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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비 Oct 30. 2020

소설 속 한 문장.

소설이라 해도 될까?

 얼마나 이러고 있었던 걸까? 늘어진 그림자 머리가 물가에 잠긴다. 소나기라도 한바탕 맞은 것처럼, 땀으로 범벅이 된 티셔츠를 고친다. 손끝이 아린다. 어깨가 뻐근해서 그냥 들기만 해도 저릿하고 통증이 온다. 지나가는 사람이 봤으면 야구 선수라고 생각했을까? 그러기엔 내 투구 폼이 너무 엉망이다. 대체 저 바위는 어떻게 물가 한가운데 잠기게 된 걸까. 하필이면 끄트머리만 물 위로 나와 있게 된 걸까. 가벼운 산책길에, 빼꼼 나와 있는 바위의 머리가 내 눈에 띈 걸까. 왜 저걸 맞춰보겠다며 종일 돌을 던지고 있는 걸까. 우연히 한 번이라도 맞아주면 좋으련만, 우직하게 던지는 족족 잔잔한 수면 위에 동심원만 그렸다. 한 번만 닿아주길 바랐다. 경쾌하게 ‘딱’ 소리를 내며, 내가 던진 돌이 저기에 닿기를 진심으로 간절하게 바랐다. 가장 손에 붙는 돌을 고르고 골라, 9회 말 2사 만루의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의 마음으로, 돌을 던졌다.      

 ‘그만해야겠다.’     


 땀으로 흥건한 옷을 벗기도 전에 태수는 그녀의 번호를 지웠다. 차라리, 마지막 돌을 던지지 말걸. 돌에 베였는지, 손톱 끝에 하얗게 묻은 돌가루에 핏방울이 엉겨있다.     


#     


 “내가 지금 거기로 갈까아?”     


 자정은 이미 지났고, 어쨌든 이 시간에 태수가 깨어있을 거라는 걸 윤아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태수의 답을 듣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일이 좀 있어서 오늘은 안될 것 같아. 다음 주에 내가 거기로 갈게.”

 “아이- 지금 보면 안 돼? 응??”     


 윤아는 태수의 갈등을 알았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리라는 것도...     


 “... 하아.. 그럼 XX 동으로 와. 조심하고.”

 “알겠어어!”     


#     


 벌써 세 병째다. 태수가 분위기나 맞추려 겨우 넉 잔을 마실 동안, 윤아는 테이블 한쪽에 병을 쌓아두었다. 이미 눈에 힘을 주고 태수를 노려보는 특유의 표정이 만취한 상태였음을 증명했지만, 고집스레 윤아는 새 소주병을 뜯었다.      


 "나 이혼했어!!"

 "뭐?"     


 언제나 이런 식이다. 윤아는 일에 있어선 빈틈없이 철저했지만, 일상이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당황스러울 만큼 갑작스럽고 솔직했다. 술이 들어가면 더더욱. 몇 개월 만에 만난 자리에서 태수는 윤아의 주사를 잠시 잊고 있던 것을 후회했다. 아니, 사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윤아의 혀가 꼬일수록 태수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아니 왜? 언제?"

 "갈라선 지는 꽤 됐는데~ 도장까지 확실히 찍은 건 한 이 주?? 이 씨발놈이 뺨을 치잖아!!!"     


 남의 가정사를 듣는 건 절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윤아의 성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는 놈은 개자식이다. 생각은 그랬지만 딱히 동조하거나 위로할 말이 떠오르진 않았다.      


 "... 괜찮아?"

 "뭐어... 우리 엄마한텐 미안한데... 난 괜찮아!! 개새끼! 속이 다 후련하다아!!"     


 안 그래도 개방적인 윤아 성격에, 술이 오르면 목청도 커졌다. 이제는 정말 마무리해야 할 때다. 새 소주가 채 반도 비워지기 전에 윤아를 어르고 달래 겨우 자리를 정리했다. 이미 윤아는 자신의 의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였고, 빌어먹을 택시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새삼스레, 태수는 서울에 모텔이 참 많다고 느꼈다.      


#     


 “사실... 이러고 싶지 않았어."     


 나란히 누워서 태수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몰랐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럼 왜 그러는데?"     


 태수는 자신에게 조금씩 밀착되는 윤아의 눈을 피해 모텔방의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 등의 장식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묘한 무늬를 그렸다. 최면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널... 사랑할 수 없어. 그래서 너와 자고 싶지 않아."

 "꼭 사랑할 필요가 있어? 나는 차라리 그냥 섹스만 하는 게 좋은데?”     


 그 말이 태수에게 용기를 준 걸까? 아니면 죄책감을 덜어준 걸까?     


 잠시 눈을 맞추던 태수와 윤아는 서로의 입술을 물었다. 딱히 배운 적은 없었지만, 이런 상황의 태수는 나름 섬세한 편이었다. 어느새 윤아의 상의를 열고 부드럽게 가슴을 쥐었다. 뜨거운 윤아의 입김과 알코올의 잔향이 태수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윤아의 굴곡에 어긋나지 않게, 옅은 물줄기가 몸에 흐르는 것처럼 태수는 부드럽게 손끝을 움직였다. 새로운 전자제품의 기능을 확인하듯 태수는 빈틈없이, 공을 들여 윤아를 확인했고, 윤아는 굳이 참을 필요 없는 교성으로 태수에게 답을 주었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수록 숨소리는 거칠어졌고 뽀송하게 말라 있던 침대 시트는 젖어들었다. 기괴한 동작이 쉼 없이 이어지다 일순간 멈추고, 한동안 태수는 윤아의 몸을 덮고 숨을 골랐다.      


 “사랑해-!”     


 말끝이 조금 꼬인 채로 윤아가 태수의 귀에 속삭였다. 태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윤아는 양손으로 태수의 얼굴을 당겨 자신과 나란히 마주 보게 했다. 아랫입술을 한껏 내밀고 눈을 추켜올린 윤아의 얼굴을 보며 태수는 겨우 입가의 미소를 보여주곤 가볍게 입을 맞췄다. 윤아의 눈은 아직 술에서 다 깨지 못했다.      


#     


 "... 우리 그냥... 만날까?"

 "무슨 소리야 지금 만나고 있는데~"     

 

 윤아는 태수에게 몸을 감으며 아랫배 쪽을 더듬었다.      


 "... 아니야. 됐어."     

 

 태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윤아는 더 캐묻지 않았다. 태수도 더 이상의 말을 붙이지 않았다.      


 “담배 좀 안 피면 안 돼? 그러지 말고 한 번 더 하자- “

 “조금만 쉬자. 얼른 피고 올게.”     


 모텔의 복도는 이런 분위기여야 한다는 게 법으로 정해진 듯이 음침한 조명이 공간을 채웠다. 허공에 그려지는 연기를 멍하게 보느라 몇 번 입에 대지 않은 담배가 반은 타들어 갔다. 태수는 생각했다. ― 슬픈 섹스는 그녀가 술에 취하지 않고, 둘 다 서로를 바라고, 어쨌거나 상관없이 그녀를 늘 사랑할 것임을, 그녀가 어쨌거나 상관없이 나를 늘 사랑할 것임과 마찬가지로 사랑할 것임을 알지만, 어쩌면 우리 둘 다 이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반드시 행복에 닿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 ―라는 것을. 나는 정말 윤아를 사랑했던 걸까? 윤아는 조금이라도 나를 사랑했을까? 술에 취한 윤아의 말이 정말이었을까? 행복은 고사하고, 서로 사랑을 확인하지도 못했으니 슬프기보단 비참한 섹스였다. 그리고 이 밤이 지나면, 윤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갈 것을 태수는 알았다.     

 

 '그만해야겠다.'     


 ― 모든 게 망하고 잘못되어버리면, 윤아는 아마 극복을 하겠지만 태수 자신은 못 할 거라는  ―.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너무 명쾌한 진리가 태수의 머리에 남았다. 재떨이에 담배를 짓이기는데 끈적한 윤아의 흔적이 손에 남아있었다. 딱히 샤워를 했던 게 아니었으니... 태수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모텔을 떠났다.      


#     


 그 마지막 돌을 던지지 말걸, 그랬다면 윤아에게 한 번 더 던질 진심은 남아있지 않았을까? 가끔 외로움에 사무쳐 무엇이라도 붙잡고 싶을 땐 윤아 생각이 날 것 같았다. 아마, 윤아는 또 아무렇지 않게 태수를 안을 것이다. 윤아는 몸을 주겠지만, 태수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다. 아무리 간절하게 던져도 닿지 않는 빈약한 진실과 짙은 자괴만이 남을 뿐이었다. 아직 손에 쥐었던 윤아의 가슴이 느껴지는 것 같아 태수는 괜히 바지 위로 쓱- 손을 문질렀다.


*   안에 담긴 문장은 줄리언 반스의 소설 ‘연애의 기억’에 있는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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