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은 내 전생의 업보
나도 어렸을 때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이사를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다닌 나는 한 때, 전 세계 모든 가족들은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것이 정부에서 지정한 모두가 따라야 하는 법, 인생의 순리라고 생각하였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사관, 주재원 자녀들이 많은 국제학교에서는 정말 많은 학생들이 연단위, 심지어는 6개월 단위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실제로도 내가 관찰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전 세계인들이 지켜야 하는 법이라도 있어서 모두가 의무적으로 1년에 한 번씩 거주지를 옮기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가족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면 자동적으로 다음에는 어디로 이사 가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현재 머무는 집, 도시, 주변 사람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고 1년 뒤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는 것이라는 사실만이 나에게 영원하다고 느껴졌다. 이사는 내 삶의 당연한 일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물론 현재 시점에서는 이것이 모두 틀린 사실이라는 것을 안다. 나와 같은 또래인데 태어날 때부터 한 지역에서만 쭉 있었다는 그 지역 '토박이'들을 보고, 내가 다닌 이사 횟수에 대해 이야기하면 신기해하는 표정을 짓는 반 친구들의 표정을 보며, 정부에서 만든 '이사 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서히 배웠기 때문이다.
TCK로서 나의 인생은 어쩌면 '이사'로 정의될 수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9개의 학교를 거쳐갔고, 대학생 때는 한국에 본가가 없어 7번의 이사 끝에서야 졸업을 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에는 8번의 이사를 다녔다. 최소한 24번의 이사를 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 형제자매들도 똑같이 이사를 이렇게 많이 다녔다면 그것은 아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는 정해진 팔자, 역마살이라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유다.)
이사는 전생의 업보라는 말이 있다. 이삿짐들은 나의 삶을 영위시키기 위해 필요한 짐들인 동시에 나를 짓밟기도 한다. 이사라는 것은 정말 가혹하게 무거웠고, 종교적인 의식이었고, 무자비하게 나를 벌 내렸다.
그렇다면 24번이 넘는 이사를 통해 사람은 무엇을 배울까?
매번 다닌 이사는 '시간은 어차피 가고, 이곳을 떠나고 싶다면 나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라는 리마인더가 되어주었다. 내가 공항, 기차역과 같은 장소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의 티켓으로 내 거주지가 완벽히 바뀔 수 있는 곳, 변하고 싶어 하고 앞으로 많은 것들이 변할 사람들이 모인 곳, 그 많은 타인들이 잠시 운명이 겹쳐 다 같이 모여 있는 곳, 그 사람들을 옮겨 나를 비행기와 기차들이 모여 있는 곳, 이 모든 것들을 상기시켜 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항에만 가면 벅차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훌렁 떠나고 다시 태어나고만 싶은 기분이 든다. 아주 잠시라도 일상의 무게가 잠시 들어진 기분이 든다. 새삼 이 세상은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하지만 이사를 다니며 정신적, 육체적 노화가 더 빨리 온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TCK들은 자주 다니는 이사와 이별 때문에 일반인에 비해 우울증에 취약하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것들은 많은데 이사를 통해 더 많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어릴 때 내가 생각했던 정부에서 지정한 '이사 법' 같은 것은 없었지만 이와 조금은 비슷한 법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바로 헌법에 규제된 거주-이전의 자유다. 우리는 모두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해 국내외로 거주지의 이전 대한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현재 본인의 상황이 불만족스럽다면, 행복하지 않다면 이 글이 우리 모두 언제든지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리마인더가 되었으면 한다. 당신은 그럴 자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