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노릇 하기

애환

by 샨띠정

세상에서 피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종이 되는 것일 게다. 누군가의 종이 되는 일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괴롭기 그지없는 최악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자주 때때로 거의 종이 되기를 자처했다. 가짜인 거 같기도 하고, 진짜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종노릇을 위해.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쓴 편지, 신약성경의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서로 종노릇 하라'라고 손 편지로 권면하는 말씀은 어쩌면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내 삶의 모토가 되지 않았나 싶다.


문제가 있다면 종될 주인을 나 스스로 선택한다는 게 아닐까?


나는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말씀을 잠시 묵상하고는 바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간다. 내가 중되어 섬기기로 한 강아지 두 마리가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위한 몇 가지 확인 후에는 어김없이 강아지들과 산책길에 나선다. 이 일에 나는 불평하지 않고 늘 기쁨으로 몸을 맡긴다. 낑낑대는 꽃순이와 백설이의 모녀 강아지 신음 소리가 날 재촉하여 산책기로 이끌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한 아침 산책이기도 하니까. 기꺼이 기다려주고, 시간을 들이며, 내 수고를 값 없이 반려견들에게 바친다.


딸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딸의 종이 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굳건한 결심을 한 엄마다.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딸아이를 위해 나는 모든 시간과 마음을 쏟아 넣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아이를 위해 이사를 다니는 엄마다. 인도에서도 한국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맹모삼천지교가 먼 옛날 누군가의 얘기가 아닌 이유다. 교복과 양말, 속옷까지 딸아이를 위해 이부자리와 아침 식사, 학교 등교까지 내 손은 모든 것을 해 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그 일들이 결코 짜증 나거나 힘들지 않은 것은 내가 종이 되기로 자원하여 마음을 정하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강아지 산책을 마치고 들어와 목이 마른 반려견의 물그릇을 새로 채우며 밥을 주는 일도 내겐 힘든 일이 아니다.


아, 그런데 나는 남편의 종이 되기를 거부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쌓인 일로 피로에 지치고, 몸까지 아픈 날 생각해 주지 않는 남편에게 기꺼이 종이 되어주고픈 마음이 없는 게다. 전기밥솥에 아침밥을 짓고, 싱크대에 놓인 머그컵을 씻으며, 음식물 쓰레기통에 그대로 놓인 찌꺼기들을 보면서, 쓸어도 끝이 없는 바닥을 닦으면서. 나는 입이 나왔다. 짜증이 올라오다가 신경질로 바뀌는 순간은 아주 짧다. 거기에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며, 아침 밥상을 차려야 하는 내 마음에 불만이라는 불청객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나? 왜 내가 다 해야 하지? 이걸 어떻게 내가 다 할 수 있느냐고.'


설거지하는 동안 컵들의 부딪히는 소리가 커지고, 내 손길이 닿는 가재도구들이 쨍그랑거리기 시작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보았던, 에어컨을 켜 둔 채 안방에 편히 쉬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언제까지 나는 이렇게 종처럼 일해야 하는 걸까 생각만 해도 울화가 차올라 얼굴빛이 검게 뒤덮어 버렸다.


하루 중 온 가족이 밥상에 앉는 유일한 시간은 아침 식사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밥을 맛있게 먹으며 숟가락과 함께 입에 넣을 필요 없는 잔소리와 가끔은 폭언까지 꾸역꾸역 들이킨다.

오늘 아침은 급기야 아빠와 부딪힌 딸아이가 밥그릇과 반찬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남편과 나만 식탁에 남았다. 나를 향한 훈계와 교훈과 가르침이 쏟아졌다. 고분고분하려 애쓰지만 내 성향상 아주 순종적인 아내는 되지 못하니, 내 의견을 조심히 꺼내놓으면 어김없이 쏜살같은 분노의 말들이 내게 달음박질해서 날아온다.


'아, 나는 아침밥을 평화롭고 맛있게 먹고 싶다고요. 아이가 잘못하는 건 꼭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냥 좀 넘어가면 좋겠다고요. 제발.'


내 마음속 절규를 아는지 모르는지 강압적으로 짓누르는 스스로 나의 주인 된 사람의 거친 말소리가 싫어서 도망치듯 밥상을 물리고 출근길에 나선다.

언제쯤 목소리가 크다고 이기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까? 더 강하고 독한 말을 하면 스스로 종을 다스리고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라도 하는 걸까? 그래서 나는 당신을 내가 섬겨야 할 주인으로 삼지 않기로 결심했노라고 뱃속 깊은 곳에서 소리 없는 고함을 질렀다.


내겐 수만 가지 이유가 있다. 헤어질 이유도, 종이 되지 않을 이유도, 용서하지 않을 이유도 충분하지 않은가?


사랑의 종, servant for love.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 하라는 말씀을 다시 돌아본다. 우리 부부가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어쩌면 내가 먼저 그의 종이 되기를 결단해야 하지 않을까? 그의 입술과 말의 열매와 삶의 모든 것을 위해 기도로 섬기며, 종노릇해야 하는 나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나의 연약함과 게으름을 먼저 회개해야 하지 않겠는가?

벌써 오래전의 이야기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는 생활을 꽤 길게 보냈다. 그 당시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남편에게 종이 되어 섬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 속옷도 다림질하고, 매일 아침 그를 위해 입을 옷을 미리 코디해서 준비해 두었으며, 그의 이메일 관리와 모든 일정들, 타이핑까지도 기쁜 마음으로 수고를 더했다. 청소며 빨래, 다림질, 요리 등 모든 것이 즐거웠다. 내 품에 딸아이를 안기 전까지 말이다.


이제 나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떻게 사랑으로 종노릇 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수족처럼 해주는 게 종노릇이며, 사랑으로 서로를 위해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서로를 위해 죽기까지 종노릇 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주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님의 마음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기 원한다. 미움과 원망, 시비와 질타, 싸움과 상처를 벗어나 서로를 감싸줄 수 있는 선하고 좋은 길을 구하며.


어쩌면 부부에게 자신을 낮추는 일은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이 아닐까?

주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지만,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자문해 본다.


'죽고 싶지 않다고,

나를 낮추기 싫다고,

내가 더 높아져야 한다고,

종이 되면 안 된다고,

도리어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누가 하고 싶어서 하느냐고,

종노릇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고...'


나는 아직 멀고 멀었나 보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종노릇하는 척,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