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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비 Nov 20. 2020

새벽 한 시 십오분, 700번 버스.

망상 노트.

 정류장에서 한 차선 멀어진 자리에 버스가 선다. 무슨 문제가 있나?? 나를 포함해 버스를 기다리던 세 명의 남자가 멈칫한다. 탑승 출입구가 열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중년의 버스 기사는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줍는다. 아, 본인 전화기를 놓쳤구나. 아이폰을 쓰다니...


 앞선 두 남자가 먼저 버스에 오르고 느긋하게 뒤를 따른다. 먼저 내린 누군가가 먹을 걸 게워냈는지 시큼한 냄새가 버스 안에 가득하다. 혹시나 모를 지뢰밭을 피하려 바닥을 빠르게 훑어보지만, 딱히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그리고 진행 방향의 왼편, 앞에서 두 번째 복도 좌석에 하늘색 니트와 하얀 롱스커트, 노란색 핸드백을 멘 여자가 장발을 헝크리고 기절해있다. 잠깐 죽은 건가? 하고 생각했다. 


 버스의 허리 부분에 자리를 잡으러 들어간다. 죽어있는 여자 뒤로 내 앞에서 버스에 오른 남자가 앉았다. 조심스레 지나간다는 것이 들고 있던 우산으로 남자를 칠 뻔했다. 나쁘지 않은 순발력으로 빠르게 사과했다. 다만 남자의 표정이 필요 이상으로 긴장한 듯 보였다. 


 남자의 위치에서 두 칸을 건너뛰고 자리를 잡으려는데 노파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향한다. 살짝 넘어져도 어딘가 부러질 법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노파에게 시선을 붙인다.


 "아저씨, 이거 서울역 가요??"


 나는 노파의 물음에 얼어붙었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 버스는 인천 부개역을 종점으로 여의도에서 회차하는 노선의 버스다. 막차 이후의 귀가 수단을 찾다가 나도 최근에 알아낸 낯선 버스지만, 서울역은 가당치도 않다. 그나마 내가 버스에 오른 여의도 부근이 서울역에서 가장 가깝다.


 다행히 버스 기사가 인정이 있는 편이다. 아니 사실은 이 시간의 누구라도 멍한 느낌일 듯하다. 짜증을 낼 기운도 없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기사는 노파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차분하게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린다. 그 와중에 노파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노란색 상자의 덴탈 마스크 박스를 두고 내린다. 나와 함께 버스에 오른 또 다른, 버스의 후미에 자리를 잡은 남자가 박스를 들어 올리고 그 모습을 본 내가 노파를 부른다. 그나마 연로한 노파의 관절이 하차를 지연시킨 탓에 노파는 자신의 마스크 박스를 챙겨갈 수 있었다.


 노파가 내리고 문이 닫힌다. 버스의 모든 이가 노파를 걱정한다는 듯, 버스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노파의 뒷모습을 배웅한다. 서울역까지 무사히 갈 수 있겠지??... 노파가 인도에 올라서서 몇 걸음 떼는 순간을 지켜보고서야 버스가 출발한다.


 이제야 버스에 분위기가 잡힌 듯하다. 느긋하게 드라이브에 음악을 덧씌울 요량으로 주마니에서 에어팟을 뒤적이고 있는데...


 "젊은 양반!"

 버스 기사가 다시 정적을 깬다.


 내 앞에 우산을 맞을 뻔했던 남자는 젊지 않다. 노파의 덴탈 마스크를 챙기던 남자는 분명 나보다 젊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다 깬 사람처럼 허둥거리던 나는 젊지도 않고, 양반도 아니었지만 대답을 해버렸다.


 "이것 좀 어떻게 해봐요."


 그 어떤 목적어도 없이 버스 기사는 액정에 불이 들어와 있는 아이폰을 허공에 흔들었다. 멀찍이 보이는 그 모습이 무척 현란하여 마치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휘두르는 듯했다. 그 모습에 압도된 탓인지 나는 다시 허둥지둥 가방과 우산을 챙겨 버스의 앞쪽으로 향했다. 나에게 우산을 맞을 뻔했던 남자와 아직도 죽어있는 여자를 지나쳐 오른편 맨 앞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정면을 응시한 버스 기사님의 손에 들린 아이폰이 마술사의 카드처럼 손에 붙은 듯이 나풀거린다. 대체 이걸 어쩌라는 걸까. 방 안의 모기를 쫓듯 아이폰을 따라 시선을 흔들다가 후면에 붙은 스티커를 본다. 아기자기하게 반짝거리는 모양새가, 아무리 개방적이라도 기사의 취향이라고 짐작하긴 힘들었다. 


 그 순간 뒷덜미를 찌르는 강렬한 시선을 느낀다. 근처에 귀신이 있으면 오한이 든다고 했던가. 화들짝 움츠리며 시선의 방향을 돌아본다. 여태껏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여자가 널브러진 자세로 게슴츠레 눈을 떠 앞을 살피고 있었다. 불과 잠깐 스친 그 시선에서 말하지 못할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이 숨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기사님 그거, 이 분꺼 아니에요?"


 나풀거리는 아이폰을 낚아채 위험을 무릅쓰고 여자에게 내민다. 여자는 침착하게 자신의 자세를 고쳐 잡고,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진다. 그리고 아주 조신한 목소리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며 아이폰을 받아 간다. 보통 이런 순간은 뭔가 알 수 없는 고양감과 자신감이 더해져 흐릿하지만 달콤한 장면을 상상하게 되곤 하는데 그 순간 버스 기사님이 다시 일갈한다.


 "아니 근데, 뭐 하시는 거예요?"


 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한테 하는 소린가?


 "어디 가시냐고요!"


 갑자기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는 듯했다. 버스 기사는 누구에게 말을 하는 걸까?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걸까? 정말 나에게 하는 말인가? 왜 나에게 저런 소릴 하는 거지? 감당할 수 있는 인지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상황에 나는 길을 잃은 들짐승처럼 텅 빈 버스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내 시야에 3일 후 부활한 듯한 예수의 모습으로 일어나는 여자가 보였다. 그녀의 노란 핸드백에는 성수라도 담겨있는 걸까. 그와 동시에 버스는 정류장을 향하고 있었고, 여자는 홍해를 가르듯 차분하지만 묵직한 발걸음으로 버스를 가로질러 뒤로 향했다. 기적이 펼쳐지는 그 현장에 감화된듯한 버스기사는 벨도 누르지 않은 여자를 위해 정류장에 정차해 문을 열어주었다. 


 여자가 내린 후, 버스가 다시 출발할 때까지도 망부석처럼 굳어있던 나는, 눈앞에서 펼쳐진 일련의 사태를 이해하려 머릿속으로 애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 기사님의 한 마디가 모든 걸 정리해주었다.


 "아니 노선을 한 바퀴 돌 때까지 계속 있었다니까."


 그 여자는 어디에서 온 걸까. 어디로 가려했던 걸까. 정말 예수의 재림이었던 걸까. 기왕이면 아이폰을 찾아 준 나에게 로또 번호 하나 알려주고 가지. 


 그제야 버스는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심야의 모습으로 정돈되었다. 나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평소에는 절대 앉지 않았을 출입구 바로 앞자리에 불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방금까지 겪은 초자연적인 경험을 잊지 않으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여기까지가 불과 5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채 글을 다 쓰기 전에 버스는 나를 목적지에 내려주었다. 


 다시금 내가 타고 왔던 버스의 실내를 살핀다. 글을 쓰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지나쳐온 정류장마다 태운 비슷한 사람들을 듬성 실어 나르고 있었다. 냉혹한 세상에 모든 걸 쏟아부은듯한 사람들이 모두 눈을 감고 저마다의 자세로 널브러져 있었다.


 새벽 공기가 스산하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몸을 움츠린다. 차 한 대 없는 도로지만 빨간불엔 절대 길을 건너지 않는다. 안전이나 도덕적 이유보단, 그래야만 무단 횡단하는 누군가에게 거침없이 욕지거리를 던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찬 공기를 버티며 묵묵히 파란불을 기다렸다. 


 집까지는 이 십여 분을 더 걸어야 했다. 버스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던 에어팟을 귀에 꽂고 음악을 틀었다. 짧은 횡단보도 몇 개를 건너 가로수를 따라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다. 버스 안에서 겪었던 일에 대한 여운과 귓가를 메운 비트가 붕 뜬 기분을 만들어준다. 그 순간 무언가 발에 미끈하고 밟힌다. 


 버스에서 피했다고 생각한 지뢰가 인도에 깔려있었다. 도로 옆 인적 없는 밤길에서 메아리가 울릴 만큼 쌍욕을 내질렀다. 이미 두 시가 넘은 새벽. 집까지 불과 오 분도 남지 않은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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