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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Dec 09. 2024

안전하다는 감각의 부재

12월 3일 이후로 자꾸 나쁜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뭔가에 쫓기거나 뭔가를 도둑 맞거나 누군가에게 배신당했다. 그런 일을 겪느라 자면서도 마음을 졸이고 깨안도한다. (휴, 다행이다 꿈이었어.)

아무래도 요즘 계속 뉴스를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오래전부터 뉴스를 보면 쉽게 우울해진다는 걸 깨닫고 나는 티브이 뉴스 시청을 아예 그만두었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는 아침에 눈을 뜨면 티브이를 켜고 언론사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뉴스특보를 시청한다. 매일매일이 특보인 특수한 나날이다. 밤사이 새로 들어온 소식을 알고 나면 더 기분 나빠질 걸 알지만 모르면 무섭고 불안하기 때문에 그저 지켜본다.



부끄럽지만 나는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정치 관련 뉴스는 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에 일부러 피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도 집회에 참석하지도 않는 내가 하는 유일한 정치활동은 선거에서 투표하는 일이다. (전교조 조합원 회비로 매달 3만 원을 지출하는 것도 정치 행위인지 잘 모르겠다.) 나처럼 무지한 사람이 요 며칠 나라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건 아니지 않나? 이래도 되나? 하는 의문과 충격은 어떻게 이래? 하는 분노와 허탈감으로 이어졌다. 밥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상 속에서 모종의 불안과 무력감이 뱀처럼 내 발에 매달려 따라다닌다.



내가 뉴스를 볼 때 딸들도 옆에서 같이 봤다. 보리는 2학년이고 담이는 1학년이다. 추운 겨울날 전국 각지에서 열린 집회에 모인 인파를 본 어린이들은 깜짝 놀랐다. 저 불빛이 다 사람들인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저 많은 사람들이 왜 저기에 있느냐고 물었다. 설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민주주의에 관해, 중학교 때 사회 과목에서 배운 삼권분립의 원칙과 고등학교 때 법과 정치 과목에서 배운 여야 정당과 국회의 기능 따위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했다. 마침 우리가 며칠 전에 읽었던 책 <독재란 이런 거예요> 덕분에 설명을 조금 줄일 수 있었다. 민주주의에서는 단 한 사람만 힘을 갖지 않아. 국민들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는 지도자가 훌륭한 리더란다.




707 특임부대가 국회의 유리창을 부수는 장면을 본 아이들의 눈은 더욱 휘둥그레졌다.

-저 군인아저씨들이 왜 창문을 깨트려!? 저기는 어디예요?

-저기가 국회야. 저곳에서 국회의원들이 투표로 계엄 해제를 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하게 막으려고 한 거지.

-엄마.. 무서워.



계엄이라는 말은 나도 무섭다. 박완서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일제강점기와 6.25, 근현대사를 배웠고 한강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5.18을 간접 경험했다. 책에서 보았던 '계엄선포'라는 단어를 내 생에 실시간으로 보게 될 줄 몰랐다. 12월 3일 그날밤의 상황은 대단히 급박했다. 만일 비상계엄 해제안이 가결되지 못했더라면 지금 어떤 형국일지.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럽고 아찔하다. 대통령이 다시 계엄을 선포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지만 그의 말은 믿을 수가 없기에 여전히 무섭다. 그가 당장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조금이나마 안심할 것 같다. 탄핵 이후의 사태가 혼돈일 것임을 차치하고서라도 현재로서는 그 직위를 박탈함으로써 급한 불을 끄고 싶은 것이다. 엄동설한에 집회에 참석한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지지율 10프로 이하라는 수치가 그러한 국민의 뜻일 테다. 그런데 여당에서는 탄핵안에 투표하지 않았다. 반대에 투표한 것이 아니고 아예 투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감과 분노로 할 말을 잃었다. 고개를 숙이고 국회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그들의 면면을 보며 나는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그 105명의 이름과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름과 사진을 매칭시키며 외우는 건 매년 3월 담임을 맡을 때마다 하는 일이라 나에게 익숙하다. 사랑스러운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을 외울 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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