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DF 모바일 다큐멘터리 '소년, 304, 교신일지'
2012년의 첫 학기, "외계 생명체를 찾아서"라는 강의를 수강했다.
천문학과 우주에 관해서 문외한인 문과에게 매우 버거운 강의였지만
지금까지도 어렴풋이 남아있는 건 그 독특한 감성이다.
타자, 광활한 공간을 바라보며 존재할지도 모르는 타자를 꿈꾸며 기다리는 그 감성은
감히 비웃을 수 없는 것이었고, 비웃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어디 가서 감히 이런 말을 하진 않지만
나도 함께 꿈꾸고 싶었다.
외계 지적 생명체를 다루는 이 수업에서는 칼 세이건, 드레이크 등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에 업적을 남긴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그 과정에서는 우리는 "보이저 메시지", "드레이크 방정식" 등 그들이 남긴 매력적인 발자국을 마주했다.
그중 "아레시보 메시지"라는 것이 있다.
아레시보 메시지는 아레시보 천문대의 전파망원경에서 쏘아 올린 메시지이며, 앞서 말했던
그 위대한 드레이크와 칼 세이건이 참여한 작업이다.
그런데 이 아레시보 메시지의 성격이 언뜻 듣기에는 고약했다.
아레시보 메시지는 그 메시지를 해석할 수 있는 문명에게는 지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대로 말하면, 전파가 닿는 곳에 외계 생명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메시지를 해석할 능력이 안 되면 볼 수가 없다.
누군가 받아보기를 바라며 전파를 쏘아 올리지만 해석할 능력이 안 되는 외계 생명체들은 그 대상에 없다.
오직 그 신호를 해석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외계 지적 생명체 문명만을 향한 메시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와 교신(소통)할 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상징적 의미를 위한 프로젝트였겠지만)
아 그런데, 이게 꼭 외계 생명체와의 이야기만은 아니지 않나.
이 창백한 작은 별, 우리의 행성에서, 나의 행성에서 나도 겪는 이야기다.
나와 다른 존재, 타자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해석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린 다른 존재지만 서로 이해(교신)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 이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체지만 내 신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뿐이다.
우리의 관계는 거기까지다.
그래도 누군가는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며 메시지를 띄운다.
내가 바라보는 여기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당신과 함께 이 풍경을 보고 싶다고, 이곳에 와달라고.
나는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어디 계신가, 당신.
이 광활한 공간에 나를 이해해줄 존재가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무작정 신호를 보낸다.
아, 드레이크 박사도 그래서 물었나.
모두 어디 있지?
아 언제나 별은 응시하는 자들의 권리 같은 것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