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살 Feb 19. 2022

사랑하는 삶의 찌꺼기에 불과하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를 읽고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크리스티앙 보뱅은 낯선 에세이를 내놓았다. 먼저 화자는 그 자신인지 아닌지 모호하다.  종종 그가 관찰한 인물, 상상한 인물들이 화자 자리를 자처한다. 그들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흘러 가기도 한다. 화자는 '당신'을 부른다. 그 당신은 책을 읽는 독자일지도, 보뱅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해석이 분분한 본 책을 유심히 읽다보면 보뱅이 책을 통해 두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는 것이 보인다. 첫째는 독서, 그리고 둘째는 사랑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 지점에 머무르며 삶이 다해가는 순간까지 책을 읽는다.
고독을 발견했던, 그러니까 언어들의 고독과 영혼들의 고독을 발견했던 첫 경험의 언저리에 머문다.
그들은 황홀감에 취해 세상에서 물러나 이 고독을 향해 간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고독의 골은 깊어진다. 
더 많이 읽을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 

서론, 15p


  보뱅은 '독자'에 대해 말한다. 유년기를 벗어나 읽기 시작하는 이들, 읽을 수밖에 없는 이들, 그들의 삶을 긍정한다. <아무도 원치 않았던 이야기>에는 글을 쓰는 여자가 등장한다. 릴케의 시를 읽게 된 그녀는 참된 말에 대한 사랑(26)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릴케에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녀는 5년 전 출판사에 자신의 글을 보내려고 노력해왔고, 5년이 흐른 뒤에야 익명의 화자에게 그녀의 글이 당도한다. 그리고 화자는 독자로서 기쁨을 누린다. 한 명의 독자였던 그녀가 썼던, 독자의 글을 읽고, 그는 또 다시 독자의 글을 이 책에 올린다. 그리고 내가 쓰게 된 이 글도 독자의 글이다. 연쇄적인 독서의 힘과 독자의 발생 앞에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위대한 시인이란 대체 뭘까.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정말이지 무의미한 말이다.
자신의 글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의 위대함은 오로지 날 것인 삶에 대한 온전한 복종에서 오기 때문이다.
적확한 말을 찾느라 수많은 밤을 송두리째 바치는 연인들이 서로에게 쏟고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쏟는 조심스러운 염려를 내면에 키워갈 따름이다.
예술은, 예술의 진수는 사랑하는 삶의 찌꺼기게 불과하며,
사랑하는 삶만이 유일한 삶이다. 위대하다든지 시인이라든지 문학이라는 것도 무의미한 말이다. 

아무도 원치 않았던 이야기, 28p


  보뱅은 독서를 말하는 동시에 삶 그 자체에 대해 말한다. 


  예술의 진수는 사랑하는 삶의 찌꺼기게 불과하다,

  는 명문장을 남기며. 


  <망가지기 쉬운 천사들>에서 화자는 책 한 권을 읽는다. 라신의 희곡집 <이피게네이아>. 그는 책을 읽으며 체험적 독서를 한다. 극 속 인물이 되어, 책 너머의 심연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리고 화자는 책 속에서 빠져나와 백화점에 간다. 그리고 한 부부를 마주한다. 그리고 책 속 몽유병에 걸린 부부(사랑이 결핍된 형태)를 떠올린다. 화자는 동시에 그들의 삶에 엄청난 호기심을 느낀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며 부부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한참 생각하다 웃음이 터진다. 사랑과 세상을 품을 수 없는 영원한 무능을 비웃으며.


  그는 독서에서 이어지는 삶의 모양을 보여준다. 그리고 독서로부터도, 삶으로부터도 무엇도 얻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숨겨진 삶> 속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는 한 여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책을 읽는 건, 보기 위해서예요. 
삶의 반짝이는 고통을, 현실에서보다 더 잘 보기 위해서예요.
위안을 받고자 책을 읽는 게 아닙니다. 난 위로받을 길 없는 사람이니까.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에요.
이해해야 할 건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책을 읽는 건 내 삶 속에서 괴로워하는 생명을 보기 위해섭니다.
그저 보려는 겁니다.

숨겨진 삶, 88p


  하지만 보뱅은 독자를, 독서를 끝까지 긍정한다. 독서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당신이 사랑하는 책들은 당신이 먹는 빵과 뒤섞인다. 그 책들은 스쳐 지나간 얼굴이나 맑고 투명한 가을 하루처럼 삶의 온갖 아름다움과 운명을 같이한다.
그것들은 의식적으로 통하는 문을 알지 못한 채 몽상의 창을 통해 당신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당신 자신은 결코 가지 않는 깊숙한 외딴방까지 교묘히 스며든다.
몇 시간이고 책을 읽다 보면 영혼에 살며시 물이 든다.
당신 안에 존재하는 비가시적인 것에 작은 변화가 닥친다.
당신의 목소리와 눈빛이, 걸음걸이와 행동거지가 달라진다. 

약속의 땅, 77p


  동시에 말한다. 독서는 삶에 기대어 있다고, 그리고 삶은 사랑에 기대어 있다고. 독서가 삶에 스며들듯이, 사랑이 삶에 스며드는 모양을 보여준다. 독서와 사랑은 끝없이 닮아간다. 


  <작은 파티 드레스>는 화자의 유년기를 먼저 말한다. 유년기의 우리는 '무'다. 그리고 유년기가 끝나면 기다림이 시작된다. 유년기의 우리를 기다리게 하는 건 작은 파티 드레스, 한낮의 사랑이다. 고독뿐이었던 그의 삶에 한 여인이 들어온다. 둘은 오래 전부터 예감했듯 사랑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녀는 간다. 그녀는 그를 배신한 것이 아니다. 그저 굴곡이 단순한 길을 따라 간 것일 뿐(123)이다. 예정되었던 이별을 그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재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부재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이 무임을 자각한다.
임박한 죽음 앞에서 몸을 떠는 짐승의 막연한 자각이다. 

작은 파티 드레스, 123p


  그녀가 떠난 후 그는 태초의 무로 돌아온다. 그는 무가 아닌 적이 없었다. 다만 무를 자각하지 못했다. 고독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영원한 것은 고독뿐이므로 그는 제자리로 온다. 돌아온 것이 아니라 찾아온 것이다. 


  고독은 태초의 그것보다 생생해져 있다. 


당신이 내 고독의 원인은 아니다. 
고독은 훨씬 앞서 내 안에서 잠자코 있었다. 
당신은, 그것을 깨어나게 한 당신은, 그  고독을 가장 닮은 여자일 뿐.

작은 파티 드레스, 124p


  화자는 사랑 이후 비로소 유년기에서 걸어나온다고 말한다. 고독을 경험한 이후를 죽음이라 말한다. 알을 깨고 나온 뒤에도 사랑을 향한 움직임은 계속된다. 


  또 희고, 작은 파티 드레스 앞에 멈춰선다. 하지만 그는 이제 고독을 아는 채로, 사랑을 아는 채로 불길 속에 뛰어든다. 


  그리고 또다시 죽음을 경험하고, 또 한번 사랑을 모르는 채로 고독을 경험한다. 


  무의미의 향연 속에 보뱅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삶과 사랑이, 그리고 독서가 이토록 닮았음을 보여준다. 결국 고독을 향해 있음을, 누구도 앞서지 않은 채 분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과 독서를 이토록 긍정하는 책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독서와 사랑의 지독한 연결고리 앞에서, 나는 글 뒤에 숨어 날 것인 삶에 온전히 복종하겠노라 다짐할 수밖에는.




매거진의 이전글 혹시 당신도 편식 독서 중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