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피부가 따끔거릴 만큼추웠고, 텐트 안은 등유난로 덕에 따뜻하고 건조했다. 아이들은 깨어있는 모든 순간을 아낌없이 놀았다. 요즘 캠핑장에는 사시사철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 시설이설치되어 있다. 그들은 끼니때가 되면 잠깐씩 텐트로 와서 와구와구 밥을 먹고는 또 트램펄린을 타러 뛰어나갔다. 캠핑장의 아이들은어느새 자기들끼리 통성명하고 서열정리를 하여 언니 형 오빠 부르며우르르 몰려다녔다. 저녁식사 후, 침낭 속에 들어가자마자 곯아떨어진 자매에게 이불을 한 겹 더 덮어주고 나는 별구경을 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밤하늘에 총총했다.
문제는 둘째 날밤이었다. 거센 바람이 사정없이 불기 시작했다. 예정에 없던 강풍주의보였다. 텐트가 사방으로 펄럭거리는 소리에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대낮에 낮잠을 질펀하게 잔 탓도 있다.) 휘이이이잉 돌풍이 불어닥치면천장에 걸어놓은 램프가마구 흔들렸다. 바람 소리가 커질수록 나는조금씩 무서워졌다. 파쇄석에 박아놓은 팩이 뽑혀버리는 건 아닐까. 텐트가 홀라당 날아가면 어쩌지. 옆사이트의 캠퍼들은귀가하기로결정했는지 짐 싣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동차의 불빛이 비쳤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가족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어묵탕에 소주를 마시고 잠든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집이 있다. 내가 운전할 테니 집에 가자고 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텐트의 전실에서 나 홀로멀뚱히 긴긴밤과 마주했다.
포트에 물을 끓여 차를 우렸다. 난로 옆으로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아서 책을 펼쳤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귀에 꽂으니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쓴 듯 사나운 바람소리가 멀어졌다. 쳇베이커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늑한 분위기를 내보려 했지만 자꾸만 흔들리는 텐트와 조명이 난민캠프를 연상시킬 뿐이었다. 가져온 책은 다음 독서모임 책인 조지오웰의 1984.빅브라더의 감시와 처벌도 무서웠지만 자연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대자연 앞에 인간은 너무도 연약하다.
캠핑을 시작한 건 7년 전쯤이다.(내가 브런치에 처음으로 썼던 글도 3년 전 겨울캠핑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캠핑을 하지만 그 빈도는 예전보다 현저히 줄었다. 주말마다 수영강습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말 일정을 자제하기도 했다. 초보 캠퍼였을 때는 자연에서 보내는 모든 순간이 낭만적이었는데, 요즘에는 굳이 바깥에서 먹고 자는 경험이 수고롭게 느껴진다. 이번에도 삼겹살을 굽고, 부대찌개를 끓이고, 샤브샤브를 해 먹었다. 물론 야외에서 무엇을 먹든집에서 먹을 때보다 몇 배로맛있기 마련이다. 먹는 일은 캠핑의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잔반을 음식물쓰레기통에 넣으면서,뜨거운 물을 콸콸 틀어 기름 범벅이 된 프라이팬을 설거지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다지 환경친화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강풍이 지나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날이 밝았다.
바람이 잦아든 새벽녘에는 나도 깊은 잠에 들었었다. 우리는 갓 지은 밥과 달걀프라이로 평화로운 아침식사를 했다. 아이들은 마지막이라며 아쉬워하며 실내놀이터로 갔고 남편과 나는 텐트를 비롯한 모든 집기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장갑을 꼈지만 손이 에일 듯 시렸다. 기온은 전날보다 더 떨어져서 바닥에 흘린 물이 곧 얼어버릴 정도였다. 설상가상 자동차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긴급출동 서비스의 도움으로 우리는 무사히 캠핑장을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근처의 온천에 들렀다. 꾀죄죄한 몸을 씻고(캠핑장에서는 추워서 이틀간 샤워하지 않았으므로) 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니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이틀 동안 추위에 떨며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받는 것 같았다. 가만, 나에게 캠핑이 언제부터 고생이었지? 예전에는 분명 힐링이었는데말이다.
아이들에게 캠핑의 소감을 물으니 한 목소리로 답했다. 너무 좋았어, 최고! 다음 주에 또가면 안 돼요?
무엇이 그리 좋았느냐는 질문에도 자매는 똑같이 대답했다.
숙제도 없고 공부도 없고 계속 놀기만 하니까 좋아!
나는 집에 간다는 사실이 좋았다. 오늘밤에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집에서 포근한 이불을 덮고 눈에 온열안대를 올리고 자야지.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