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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희 May 07. 2022

당신이 한번쯤은 덴마크에 살다 와야 하는 이유

멋있게 늙는 법

21살, 인생무상 느껴서 덴마크에서 2주 도피하면서 배운 것들

1. 멋있게 늙는 법.

낮에는 바다에, 저녁에는 보드게임을 했다. 바닷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풍경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같이 손을 잡고 와 모래에 앉아 책을 읽는 풍경이었다. 보드게임 바에서도, 서점에서도, 길거리를 걸을 때도,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여느 커플들과 다르지 않게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모습이 쉽게 보였다. 여기서는 내가 나이가 들어도 사회의 일부로 남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어색함이었다. 서울에서의 내 일상에는 노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흔히 활동하는 장소들은(ex. 전시회, 미술관, 영화관)은 2030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50 이후의 사람들이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무의식적으로 ‘내 인생 50 되면 이제 난 끝이야’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이런 한국 젊은 세대들에게 ‘멋지게 늙는 법’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 사람을 한 명 뽑으라고 하면 한국 최초로 밀라노에서 유학한 디자이너/유튜버 “밀라논나”가 있다. 밀라논나는 69세로 본인이 나이가 들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꾸미는 것에 대해 미안함이 없고 현재 세대와 계속 소통한다. 권위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에서 배운 지혜들을 아낌없이 공유한다. 하지만 한 명이 사회에 만들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또 소셜 미디어 앱들은 ‘네가 생각하는 게 다 맞아! 네가 틀린 건 하나도 없어!’식으로 사용자 관심 분야만 계속 보여주기 때문에 세대 격차를 줄여줄 수 없다.) 서울 내 여러 세대가 맞물릴 수 있는 공간의 부재와 필요성이 많이 느껴진 부분이었다.

2. 사람을 위한 도시.

덴마크는 사람을 위한 ‘건강한’ 도시 디자인으로 가장 유명한 나라다.(그래서 타국가에서 도시 개발 시 덴마크 출신 디자이너들한테 자문 요청을 많이 한다) 그래서 수도인 Copenhagen은 얼마나 다를까 기대가 컸다. 그중 다른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달랐던 점은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싶을 정도로 도시가 고요하다는 점이었다. 우선 나라 자체가 평평하고 대부분 사람들이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타 차 소음이 거의 없다. 그리고 카페를 포함한 대부분 시설에서 아무 노래도 안 틀어준다. 사람들도 말을 할 때 굉장히 작은 볼륨으로 말한다. 평일 낮 도시 한가운데에 서 있어도 고요함이 소음보다 더 컸다. 도시에 있는 2주간 긴 명상을 하는 듯했다. 단점이라면 덴마크를 뜨자마자 귀가 놀라 모든 소음 공해가(ex. 버스 타이어 소리, 전철 소리, 카페/식당에서 틀어주는 음악, 건물 방송) 하나하나 해부되어 귀에 못 박히듯 들린다.

3. "사람들은 보여주기 전까지 본인에게 무엇이 이로운지 모른다” (People don't know what is good for them until you show it to them.)

덴마크에서 본 광고들은 전부 잔잔한 색의 배경에 글이 몇 개 적혀있는 식이었다. Denmark Style이 이런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사람이 항상 무엇을 원하는 상태에 놓이면 불행해지기 때문에 광고가 자극적이게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라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일상에서 보이는 광고들의 자극성이 낮아지니 생각이 많이 고요해졌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입는 옷들도 보면 아무것도 안 써져 있는 플레인한 옷만 입고 큰 로고가 달린 옷들은 “나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아니야”하며 기피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해로운 것들이 여럿 있다. 차 도로가 그 예시 중 하나이다. 차도가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오로지 도시의 상업화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차도가 도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주민들의 행복도는 낮아진다.) 자극적인 광고들은 겉으로는 당장 나를 VIP 취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현재 가진 것이 절대로 충분하지 않다는 심리를 자극한다. 높은 건물들은 인류 기술의 정점처럼 보이지만 덴마크에서는 아예 법으로 못 만들게 되어있다.(근데 또 요즘에는 부동산 부자들이 많아지면서 이 규제가 바뀌고 있다 역시 돈 앞에서는…) 사람은 건물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불행해지기 때문이 이유이다.

이전에 "정부가 법적으로 학교에서 패스트 푸드를 줄이고 채소를 급식에 포함시키도록 규제화해야 하느냐”라는 주제로 10대 운동가들이 영국 토크쇼에 나와 그렇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호스트와 토론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yes, i know, the things I do in my free time) 그중 “많은 사람들은 본인에게 무엇이 좋은 건지 잘 몰라요. 그걸 교육시키는 게 당신 같은 어른들의 일이 아닐까요?”라고 한 소녀의 말이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사람들은 보여주기 전까지 본인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People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you show it to them)라는 말은 기획자들에게 바이블 같은 말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완전히 기업가적인, 미국식 마인드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북유럽에서는 “사람들은 보여주기 전까지 본인에게 무엇이 이로운지 모른다”(People don't know what is good for them until you show it to them.)라는 말이 그들의 삶에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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