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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19. 2024

첫 출항, 말레이시아

Departure to Malay(Port klang)

 누구나 특별한 사건의 처음을 인상 깊게 기억하듯이, 나 역시 첫 출항을 나갔던 순간을 기억한다. 선박기관사가 되기 위해서 STCW국제협약(선원의 자격증명을 기준한 협약)에 따라 필요한 해기사면허를 취득했고, 국제항해를 위한 영어공부를 하고, 처음 실습기관사로 승선할 선사와 계약하고 결국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2017년 1월 11일에 항구에 입항한 내가 올라탈 QUEEN호를 봤을 때,


 마음이 쿵-하고 맞은 것처럼 긴장되고 걱정됐다.

'뭐가 저렇게 커?' '밧줄을 들고 있는 선원들도 무섭다' '소리 지르는 사람들은 뭐야'   


 종일 안내해 준 에이전트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저 큰 배를 고작 스무 명이서 움직여요. 멋지죠?" 맞다. 긴장은 그렇다 치고 그들이 멋있었다. 스즈끼를 한껏 걷어올리고 묻은 기름은 아랑곳 않고 환영한다고 인사해 오는 그들에게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면서 외국인 선원 동료들과 주먹인사를 부딪히며 안내받은 내 방으로 향했다.


 깔끔한 침대에 옷장과 세면대, 책상이 있는 방이었는데 침대 위에 준비된 오렌지색 작업용 스즈끼와 평상복이 놓여있었고 몇 차례 용모를 확인한 뒤 선장님 방으로 올라갔다. 선장은 바다 위에서, 선박 위에서 절대적이다. 그래서 방도 가장 많고, 크고 가장 하늘과 가까이 있다. 실습기관사는 많이 대해봤다는 듯이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면서 담배를 한 대 태우시며 뻔한 조언과 다짐이 왔다 갔다 하는 잠깐의 대화 속에서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며 해가 졌다.


 내일 출항한다는 말에 그제야 궁금해져 선배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었고 그게 말레이시아였다. 10일간의 항해가 예정되어 있었고 밤새 우리 배 화물칸에는 말레이시아로 가져갈 한국산 포클레인이 차곡차곡 쌓이고 항해사 선배들은 조타실에서 내일부터 사용할 해도들들 펼쳐놓고 컴퍼스와 자로 끄적끄적 항로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포트클랑 항구, 여기가 내 첫 항해 목적지구나. 신기한데.



2017.JAN.12nd.0800 / DEPARTURE TO MALAYSIA

출항날 업무일지를 작성했을 때 첫 문구다. 날짜와 시간, 그리고 목적지


 07시부터 요란하게 출항준비가 시작됐다. 포클레인이 몇 겹으로 가득 실린 화물칸의 문이 닫히고 언제든 떠날 수 있게 배를 묶어뒀던 거대한 밧줄을 앞뒤로 하나씩만 남겨놓는 (single) 상태가 되었다. 5미터 높이의 주엔진이 달궈지고서 출항을 알리는 에어혼 소리가 뿌우-하고 귀가 떨어지게 울렸다.


 배가 점점 육지와 멀어지며 작아져갈 때 다들 마지막 순간까지(인터넷 신호가 잡힐 때까지)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혼잡한 항구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뱃머리를 말레이로 향했다. 항해 중에 들었던 인상 깊은 기억은 '진짜 무섭다'였다. 다른 게 아니고 24시간 앞으로 나아가는 배 갑판에서 시커먼 바닷물과 내가 서있는 바닥은 고작 난간 하나가 구분 지을 뿐이라는 게. 까딱 발 잘못 디디면 그대로 저세상행이라는 게 그랬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선배들이 슬리퍼 못 신게 한 건가.


2017.JAN.23rd.1200 / ARRIVAL AT PORTKLANG FROM KOREA

입항날 업무일지 첫 글. 항구에 도착하면 우리 배가 어디서 왔는지 적어야 한다.


 아직은 어색한 조리장의 식사와 기본 업무부터 배우면서 첫 10일의 항해가 끝나고 도착한 포트클랑.

오는 길에 오른편에 중국, 왼쪽에 타이완섬을 끼는 대만해협도 지나오며 지구본을 돌리다 보면 70프로를 꽉 채우고 있는 파란색 어느 지점에 콕 찍히는 곳에 내가 있는 것을 실감하면서.


  난생처음 가족들 친구들과 10일 동안 연락이 끊기며 도착한 곳에서 나는 열흘만에 흔들리지 않는 땅을 밟았고 주구장창 수평선과 하늘만 보다가 숲이나 나무같은 초록색감의 물체들을 봤다.


 말레이시아라는 곳이 내게 특별한 국가가 될 줄은 몰랐다. 첫 항해라 외롭고 힘들고 자꾸 어디 부딪히고 소화도 안되고 했었는데 나한테 소중한 승선경험 중 처음 시작이라고 기억해보니 그런 것 보다는 약간은 아름답게 포장되어 기억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기 별거 없었다. 여느 동남아처럼 무지 덥고 외국인들 많고 식료품점이 신기하고 그런 정도.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10일의 과정과 갈라지는 파도모습, 처음 승선이라 모든 게 서툴렀던 내 모습과 마음들이 전부 덩어리로 기억난다.


 그렇게 내 첫 출항은 한국산 중장비를 먼 나라에 가져다주는 일에 일조하며 끝났고 다음 업무 일지는 방글라데시의 항구로 목적지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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