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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살 Nov 24. 2021

퍼즐조각

나의 사랑스런 아프로펌 헤어스타일4


 퍼즐놀이


               


  글   최살살



  0

어떤 한 시절은 통째로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내 육체와 정신을 이끈 건 나의 사랑들. 나의 사랑들은 내 한 시절을 빼앗아갔다. 덕분에 잃어도 살 수 있었다.

한 시절의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사랑이란 단어를 수도 없이 읊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내 몸을 다 내어줄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는 힘의 근원은


  1

수혜

수혜

수혜가 내게 알려준 것을 어디에든 나누지 않고 견딜 수 없었다.


  2

수혜는 둔한 사람이다. 재철은 예민한 사람이고.

둘은 만나지 정확히 백 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수혜는 재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알았다면 결코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 말했다.


“백 일 만에 결혼한 건 좀 부끄러운 일이지. 그래도 백일동안 하루도 안 빼놓고 만났어.”


재철은 예민한 사람이다. 재철은 예민한 사람이라 재철의 부모를 견디지 못한다. 재철은 예민한 사람이라 세상을 견디지 못한다. 수혜는 재철의 세상을 함께 짊어진다.

재철은 아주 가끔, 신이 난 상태로, 수혜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이 무섭다. 재철이 십 년 전 술에 취한 채 수혜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너랑 결혼 안 하면 자살한다잖아. 근데 내가 어떻게 너랑 결혼을 안 해.”


  3

수혜는 둔한 사람이다. 그리고 수혜는 재철을 사랑하였다.

연례행사처럼 가족 외식을 하러 나갈 때 수혜와 재철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뒤에서 물끄러미 본다. 수혜는 수시로 재철의 기분을 살핀다.

덥지?

배고파?

짜장면이 괜찮아?

응?

응?

중국집에 들어가서 수혜는 재철 앞으로 가장 먼저 물을 따라주고, 접시와 수저를 놓아준다.

재철은 수혜의 품에 안겨 있어서 가시를 뽑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수혜는 그 마음으로 우리 모두를 보살폈으니, 그러니 나는 그저 두고 본다.


  4

수혜의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괴롭혔던 악성 곱슬머리는 나를 출산한 뒤 자취를 감췄다.

수혜의 머리카락은 나에게 옮아왔다.

그러니까 이것은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

나는 우리의 연결성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머리카락은 내 형상의 적나라한 반영.


  5

새벽 3시, 가위에 눌렸다는 애인에게 간다.

끝도 없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애인의 꿈에는 내가 나왔다. 그의 꿈의 시작에 내 손이 있다. 내 손은 부드럽고, 따뜻하다고 애인은 여러 번 말해주었다. 내 부드러운 손을 잡으려는 찰나, 그 손이 이물스럽고 공포스러운 낯선 손으로 변해 애인을 덮쳤다.

그러니까 나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너에게 가장 적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되도 않는 약속을 하기 위해.


한 시절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고, 내 육체와 정신을 이끈 건 나의 사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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