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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살 Feb 19. 2022

폭탄 머리 해본 적 있나요?

자유인이 되기 위한 머리 변천사


  얼마 전 신사에 갔을 때 각종 성형외과 광고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던 기억이 난다. 외형을 가꾸는 건 그 누구도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난 왜 이렇게 성형이 싫을까.

  꾸미는 일에 대한 낭만은 간직하고 있다. 나는 내 스타일의 옷을 몸에 걸치고, 매 계절 미용실에 가서 새 머리를 하는 게 좋다.

  하지만 부자연스러움을 거부하고 싶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럼 넌 자연인이니?

  아니!!

  나는 부자연스럽다. 태생적인 부자연스러움을 스스로 어쩌지 못해서 성형이 싫다고 말하며 내 부자연스러움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다.


  나는 순리를, 자연을 거스르기 위해 애써온 평범한 사람 중 하나다.


  나는 중고등 학생 내내 똥머리를 고수했다. 내 머리카락을 숨기고 싶어서였다. 곱슬머리에 머리숱도 많았던 나는 자연스러운 내 머리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머리는 긴 생머리.


  나는 꾸준히 미용실에서 내 곱슬머리를 긴 생머리로 만들기 위한 매직 시술을 받았다. 한 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가서 긴 생머리의 숱을 쳤다. 석 달에 한 번은 뿌리 매직을 하여 윤기 나는 생머리를 유지했다.


  나는 긴 생머리가 어울리는 여자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스쿼트와 윗몸일이키기도 했다.




  내가 철마다 헤어스타일을 바꿨던 건 자연스러움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건 부자연스러워!" 생각되는 순간 새로운 머리스타일에 도전했다. 자본과 시간과 각종 독한 성분의 약물을 사용해서.


  부자연스러움을 활용해 자연스러움을 찾는 여정이라니. 이토록 모순적일 수 없다.


  어쩌겠는가. 나는 태생적 부자연인인 .



  성인이 되었다.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극에 달했다. 새내기라면 능히 그러하듯.

  새내기 시절 내 머리는 그냥 단발머리였다.

  '그냥 단발머리'


  나에겐 그냥 단발머리가  어려운 선택지였다.  달에   매직은 기본, 매일 아침, 고데기로 열심히 머리를 쭉쭉 펴줘야 깔끔하고 단정하게 유지됐다.


 그 무렵 도전적이고, 통통 튀는 스타일의 옷을 주로 입었다. 동기들은 매일 아침 나에게 '최유진스럽다'는 칭찬을 해주었다.

  나는 칭찬에 힘입어 점점  도전적인 스타일을 연구했다. 빈티지  치마와 힙한 나염 가디건을 매치해 보기도 했고, 나풀나풀한  미니 원피스에 둔탁한 로퍼를 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최유진스럽다'기보다는 각종 쇼핑몰 코디를 적절하게 믹스매치한 스타일이었다.

  나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처럼 굴었지만 실은 그냥 예뻐보이고 싶었다. 나는 옷에 맞는 몸을 만들기 위해 살을 빼고, 화장했다.


  당시 나는 살을 너무 많이 빼서 폭식증에 걸렸다. 종일 굶고, 밤이 되면 방 안에 숨어 앉아 초코 과자 열 개를 십 분 만에 먹어 치웠다. 그렇게 먹는 내가 끔찍했다.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다. 충동을 어쩌지 못할 만큼 비현실적으로 굶어서 그런 거다.

  남들 앞에서는 잘 먹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잘 먹지만 늘씬한 아이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예쁜 여자 아이이고 싶었다.


  어느 날, 이건 '최유진스럽'지 않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건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꾸밈은 미묘하게 나와 어긋나고 있었다. 이상했다. 이런 게 예쁜 모습이라는 게 이상했고, 매일 아침 두 시간을 꾸밈에 쓰는 내가 이상했다. 예쁘기 위해 굶는 내가, 병에 걸려 신음하는 내가 이상했다.


  그날 곧바로 미용실에 가서 아프로펌 머리를 했다. 흑인 머리 질감을 내는 파마였다.


  이상한 해방감을 느꼈다.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50 남자 손님은 "여자애가 차분한 머리를 해야 쓴다" 말했다. 아저씨의 말을 듣고,  해방감의 정체를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세간의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아프로펌은 나에게  통로를 제공해주었다.

  2주 뒤 내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폭탄' 맞은 듯 요란하게 부풀었고, 빗질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엉켰다. 머리를 감아도 두피까지 깨끗해진 느낌이 들지 않아서 답답했다.


  사람들은 내 머리 스타일을 보고 종종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 스타일은 '독특함'과 '이상함'의 경계에 있었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아프로펌 머리를 했을 때 나는 타이밍이 좋게도  아프로펌과 아주 잘 어울리는 동네, 이태원에서 살았다. 나는 내가 이태원과 어울리는 사람이길 바랐다. 자유분방하고,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사는 사람. 용감하게 머리도 볶았으니 하루아침에 방탕하게 놀 수 있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규칙적인 루틴 있는 삶이 좋다.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 좋다. 방탕하게 노는 게 싫다. 나는 내가 가둔 틀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다. 그 틀을 깨부수기 위해 애써보았지만 나에게 썩 유쾌한 감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머리 스타일은 참 멋지지만 나와 어울리지  않는구나.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아프로펌 스타일을 그만두었다.


  매직을 했다.


  아프로펌 머리를 경험한 나는 단순한 형태의 머리 스타일이  금방 지겨워지고 말았다. 그래서 사정없이 앞머리를 잘랐다.


  어느 날 새벽,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가위를 들고, 거울 앞에서 앞머리를 잘랐다. 잠이 오지 않아서였다. 혼자 살게 된 뒤로 나는 통 잠을 못 잤고,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조금씩 머리를 자르곤 했다.


  그날은 뒷머리까지 손을 댔다. 처음에는 층을 내기 위해 조금만 잘라보겠다 다짐했다. 머리는 왼쪽과 오른쪽의 길이가 맞지 않아 비대칭이 되었다.


  나는 계속 계속 머리를 잘랐다. 매일 매일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의 나는 반삭 길이의 아주 짧은 머리 스타일로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짧은 머리인 내 사진은 많지 않다. 그때의 얼굴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처음 머리를 잘랐을 때 내 얼굴의 단점이라 여겼던 지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예쁘게 꾸미고 싶은 욕망이 점점 사라졌다. 사람도 별로 만나지 않았다. 나는 끝없이 슬퍼졌다.


  그때 처음 느꼈다. 지금까지 머리 스타일을 바꿔온 건 나를 깨부숴온 과정이었구나. 또 다른 내가 자꾸만 태어났구나. 나의 충동이, '미'에 대한 나의 무의식적 거부가 나를 탐구하게 했구나. 그래서 괴로웠던 모양이라고.


  머리를 자르고 한 달 쯤 지나서였을까, 나는 치마를 입고, 바깥에 나갔다. 모자를 쓰지도 않고, 예쁘게 꾸미고 바깥에 나가는 건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냥 무작정 바깥으로 나갔다. 용기를 내고 싶은 날이었다. 이제 그만 나를 좀 좋아해 주고 싶은 날이었다.

 

  사람들은 머리가 아주 짧고, 키도 작은 여자아이가  원피스를 입고 있어도,  귀걸이를 하고, 하이힐을 신고 있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상하게 봤겠지. 하지만 나는 그들을 진정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냥 좋아하는 걸 계속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꽃 귀걸이를 걸고, 요란 법석한 옷들을 입고, 종종 화장하고, 대부분 화장을 안 한 채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기로 했다.


  비로소 최유진스러워졌다. 비로소 자연스러워졌다.



  머리는 점점 길었다. 짧은 머리는 잠깐 단정했다가 금방 더러워진다. 그럼   미용실에 가야 했고,  달에   미용실에 가야 했다. 나는 돈은 아끼고 싶었고, 시간도 아끼고 싶었다.  그래서 머리를 기르기로 했다.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며칠 전 미용실에 갔다. 파마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길었기 때문이다. 나는 볼륨 매직을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미용실 이모는 말했다.


  "네 곱슬은 보물이야."


  이모는 매직을 하지 말라고 했다. 내 곱슬을 이용해 남들은 못 하는 스타일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것  좋다고 말했다.

 이렇게 머리를 기르다 나는 새내기 시절의 단정한 단발머리로 돌아가게  것이다.  시절의 나에게는 부자연스러웠던  머리가 요즘의 나에게는 자연스럽다는  이상했다. 같은 머리로 같은 웃음을 짓는 내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신기하다.


  나는 이렇게 여러 머리를 품고, 한 시절을 통과해 이런 내가 되었다.


  이렇게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자유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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