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무것도 몰랐던 신입생 시절의 나에게 주는 조언
1.과외 source
옥스퍼드 대학교 방문 시 옥스퍼드 대학생들은 (원칙적으로는) 학기 중에 돈을 버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학칙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당시 1학년 끝자락에 있던 나는 이건 학교가 학생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4학년 끝자락에 와서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학생은 돈을 안 버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 학생 때 버는 돈은 내 시간을 팔아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돈을 벌기 시작하면 공부하는 게 재미 없어질 수 있다. 공부는 수익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내 몸값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도움이 된다는 걸 대학교 2학년 때쯤 깨달았다.(아무것도 안 하고 쉬더라도 그것도 몸테크다)
그래서 과외 추천을 하자면, 줌+영어+뇌운동 최소화+가까운 곳+영유아,초등학생의 조합, 또한 단순노동보다는 길게 봤을 때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일들을 추천한다.
한국에 지인이 많이 없던 나는 초반에는 국대모, 강남, 목동 맘 카페 등에서 과외를 찾았다. 과외를 하면서 느낀 점은 부모님들이 단순히 과외 선생님들의 실력을 보는 것보다도 내 자녀들과 어느 정도의 친밀도를 가지고 있는지, 좋은 언니, 롤 모델이 되어서 장기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주는지를 더 신경 쓰시는 것 같았다. 첫 과외를 찾는 게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이후에 보통 소개, 소개해서 과외가 계속 들어온다.
공부할 의지가 없는 학생, 수업 시간에 땡깡 부리는 학생들에게는 지금 당장 네가 하고 싶은 게 없는 건 당연한 거지만 미래에 네가 하고 싶은 일들이 분명히 생길 건데 그럼 그때 성적이 네 앞길을 막게 내버려 둘 거냐, 이제 120 세대인데 지금 조금 힘들다고 쉬면 나머지 인생도 계속 편할 것 같냐, 지금 쉬는 게 정말 쉬는 거라고 할 수 있냐, 너의 마음은 지금 편하냐 식으로 타일렀던 게 기억난다. 주변에서도 보면 위기의식을 느낀 순간부터 다들 알아서 잘 하는 것 같다.
2.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는 말의 뜻.
40살까지 군인을 하다가 영화감독이 된 중국인 감독이 있는데(이름을 까먹었다, what a reliable source I am) 인터뷰이가 결국 돌고 돌아 영화감독이 되었는데 조금 더 일찍 이 길로 들어설걸, 그동안 군인으로서 보낸 세월이 아깝지 않냐라는 질문에 아니다, 군인을 해봤으니 이 길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아깝지 않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나랑 찰떡궁합인 passion 하나를 찾는 게 아니라 나랑 안 맞는 것들을 리스트에서 제외해 나간다고 생각하면서 경험을 쌓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Ex. K-Pop 교차편집 영상 보기를 좋아해서 내가 춤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춤 레슨을 몇 번 받은 후 나는 사실 디테일이 많은 옷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3.심리 상담 받기
심리 상담이 사회에 나오면 가격이 너무 뛰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무료로 해줄 때 한 번은 꼭 받아보라는 말을 고등학교 선배로부터 들었다. 또 이대를 포함한 서울 대부분의 대학교에서는 심리 상담 신청 경쟁률이 치열해서 성공하더라도 몇 개월은 대기해야 하는데 이대 기숙사생 심리 상담 슬롯은 오히려 너무 남아서 문제라는 말을 듣고 신청해 보았다.
심리 상담에 대한 나의 첫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징징이가 되어서 한 사람에게 내 마음의 짐을 다 던지는, 정작 문제 해결에는 진전이 없는 시간 낭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받아본 결과, 단순히 친한 친구한테 속 터놓고 말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정교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인생에서 굉장히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모든 사람은 한 번쯤 심리 상담을 받아봐야 한다’라는 sentiment 또한 이전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한번 나랑 잘 맞는 상담사와의 대화 이후에는 크게 동의를 하게 되었다. 문제 해결은 절대로 해주지 않는다. 그건 각자의 짐이다. 하지만 복잡한 실마리를 어떻게 푸는지를 가르쳐 준다.
또 나는 지인들의 심리상담사 역할을 해줄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흔히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를 Knife in the throat라고 한다. 일반인에게 심리상담사 역할을 위임하는 것은 이 칼을 지나가는 행인1한테 뽑아주라고 부탁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4.사진 한곳에 모아두기
나는 고등학교 때 페북-스냅챗-인스타 3개가 다 애매하게 걸쳐진 세대여서 고등학교 때 사진들이 어디 하나에 딱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게 많이 아쉬웠다. 대학에서는 사진들을 잘 정리해놔야지 싶었는데 구글 포토도 뒤엎어졌다. 사진들을 어디 한 곳에 시간대별로 정리해두면 나중에 추억 간직용으로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진들을 신뢰 할 수 있는(강조) 클라우드나 USB 한 곳에 시간대별로 정리해두면 나중에 추억 간직용으로 좋을 것 같다.
5.두번째 탯줄 자르기. 가장 좋은 관계는 거리가 있는 관계.
한 면접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지원 동기를 묻자 “제 엄마가 여기 나오셨는데 여기에 꼭 들어가라고 하셨어요.”라고 밝힌 지원자가 있었다. 다른 주제로 질문을 돌려도 그 지원자의 이야기에는 계속 그의 엄마가 나왔다.
이 문제는 특히 엄마와 유대감을 더 많이 쌓는 딸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부모는 살면서 두 번 탯줄을 자른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자녀가 정서적 독립을 할 때이다. 이전에 인터뷰한 정신의과 교수님께서 가족과는 조금 친한 남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베스트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이 말을 듣고 갑자기 go rogue하라는 말이 아니다. “난 이제부터 정서적 독립을 시작할 거야!” 하고 대뜸 선고식을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만약 부모님이 먼저 이 탯줄을 자르려고 하고 있지 않다면, 내가 우선 자르는 시늉이라도 해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