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서열 꼴등 크레이지 둘째들의 이야기
나는 삼 남매의 둘째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 자주 들은 말이 “너 혼자서도 잘할 수 있지?”였다. 그 말는 곧 “너는 혼자서도 잘하니까”로 바뀌었다. 삼 남매 육아라는 주식에서 내 몫 지키기 눈치게임에 처절히 실패한 것이었다.
부모님들이 하루 학교에 와서 수업을 참관하는 날이 있었다. 부모님이랑 같이 클레이로 뭔가를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엄마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오지 않았다. 반에서 나만 엄마 없이 혼자 클레이를 만드는데 40분 남짓한 수업이 마치 평생처럼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고 남자애들이 너만 엄마 없다고 놀리는데 엄마가 왔었다. 엄마는 오빠, 여동생 수업에 갔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며 설명을 했지만 이미 스크레치는 생긴 상태였다.
처음부터 엄마가 내 반에 와 끝까지 있어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선택을 해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엄마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를 가장 마지막 순위에 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의 서열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그냥 참았다. 나는 잘 참는 아이였다. 그래서 엄마가 나를 마지막 순위로 고른 것일 수도 있다. 가장 안 울 것 같은 아이로. 가장 난장판을 안 만들 애로. 가장 조용히 넘어갈 애로. 그때 나는 초등학생 2학년이었다.
여동생이 한 7살 정도 될 때 백화점에서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옷을 발견하고서는 사달라고 바닥에 아예 주저앉아서 나라 잃은 것처럼 엉엉 운 적이 있다. 그 옷은 어린 내가 봐도 정말 예쁜 옷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차피 저래도 엄마는 절대로 안 사주는데 왜 저러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나한테만 그런 거였다. 동생은 결국 그 옷을 든 채로 백화점을 나왔고 그 사건은 나한테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에 오빠도 새 컴퓨터를 사달라고 졸라댔고 결국 얻어냈다. 반면 나는 어린 시절 무엇 하나를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는 “기르기 편한” 아이 었다. 이쯤 되면 듣는 말이 있다.
"왜 등신같이 말을 못 해"
학부모 수업 참관 날 시원하게 울어버렸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어린애처럼 왜 내 반에만 안 온 거냐고 왜 내가 마지막 순위였냐, 둘째면 2순위는 됐어야 했던 거 아니냐 바닥에 앉아서 펑펑 울었어야 했던 건가 생각을 한다. 나도 가지고 싶은 게 있었으면 한 번은 떼를 썼어야 했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동생은 막내여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숨 쉬기만 해도 그저 귀여워 보여서 그럴 수 있던 것이다. 장남은 장남이니까 기를 펴줘야 해서 그랬던 것이다. "그래, 장남이니까!" "그래, 막내니까!"는 말이 되지만 "그래, 우리 집 둘째니까"라는 말에는 뒤에 물음표가 붙는다. 나는 그렇게 우리 집 서열 꼴등이 되었다.
가끔 외국 틱톡에서 첫째 막내에게는 사달라는 거 다 사주고, 학교 행사에 다 열심히 참석하면서 애지중지 키우지만 둘째에게는 “너... 이름이 뭐였지? 아 맞다 너 내 자식이지, 음... 너 나이가 올해 몇이라고?”하는 짧은 동영상들이 보이는데 이런 미디어에서 둘째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부분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둘째 신드롬/middle child syndrome이라는 단어도 존재한다.)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들은 일찍 가족으로부터 독립심이 생겨 친구들과 빨리 정서적 유대감을 만들어 한마디로 "핵인싸"가 되기 쉽다. 나 같은 경우에도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거의 제2의 가족이 되어 일찍이 가족으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한 케이스이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갈고닦은 중재 경험으로 둘째들은 첫째, 막내들에 비해 낮은 이혼율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기 연민은 끝이 없다. 둘째들이 어릴 때부터 집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불씨로 남아 성인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불씨를 성공을 위한 좋은 연료로 쓸 것인지, 자기 연민으로 바꾸어 나를 삼키게 내버려 둘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나를 마지막 순위에 넣어도 나는 나 자신을 1순위 취급을 해주면서 살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