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눈물의 여왕

by 샨띠정

작은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겐 삼춘이 더 익숙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작은 아빠로 자연스레 호칭을 바꿨다.

경상도 특유의 억양과 톤의 삼촌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아빠 목소리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르다. 아빠가 좀 더 부드럽고, 삼촌은 싱그럽다고 해야 할까? 청년이던 두 분은 형이 이제 팔순을 훌쩍 넘어버렸고, 막냇동생은 곧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얼굴에 그어진 주름 모양이 세월을 말한다. 형인 아빠는 이제 염색을 더 이상 하지 않아 모자 밖으로 삐져나온 백발이, 동생의 머리에는 히긋히긋 눈꽃이 피어 나이를 짐작게 한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청년이다. 젊은 그 시절 쩡쩡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그대로 남았다. 전화 통화만 하기라도 하면 그 누구도 그 나이를 가늠하지 못할 테다.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가 작은아버지다.

"어디 잘 지내냐?"

삼촌이 아침부터 전화를 하시다니, 이유가 있으실 거 같았다.

"네, 잘 지내요. 무슨 일 있으세요?"

궁금증에 질문 먼저 던지는 내게 삼촌의 목소리 톤이 내려왔다.


"아니 지난번에 인천에서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서 눈물바다를 만드니 내 마음이 영 안 편해서..느그 작은엄마랑 내내 네 생각이 떠나지 않아 걱정이 되는 거라."


작은엄마는 내 어린 시절 친구 규연이의 큰 누나다. 우리는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삼촌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시집오자마자 시부모님을 모시며, 막내 삼촌과 막내 고모까지 같이 살았던 대가족이었던 게다. 엄마는 고모를 시집보내고, 마지막으로 막내 삼촌을 결혼시켰다. 작은 아빠는 같은 교회에 다니던 내 친구네 집인 신앙 있는 작은 엄마와 가정을 이루신 것이다. 젊고 젊은 삼촌은 우리와 밤마다 아빠와 같이 닭싸움과 씨름을 시키기도 하며, 손바닥 위에 우리를 올려 태워주거나 팔에 오래 매달리기 게임과 팔씨름을 즐기며 놀아주고, 땅콩 껍질을 벗겨 주며, 간식거리를 우리 입에 넣어주셨다.

결혼 후 분가하신 후로는 이전처럼 가깝게 지내기 어려웠지만,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추억은 그대로 살아있다.


아무튼 삼촌이 특별히 안부를 전하고 싶거나, 용건이 있을 때 내게 전화를 하시곤 했다.


지난 5일에 친구 규연이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친구들 중에 처음 있는 자녀의 결혼식이고, 내겐 특별한 친구이자 사돈이라 무리를 해서 인천까지 달려갔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서로의 겉모습만 언뜻 봐서는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커다란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기억을 더듬어 머릿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매칭시키며 두리번거렸다.

마침내 내 어린 날 교회에서 줄곧 만나던 작은 엄마의 동생들과 오빠 가족들을 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모두들 다 신앙 안에서 여전히 굳건한 믿음 생활을 하고 계셨다. 자녀들도 다 잘되고 복을 누리는 그 모습들이 감사했다. 부모님은 모두 천국에 가셨지만, 남아있는 7남매는 자녀들까지 모두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신앙을 지켜내고 있었다.


감동이 몰려왔다. 우리가 그 길고도 험한 길을 헤쳐 나와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만나 변함없는 믿음의 삶을 고백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바람에 대화를 하는 동안 뺨을 닦아내리느라 손이 바빴다.


벌게진 눈으로 작은 아빠와 엄마 자리로 돌아와 자꾸 눈물이 난다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함께 온 길영이도 내 마음을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구에서 기차 타고 올라온 재봉이도 서울에서 돌고 돌아온 은숙이와 진옥이도 우리의 묵은 우정을 함께 이야기했다. 어느새 눈물이 마르고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후 2주가 지났다. 두 주 동안 작은 아빠와 엄마는 눈물을 쏟아낸 내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으셨단다. 작은 아빠는 왜 우느냐고, 왜 그리 눈물이 많냐고, 눈물이 많으면 안 된다고, 별일은 없느냐고, 목소리는 좋아서 안심이라고 하시며, 비 소식과 일상의 얘기를 나눴다.


엄마가 항상 내게 말씀하셨다. 넌 누가 예쁘다고만 해도 울었다고. 누군가 말만 시켜도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눈물이 많다. 내 몸속의 70퍼센트인 물이 어느 정도는 눈물이 되어 밖으로 소비될 것이다.

혼자 글을 쓰다가도.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좋아하는 찬양을 들을 때.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혼자 슬픈 생각이 들 때는 당연히.

나는 많은 눈물을 쏟아낸다.

남편 때문에.

딸 때문에.

또 누군가로 인해.

누군가를 위해.

주님을 생각하며.

감사해서.

힘들어서.

괴로워서.

감동해서.

두려워서.

좋아서.

행복해서.

벅차서.

사랑스러워서.

기뻐서.

은혜로워서.


내겐 울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많다. 때론 미리 쏟아져 나올 눈물을 막기 위해 대비를 해야 한다.


의사가 암이라고 말했을 때도 그 자리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걸려온 동생의 전화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구급차 안에서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혈연이어야 한다고 보호자를 부르라고 했을 때. 남편은 올 수 없어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구급차에 누워있다고,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목이 메어 말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양 눈에서 눈물만 속절없이 흘러내려 귓속으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하려 해도 목이 꽉 막혀 전화기를 구급 대원에게 넘겼다.

글을 쓰는 지금도 훌쩍거리는 날 곁에서 힐끗 쳐다보는 딸아이. 이 아이는 알고 있다. 엄마가 얼마나 울보인지. 때론 나를 토닥여준다. 그 조그마하고 따뜻한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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