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큰 대문보다는 드나들기 편한 쪽문도 마련했다. 훗날 이 쪽문을 통해 셀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상천외한 일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기억에서 말끔하게 지울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리 하고픈 그런 일들 말이다.
쪽문을 드나드는 주차장은 세 이웃의 마당을 마주했다. 그러니까 네 집이 마주 보지 않지만 대문은 서로를 바라보는 그런 풍경이었다. 들락거리며 본의 아니게 이웃집 마당을 힐끔 쳐다볼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였으니까.
그 쪽문 옆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해 질 녘 저녁노을은 찬란했다. 하늘은 노을에게 하루도 같은 색을 입히지 않았다. 각각 네 집 마당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작은 각도의 차이로 각기 다른 풍경을 완성했다. 붉고 노랗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매일매일 선물하면서.
새집으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종종거리는 우리에게 얼굴의 하얀 이가 터져 나올 것만 같은 환한 미소로 누구보다도 환영하던 이웃이 있었다. 이런 이웃이 있다면 그 어떤 시골생활도 넉넉히 아주 가볍게 잘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진정한 이웃사촌을 만난 건 큰 복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쪽문과 대각선으로 바라보는 커다란 초록 잔디 마당이 소나무와 온갖 꽃나무 울타리로 둘려진 집이었다.
우리는 쪽문을 들락거리며 가족처럼 가까이했다. 인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나눴는지 모른다. 웃어도 웃어도 끝이 없는 인사를.
그 집에는 미국과 프랑스를 거쳐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근처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사람들에게 지쳐 외곽에 있는 시골 부모님 댁에 와서 함께 지내는 아들이 있었다. 딸아이는 그를 베이먼 삼촌이라 불렀다.
초록마당 한 켠 나무 그늘 아래에는 그가 아끼는 빨간색 페라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확히 작은 흰색의 엄마 차와 조경 일을 하는 아버지의 1톤 트럭이 각각의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해가 잘 드는 툇마루에 천으로 된 의자에 몸을 파묻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종종 책을 읽었다. 어느 날은 잔디마당에 텐트를 치고 온갖 캠핑 도구와 전구를 달아 야외 캠핑장을 만들어 바비큐 테이블에 둘러앉아 숯불을 피웠다. 그 일은 아주 자주 있는 흔한 일상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우리 세 가족이 합류할 때도 있었다. 남편은 고기를 사러 급히 시내 마트에 다녀오곤 했다. 이웃과 함께 넉넉히 맛있는 바비큐를 즐기기 위해서. 베이먼의 엄마는 부엌에서 온갖 맛있는 밑반찬을 꺼내와 풍성한 밥상을 금세 만들어내곤 했다. 타들어가는 숯불 위에 고기가 다 없어지고 불씨가 꺼질 때까지 다 같이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은 밤 서둘러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그뿐인가? 야채며, 과일이며, 반찬이며 주고 싶은 것은 아낌없이 가져다주곤 했다. 그 따스하고 환한 미소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바로 눈앞에 서로 마주하는 것처럼. 그 사랑의 눈빛도 그대로 고스란히 남았다.
서울 근교 외곽인 시골에 있다 보니 그 집엔 찾아오는 친척도 많았다. 손님들마다 우리 집으로 모셔와 함께 커피를 마시던 그 어느 가족과 친척, 친구보다 가까운 이들이었다.
막 중학생이 되어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던 딸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베이먼 삼촌이 있는 마당으로 달려갔다. 삼촌의 스쿠터를 자기 것인 양 타고 놀며,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은 지 종알거렸다. 귀찮게 굴지 말라고 딸아이를 나무라면 오히려 좋다고. 자신이 딸아이의 얘기를 들으며 힐링이 된다던 그. 그는 그야말로 딸아이의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며, 삼촌이었다. 세상에 어디서 그런 마음씨 좋은 삼촌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잠시나마 시골에서 행복해서 더 좋은 고귀한 추억을 만들어갔다.
풍산개
깨갱깨갱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렸다. 초록 마당 귀퉁이에서 하얀색 풍산개 아기 강아지가 도와달라고 울어댔다. 주인들이 외출하면서 마당 한 켠에 긴 줄을 걸어서 강아지가 움직이며 놀 수 있도록 끈을 묶어 놓은 게 한쪽 끝에 가서 엉켜버린 것이다. 나와 일대 일로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전에는 주인의 품속에 안겨있었고, 우리도 세 마리의 반려견들이 있는 처지라 간단히 인사만 나누며 넌지시 눈빛만 날리던 때였다. 우리가 이사를 하던 4월에 갓 두 달 된 아기 강아지였으니까. 그 이름은 태양이다. 내가 다가가 도와서 풀어주니 금세 좋다고 꼬리를 치던 댕댕이다. 그 집 안주인은 돌아와 이웃이 있어 이래서 너무 좋다며 그 어느 날보다도 기뻐했다. 바로 그의 집, 베이먼 삼촌 집이었다.
바비큐 파티에는 태양이가 늘 함께 했다. 풍산개 강아지 태양이는 어쩌면 우리보다도 더 고기를 많이 먹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 집 마당에서는 바비큐가 일상처럼 보였다. 가끔 우리 집 꽃순이와 퍼지도 초대되어 갈비를 하나씩 얻어먹을 때도 있었으니까.
태양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던 태양이는 늠름한 풍산개 수컷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마당 구석 파란색 집에서 길게 연결된 줄에 묶여 마당개 생활을 시작했다. 태양이도 우리를 알고 우리도 태양이를 좋아했다. 마당에서 졸고 있는 그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사고 발생
우리 집 반려견들에게 중성화 수술을 해줘야 할지 한창 고민을 하고 있었다. 첫째 내가 아무리 동물이라고 내 마음대로 수술을 시키는 게 맞을까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태어난 순리대로 두는 게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더불어 임신이야 우리가 집에서 단도리를 잘하면 문제없을 거라는 지극히 안일한 생각도 하면서.
그래도 암컷의 경우 자궁축농증이라는 병에 걸릴 위험이 크므로 당연히 건강하게 지내려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동물 병원 원장님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꽃순이의 세 번째 발정기에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쯤은 그 어느 강아지들보다 영리하고 성품이 좋은 꽃순이의 2세를 보기 원했다. 인터넷을 뒤져서 배란기를 계산하여 건너 동네 숫총각 웰시코기 봄이를 우리 집에 며칠 데려다 놓았다. 웰시코기 믹스견인 꽃순이가 아기 웰시코기들을 낳는 상상을 하면서. 봄이 와 꽃순이는 결혼을 할 듯 말 듯 서로 좋아하는 거 같으면서도 결국 성사를 이루지 못했다. 집안 대 집안이 모여 둘의 합방을 기원했지만 내가 시기를 잘못 맞춘 탓인지 애석하게도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이제 새끼 강아지들은 포기하고 생리가 끝나면 바로 중성화 수술을 하기로 봄이도 꽃순이도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꽃순이의 임신 계획이 물 건너가고 있을 즈음에 사고가 발생했다.
가을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였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집에 돌아와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에 눈앞이 노래졌다.
"태양이가 우리 집에 왔었어."
남편의 말에 나는 의심스럽게 반문했다.
"태양이가 어떻게 와요? 묶여 있는데.."
"목줄을 끊고 왔다니까. 그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되긴 꽃순이랑 붙었지."
어쩐지 꽃순이가 장군이도 봄이도 그렇게 거부하더니만 마음이 딴 데 있었구먼. 태양이를 좋아했네. 이 녀석이. 뒷집 할머니께 들으니 최근 며칠 내내 태양이가 애절하고 애달프게 곡소리가 날 만큼 울었단다. 급기야 그토록 탄탄한 목줄을 끊고 연애 감정이 있던 꽃순이 누나에게 달려온 게 아닌가? 자기 좋다고 구애하던 다른 장군이도 봄이도 거들떠보지 않던 꽃순이는 태양이를 받아들였다.
설마 했던 꽃순이의 배가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다. 연하를 좋아했네. 꽃순이가.
아픔
그날도 그 집 초록 마당에서 공기가 촉촉한 가을밤에 숯불을 피웠다. 나는 태양이를 만나러 갔다. 그 집식구가 다 모인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태양아, 너 이젠 우리 사위다. 사위 인사 좀 하자."
"....."
나는 주인아저씨께 물었다.
"진짜 임신을 할까요? 안 할 수도 있겠지요?"
"100프로 해요."
"정말요? 그럼 어떡해요. 새끼 낳으면 제가 반 드릴게요."
"안 돼요. 우리는 강아지 안 좋아해요."
"그럼, 어떡해요."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아저씨는 같이 고기나 구워 먹자고 하셨다. 나는 남편에게 고기를 사 오라고 부탁했는데, 아주머니가 아무 말이 없었다. 말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었다. 베이먼이 내게 입을 겨우 벌리더니 말했다.
"오늘은 저희끼리 그냥 조용히 먹고 싶어요."
"네, 그래요."
그 후로 우리는 세상 어색한 관계로 급변했다. 아저씨만 인사를 나눌 뿐 다른 가족들은 나를 피했다. 고개를 돌렸다.
딸아이는 삼촌이 이상하다며 서운한 마음이 상처를 입은 듯했다. 그토록 다정했던 삼촌이지 않았던가?
백설이
그해 12월 12일 새벽, 꽃순이가 일곱 마리 새끼 강아지들 인절미 꼬물이를 출산했다. 엄마 꽃순이를 닮아 다리가 짧은 강아지 두 마리와 아빠 태양이를 닮아 풍산개 모습을 한 다섯 마리 강아지를 낳은 것이다. 나는 마치 내가 아기를 출산한 것처럼 애틋해서 산모 꽃순이를 돌봤다. 겨울에 태어나서 마당을 뛰어놀 기회가 많지 않았던 새끼 강아지들을 입양 보내며 울던 그 많은 시간들을 지나왔다.
그리고 꽃순이 엄마와 남아 있는 한 마리가 아빠 태양이를 쏙 빼닮았다. 딸아이가 태양이를 원망하며 태양이를 닮았다고 때로 구박하던 백설이. 모두 떠나보내고 지금은 백설이가 엄마 꽃순이와 함께 우리와 지낸다. 나와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면서. 지금은 시골 마당 있는 집을 떠나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도시 생활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나름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잘 넘는 중이다.
나는 오늘도 백설이 속에서 태양이를 본다. 풍산개 강아지를.
눈치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테다. 그토록 다정하고 따뜻한 이웃이 하루아침에 원수처럼 변하게 된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 당시에는 안타깝고 슬프기만 했으니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느 정도는 조금 알 거 같다. 내가 얼마나 눈치가 없었는지를. 눈치를 밥 말아먹고, 고기에 싸서 욱여넣고, 뒤통수 어딘가에 구겨놓고는 꺼낼 생각조차 못 했던 미련 밤탱이 같은 단순한 아낙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것도 아주 조금.
나는 지금도 눈치가 없다.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 바라보고 믿어버리는 단순 무식한 눈치코치 없는 미련퉁이다.
여태껏 나는 깨져버린 관계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통곡하며, 아쉬움에 목놓아 울었다. 다시 돌이키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을 쏟아 넣고 기대하면서. 우리는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 버렸다.
그 집은 새로 집을 지어 먼저 이사를 나갔고, 우리도 뒤따라 도시로 나왔으니까. 이제 다시 만날 수나 있을까? 그저 짧은 시골생활 속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억 한편에 담을 수밖에.
그때, 태양이가 우리 집에 목줄을 끊고 오던 날.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적어도 그때처럼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을 것이다. 눈치를 살피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 번쯤은 더 생각하고, 분위기를 살필 것이다. 그리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예의를 갖추어 행동하지 않을까? 지금의 나라면.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기로 하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려 하지도 말고. 나는 오늘도 태양이가 남긴 백설이를 사랑으로 돌보고 있다. 그러면 충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