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마음 헤아리기

자기 사랑

by 샨띠정

몇 주 전의 일이다. 시골에서 도시로 막 이사를 나온 후였다.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미래를 만나 같이 주일 예배를 드렸다. 마침 교회 부흥회 기간이라 정갑신 목사님이 강사로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다. 그날 나는 남편의 신대원 동기이자 신학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말로만 듣던 정갑신 목사님의 설교를 처음으로 직접 듣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듣는 정 목사님의 개인적인 간증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들어와 나를 만졌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의 간증은 나를 세차게 두드렸다. 내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기독교는 좀 애매하다고, 딱 떨어지지 않는다고, 뭔가 딱 떨어지는 답을 구하려면 이단에 가면 된다고, 신천지나 그런 곳이 그렇다 했다. 그의 아버지는 신천지의 전신인 전도관의 고위급 간부였단다. 지금의 신천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전도관에서 아버지와 그의 가정이 벗어나게 된 그는 아버지께 감사했다. 사실 쫓겨나게 된 이유가 충격적이긴 하다. 그의 전도관의 고위급 간부였던 아버지는 그의 비서와 외도를 해서 배다른 이복동생이 있다고 한다. 그 사건이 결국 목사님의 가정을 구출하게 된 계기였다 한다. 다행히 임종 전에 아버지를 용서하고 편하게 보내드렸다는 고백과 간증은 오묘하고 신묘막측한 하늘 아버지의 손길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현재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깊고도 철학적인 설교에 더 생각하고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아버지를 용서하고 감사를 드리던 그의 마음을 잠시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기도하며 말씀을 깨닫기 위해 번민하고 고민하며 강구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


둘째 딸과의 심각한 갈등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개인의 아픔을 나누며, 진실로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신 정 목사님의 마음에 감사했다. 원수처럼 으르렁대던 관계가 한 아버지의 꺾인 마음과 겸비한 사랑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어떤 아름다운 결말을 이루어 가는지를 배웠다.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타인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이 먼저 선행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했다. 나를 향한 사랑인 자기애에서 타인을 향한 사랑과 배려로 거듭날 때 기적처럼 이루어지는 그 놀라운 변화를 말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 사랑의 끝판왕이었는지를 최근에 발견했다. 내 감정과 나를 향한 사랑과 자기 보호가 타인의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는 데 방해가 되었다는 사실도 이제야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진심으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내겐 가장 소중했을 테니까. 그리고 남 탓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타인의 뒷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 시작할 때. 진실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다. 그제야 아픈 마음과 외로움을 보듬으며 함께 느낄 수 있을 테니까.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다가갈 때야 비로소 겉으로 보이는 거친 말과 행동이 힘들다는 절규이며 부르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기에 그러하다.


뭔가 딱 떨어지지 않아 철학적인 기독교 신앙.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할지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장 26-28절)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장 11절)


누군가를 섬기는 목적이 크고자 함이 된다면,

종이 되는 목적이 으뜸이 되고자 함이라면.

높아지기 위해 자기를 낮추는 거라면.


이 애매모호하면서 진리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자체가 우리와 같은 이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정 목사님은 기독교의 그 애매모호함이 복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더 기도하며 주의 뜻을 구하면서 깊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이건 내 해석이 보태진 것이지만.


내가 아닌 모두는 타인이다. 부모도, 가족도 친구도, 형제자매도, 이웃도, 그 외 세상 모든 사람들은 타인이지 않은가?


사랑을 구한다. 내게 더 깊은 사랑을 달라고. 사랑하지 못한 내 죄를 고백하면서.

얼마나 많이 사랑받으려 애쓰며, 초조하며, 불안해하며, 힘쓰며, 애를 태웠던가?

이제 나는 타인의 마음을 알고 사랑으로 종노릇 하기 원한다. 진심으로.

높아지려는 것도 아니고, 상을 받기 위함도 아니며, 칭찬을 위한 것도 더군다나 아니다.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이 사랑의 사람이 되길 원한다.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다시 거듭날 수만 있다면 사랑의 사람으로 나고 싶다.

거짓된 사랑도 나를 위한 포장된 것도 아닌, 가면을 벗어던져 버릴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