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나온 북카페

시골 북카페지기 도시 북카페로

by 샨띠정

삶은 변한다. 계획은 그저 그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살아본 경험상 그렇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지나온 나의 걸음이 그러했다.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그 작은 철학이 얼마나 큰 삶의 선물인지를. 크나큰 행운이라는 것을. 적어도 모르고 살아가는 게 다행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나는 시골 북카페지기 아낙이 아니었던가? 울타리를 타고 손을 뻗치는 넝쿨 장미꽃들을 뒤로하고 도시로 나오기 전까지.

눈물을 떨구기라도 할까 봐 흐르는 땀방울에 의지하여 슬픔 따위는 고단함 속에 감추어 두었다.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 아파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인도에서 수원 도심 속으로 왔다가 스스로 자처하여 시골로 들어간 우리. 잠시 머물겠다 생각했던 계획이 4년 하고도 9개월을 살아버렸다. 시골 마을에 북카페를 시작할 때는 오래오래 아주 오래 머물 거라고 막연히 노년에 이르도록 그곳에 남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던가.

간과했던 하나, 딸아이의 교육이다. 아이마다 타고난 성향과 기질이 다르다는 것. 저마다의 가야 할 길과 방향이 있다는 것. 적절한 필요와 그 시기와 때가 있다는 것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 꿈과 계획에 심취하여 한 곳 만을 바라보았다.


결국, 우리는 시골을 저버리고 도시로 나왔다. 수많은 갈등이 생각을 어지럽게 하고, 몸까지 아파 헉헉대며, 시골을 떠나기까지 온갖 번민과 씨름하던 날들을 지났다. 길고 긴 논두렁 외길을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듯 그렇게 굴곡진 길을 통과했다. 지금 나는 콘크리트와 빌딩 숲으로 들어와 있다.


보장된 것은 없지만, 그저 인도하심 따라 이곳에 와 있다. 다행히 아이는 도심 속 고등학교에 그런대로 잘 적응하고 있다. 어쩌면 시골 학교보다도 도시학교가 몸에 맞고 어울렸던 아이처럼 말이다.

아이와 함께 그를 위한 선택이고 결정이었던 시골행이 지금 와서 잘못된 시행착오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 4년여의 전원생활을 결코 후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시 돌아가도 나는 그 길을 갔을 테니까. 그건 숙명이고 주님이 정한 뜻이었으리라. 내 삶에 뺄 수 없는 선물 같은 시간이 분명했다.


이제 나는 시골 북카페를 떠나 도심 속 북카페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새들의 노랫소리 대신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뒷산에 흔들리던 나뭇잎보다는 기운이 없어 보이는 가로수가 경직된 상태로 날 응시하는 듯하다. 마치 내게 텃세라고 부릴 기세다. 나보다 먼저 자리 잡은 자신이 이곳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내게 한 수라도 가르쳐 줄 모양이다. 제발 알려주길 사정한다. 난 아직 이곳의 이방인이라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낯가림으로 힘들다고. 나를 도와달라고 무심히 서 있는 가로수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그런 내 심정을 알기라도 하듯. 도시라고 기죽지 말라고, 따스한 이웃들이 하나 둘 나를 보듬어 준다.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나다 보니, 단골손님도 생겼다. 나의 새로운 이웃들이다. 커피 마시러 오는 길에 비닐봉지에 삶은 옥수수를 담아 건넨다. 농사지은 파까지도. 잠깐 기다리라면서 커피 마시다가 자동차로 달려 나가 농장에서 따온 풋고추를 건네고, 가지를 손에 쥐여주는 이웃들.

아이 유치원 하굣길에 들러 점심 못 챙겨 먹은 날 안타까워하며 햇반과 카레며 간식거리를 챙겨다 주는 특별한 그녀는 남편이 인도에 주재원으로 홀로 떠나 있어 홀로 삼 남매를 돌보며 우리 북카페 앞 아파트에 지낸다. 오가며 나를 찾아오는 소중한 믿음의 언니 동생이 되었다. 나를 언니라 부르는 그녀는 한국으로 잠시 휴가 나오는 남편 편으로 내가 좋아하는 인도 카디 로즈 비누와 인도 믹스 달과 간편식까지 나른다. 이 무슨 호사인지 모르겠다. 도시에도 사람들은 좋다. 정이 있다. 동네 맘 카페 회장님과 카페 옆 중일 초등학교 학부모회 임원들까지 나의 따뜻한 이웃이 되어 나를 찾는다.


서울에서 인도 델리에서 수원과 안성, 용인 양지에서 날 찾아와 주는 그리운 사람들. 그들이 나를 위로한다.


무엇보다 이곳은 마치 도심 속의 성지 같다. 은혜샘물교회와 향상교회, 그리고 우리의 옆집 이야기 교회가 있다. 믿음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도 곤고한 내 삶을 풍요로 채운다. 샘물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이사 와서 터전을 잡은 엄마와 아빠들이 거주하는 곳이라 크리스천이 많은 도심 속의 동네다. 게다가 딸아이의 학교 친구가 교회 고등부에 초대하여 같이 예배도 드리게 되었으니 내 마음이 더없이 기쁘다. 어떻게 이 모든 걸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말로 내 깊은 마음속 이야기를 한낱 작은 글쟁이가 적절한 문장으로 감히 옮겨 심을 수 있겠는가?

이 정도면 시골 북카페지기가 도시 북카페지기로 변신을 잘하고 있는 셈이지 않을까 싶다. 비록 갈 길은 멀지만 말이다.


이제 큰 정원과 장미 울타리는 없다. 그저 작은 미니 정원이 북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았을 뿐이다. 내겐 작아도 커도 그저 나의 정원이다. 나의 꽃이 있고, 푸른 잎사귀들이 햇볕을 받으며, 나는 아침마다 그들에게 물을 먹인다. 종종 지나가는 이들이 정원을 들여다본다. 아주 유심히, 찬찬하게. 가는 길을 멈추어 서서, 때로는 가다가 뒷걸음치며 돌아와 작은 정원을 마주하는 이들이 있다. 정원 곁 의자에 앉아 더위와 피곤을 식히는 이들도 있으니 내 작은 정원의 역할은 꽤 크지 않은가?

미니정원

나는 도시 북카페지기로 살아가지만, 어쩌면 속은 여전히 시골 북카페지기가 아닐까? 애써 지우려 하지 말고, 담담하게 기억 속에 담고 오래오래 우리고 우려서 구수하고 진한 맛을 누려보자.

그렇게 하자고 내 가슴에게 차근차근 설득한다. 나는. 그날들도 꽤 아름답고 소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