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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May 12. 2024

싱가포르의 인상

약 6시간의 비행. 적도와 가까운 남쪽 나라,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지난 4월 중순의 여행이었다.


아침저녁은 그럭저럭 따뜻했지만 낮기온은 35도에 육박했다. 그래서인지 냉방이 쾌적한 실내에도 볼거리들이 다양했다. 여행의 시작인 공항부터 관광지 같았고, 가든스바이더베이에 있는 클라우드포레스트, 플라워돔도 구석구석 예뻤다.

창이공항 Jewel Changi


바깥에서는 고온다습한 공기를 온몸으로 감각했다.

한낮의 햇살은 무서울 정도로 작열했고, 때때로 폭우가 쏟아져 그 열기를 식혔다. 소나기라는 온화한 우리말은 갖다 붙이지 못할 무지막지한 스콜이었다. 폭우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단시간에 땅으로 퍼붓다가 10분 후 땡 하고 멈췄다. 이렇게 일 년 내내 덥고 비가 잦은 곳에 사는 삶은 어떨까. 필리피노인 내 영어 회화 선생님이 단 한 번도 직접 눈雪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내가 싱가포르에 간다고 하자 그는 4월의 코리아는 날씨가 러블리하지 않느냐며, 왜 굳이 그 더운 곳으로 여행을 가는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조금 걷다가 밀크티를 마시고, 또 조금 걷다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수박을 사 먹으며 이국적인 더위에 아들었다.




둘째 날, 열대우림 속 동물원을 걷다가 스콜을 만났다. 얼룩말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작된 엄청난 비에 1분도 안되어 홀딱 젖어버렸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비를 피하기 위해 가까운 원두막 같은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곳은 유리창 너머로 치타를 볼 수 있는 공간이었. 젖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젖었는데도 하나도 춥지 않다. 가 공기의 온도를 조금 낮추자 청량감이 느껴졌다. 쏴아- 시원하게 쏟아져내리는 빗소리가 청각을 가득 채웠다.



그곳에서 20분 넘게 바라보았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와 유리창 너머의 치타들을. 커다란 고양잇과의 동물들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나른하게 졸고 있었다. 이런 비는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치타와 한참을 서로 마주 보았다. 그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쳐다본 누군가의 눈동자였다.



치타와의 아이컨택



마침내 비가 그쳤다. 

원두막에 다닥다닥 모여있던 다인종의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리는 다시 숲길을 걸었다. 회색이던 하늘은 다시 파란색이 되었고 해가 쨍- 나타나서 젖은 옷을 말렸다. 잠깐 시원해졌던 공기 이윽고 데워졌다. 신비로운 날씨였다.


만다이 동물원 Mandai Zoo
코뿔소의 입속은 부드럽고 축축하고 따뜻했다



여행은 결국 사람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낯선 관광객에게 친절을 베풀어주던 다정한 현지인들이 도처에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 어떤 출구로 나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우리에게 다가와 가야 할 방향을 일러줬던 이들,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안타까워하던 우리를 보고 뛰어가서 버스를 잡아준 남자분, 지하철에서 우리 가족이 나란히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해 주고 싱긋 웃던 여자분, 우리의 언어를 인식하고 '안녕하세여~' 라며 한국말로 말을 걸던 사람들(K-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했다). 그곳에서는 대체로 사람을 경계하지 않아도 안전했다. 나도 우리나라를 여행 중인 외국인들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친절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 좋은 건 좋은 걸 불러온다.




마지막날밤, 도시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진 분수쇼를 보았다. 호수 위에서 안개처럼 물이 분사되면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이 bgm으로 깔렸다. 음악을 여기서 들을 줄이야. 어쩐지 마음이 찌르르해지 걸 느끼며 그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장면을 감상했다.



아이들은 킥보드를 타고 공원을 활보했고(캐리어에 넣어서 가져갔다), 어른들은 칠리크랩과 샤오롱바오를 먹으며 행복했다. 덕투어를 하며 수륙양용차를 처음 타봤는데, 육지에서 강으로 돌진할 때는 아이 어른 할 것없이 비명을 질렀다. 차(배?)에 탄 모든 사람이 신났었다. 어 도중에 스콜이 쏟아져서 몹시 다이나믹했다.



예측불가의 상황 역시 수차례 있었다. 마리나베이샌즈몰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옥상전망대는 예약을 못해서 올라가지도 못했다. 우리는 크게 당황했지만, 다음에 싱가포르에 또 와야겠군! 하며 웃었다. 걸음도 여행의 일부니까.


가든스바이더베이 Gardens by the Bay

한국 신용카드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것이 신기하고 편리해서 지하철을 많이도 탔다. 며칠이 지나 우리가 묵었던 호텔 근처 골목이 눈에 익고, 지하철역 이름들이 조금 익숙해졌다. 어느새 돌아갈 날이었다. 여행 늘 그. 더 머물지 못해 슬프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행복하기도 했다.


돌아오니 역시나, 우리나라의 날씨가 러블리하다.


플라워돔 Flower D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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