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와 마주한 벽 너머에서 규칙적인 진동과 소리가 전해졌다. 처음엔 깜짝 놀랐다. 무슨 소리지? 밤중에 공사라도 하나? 아니면 세탁기를 돌리나?
밤새 이어지는 이 소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옆집 사람의 코 고는 소리였다. 우리 집 아저씨도 코를 좀 고는 편인데, 저분은 차원이 다르다. 코끼리가 코를 골면 저런 소리가 날 것 같다. 이 집의 방음이 문제인가 아니면 저 사람이 문제인가. (둘 다인 듯) 어느 쪽이든 내가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신기한 건 아이들이다. 그 요란한 소리에도 곤히 자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이 귀에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부럽다.
다행히 내겐 에어팟 프로가 있다. 나 같은 HSP(hyper sensitive person)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 (이것에 감동해서 남긴 글도 있다.)
https://brunch.co.kr/@dearism/109
세상의 소음을 차단해 주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그야말로 구원이다. 평소에도 코를 고는 남편 곁에서 잘 때 요긴했는데, 이번 여행에 안 챙겨 왔다면 어쩔 뻔했나 싶다.
잠자리에 눕기 전, 에어팟을 귀에 꽂고 스포티파이를 열어 나의 입면을 도와줄 팟캐스트를 고른다. 오늘의 픽은 책 이야기를 하는 리딩캐미스트리. 음악보다 사람의 말소리가 오히려 잠에 더 도움이 된다. 내용에 집중하다 보면 코끼리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만은 제발 단잠을 이루길 바라며, 혹시라도 자다 깰까 싶어 물도 일부러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새벽, 창밖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다시 눈을 떴다. 방 안은 또다시 요란한 진동으로 가득했다.
에어팟의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이다. 저쪽 끝에서 자고 있는 남편의 드르렁헝 소리와 옆집 코끼리님의 크어어헝 소리가 입체 서라운드로 방을 감싼다. 여긴 어디인가. 나는 어째서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가. 헛웃음이 나왔다. 쓰리엠 스펀지 귀마개가 어디 있더라. 나는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서랍장을 뒤졌다.